투명하게 서글피 / 서연정
폭설 견딘 나뭇가지
우수(雨水)에 꺾이는 소리
헙수룩한 발자국에 투명하게 서글피
인연들 붉은 눈시울
봄이 오면 봄과 함께
(시집 ‘투명하게 서글피’, 책 만드는 집, 2024)
[시의 눈]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 최초 문학론인 ‘시학’에서 비극을 집중적으로 탐구해내고 있다. 비극적 슬픔을 중요한 장면으로 인식한 그의 태도, 이는 미학의 본질을 넌지시 일러준다. 아픔과 고통과 슬픔, 이 감정들이 바탕을 이루는 비극이야말로 진정한 이야기라는 논리다. 물론 극복과 초월이 암시된 비극은 좀 더 무게와 가치를 내재할 것이다.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와 함께 봄이 찾아든다. 몸을 꺾는 고통을 동반해야 우주는 새봄을 허락한다. 그만큼 새봄은 절실한 미학의 계절이다. 봄의 미학을 들여다보면 여기에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우울, 불안 등의 감정이 해소되고 정화되는 계절의 언덕에서 사뭇 흥건한 충만감에 들뜰 만하다. 그러나 어떤 이는 ‘헙수룩한 발자국에 투명하게 서글피’ 부사절을 통해 기쁨의 감정을 유예시킨다, 그 자리에 대신 슬픔을 데려다 놓는다. 기쁨과 슬픔, 양자는 동전의 양면이다. 둘은 늘 함께 따라다닌다. 행복해지다가 슬퍼지기도 하는 이 모순율이 인생이란 것을 경험철학은 말하고 있다. 미학, 아름다움의 규정을 플라톤은 이데아의 영역에서 바라보았지만, 칸트는 주관적 경험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붉은 눈시울의 봄’, 봄날의 한 갈피 속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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