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 / 정해송
눈 먼 세월 하나가 바래고 있습니다
어쩌다 잃어버린 가녀린 그 미소가
이제는 손톱 안으로 돋아 올라옵니다
-안테나를 세우고(태학사)
시는 살아 있는 꽃
예로부터 달은 시인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해 왔다. 미당 서정주는 겨울 달을 님의 고운 눈썹으로 보았다. 정해송 시인은 희미한 낮달을 보고 눈 먼 세월 하나가 바래고 있다고 한다. 잃어버린 가녀린 미소 같은 그 달이 이제는 손톱에 돋아 올라오고 있으니 누구나 달을 손가락 끝에 새겨 지니고 있는 셈이다.
1976년 동아일보와 1978년 현대시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의 시조는 현실에 바탕한 현대판 시절가조(時節歌調)다. 1987년 유월 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도 여러 편이다.
“방에 앉아/시 쓰는 일이/부끄러운 시절이다.//은유며 상징이며/분칠 같은 기교들이//이 유월/녹색 깃발 아래/가화(假花)처럼 여겨진다.” - 고백
시인의 자괴감은 비단 이때 뿐이겠는가? 지금은 그렇지 아니한가? 위태로운 남·북 상황, 어지러운 국내 정세에서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는가?
그러나 시인이여. 시대의 증인으로서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한, 그대의 시는 살아있는 꽃이 되리라.
[유자효 시인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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