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본 고향 / 이양자
“언니, 가족 묘지도 돌아보고 그쪽 관광도 할 겸 구경 갈까?”
지난봄 서울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행이라면 어디든 좋아해서 나는 쾌히 승낙했다. 고향으로 여행 가는 것은 자라온 지역과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아서 주변 어느 누구와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연락을 받고 마다치 않고 함께 가자고 했다.
딸이 되어 친정 가족 묘지는 마음뿐 갈 기회가 없었다. 가까운 가족들까지도 모두 고향에 머물지 않아서 동생들과 고향 여행이란 훈훈한 정감이 사랑으로 잠재워져 아름답다고 할 모든 것들의 생각들로 설레기도 했다. 광주에서 그들과 합류, 모처럼 가족 묘지까지 가게 되어 일거양득의 기회였다.
산의 진입로를 따라 짜릿한 전율이 감도는 자연 무대를 밟으며 가족 묘지를 향해 걸었다, 증조부모님께선 시제로 문중 산에 계셨고, 조부모님부터 부모님, 숙부님 등 묘지가 있었다. 오빠들 모두도 장소만 넓게 놓여있고 아무도 들어갈 분들이 없었다. 큰오빠 부부는 나란히 문빈정사에 자녀들이 이미 마련했고 서울 오빠는 학도병 의용군일까? 대학 때 있던 일로 정부로부터 국립묘지로 부부가 가시니 어느 누가 고향의 가족 묘지로 향하겠는가. 지워지지 않는 혈육들과 헤어짐의 아쉬움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고향 가족 묘지를 주기적으로 관리했던 조카들은 서울 등 광주에 살면서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정성껏 돌봐 널찍한 주변 나무들도 깔끔하게 조성돼 슬픔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편안한 안식처 같았다.
모처럼 나들이가 자연경관의 싱그러움에 옛 시절을 더듬을 수 있는 맑고 고운 고향의 향내까지라니 이보다 더한 호사는 없을 듯하다. 높은 산 넓은 들녘에는 햇빛이 가득하고 푸른 산이 바다를 향해 가슴을 활짝 펼치고 있다. 그 사이로 뒷산 능선 멀리 바다의 기운을 내뿜으며 어우러진 섬들의 탁 트인 풍경까지 아름다운 조망을 연출했다. 또한 뒷산 봉우리 이름과 동일한 아버지 호는 어렸을 때 많이 듣던 기억으로 철부지 시절을 넘나드는 그리움 그 자체 사랑의 추억이었다.
집성촌인 커다란 마을은 4형제의 할아버지 손인 6촌들까지도 모두 객지로 떠나 자작일촌 고향이라지만 아는 이가 없어 들를 곳도 찾아볼 곳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고 사는 사람이 다르니 어릴 때의 고향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고스란히 추억이 되어 내 뇌리에 남아 있다.
저물어가는 어둠 속에서 회상의 꼬리를 물고 다가오는 그때 그 시절 소중하고 아름다운 유산들과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한 분 한 분 떠오른다. 항상 사람이 붐비던 잔칫집 같은 분위기 속에 종부의 삶을 이겨낸 어머니는 얼마나 깊은 침묵으로 시린 가슴을 쓸어내리셨을까. 까마득한 기억의 증조모님, 무척 나를 위하셨던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아버지 등등 내면 깊숙이 남아 있는 부르고 싶은 많은 이름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본다.
바다 가까운 곳, 넓은 정원이 있는 숙소에서 3일간을 편히 쉴 수 있었다. 숙소 안에는 매실나무며 개복숭아 등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도 많았다. 주인이 마침 같은 종씨라며 알아보는 듯 매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약이 된다는 개복숭아를 가져가라고 주렁주렁 달린 열매를 마구 따 주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개복숭아는 의외로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옛날에는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해서 아주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수확시기도 6월이며 효소를 만들어두고 장기간 보관하여 먹을 수 있으니 요즘 뜨는 식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에 나누어 효소를 담자며 소중하게 차에 실었다. 서울 동생들은 천주교 신자들로 교우들이 떡을 해 주면 좋아한다며 교회 지도자의 기질을 발휘하여 모싯잎까지 몽땅 뜯었다.
맛집 멋집을 찾아 근방의 해안도로를 돌며 파도 소리와 드문드문 아는 이들의 사람 내음, 지천으로 깔린 작은 꽃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여러 아쉬움을 가득 담아 오랜만에 고향 주변을 골골샅샅이 구경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즐겼다.
글 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다던 이곳 고향은 맑은 하늘과 넓은 저녁노을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소리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고향마을의 경험은 모처럼 자연 속에서 넉넉하고 아낌없이 쏟아낼 수 있는 여유로움은 물론, 소박하고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향기였고 삶의 향기였다. 태어난 곳은 고향이며, 누구나 조상의 묘가 있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타향이나 객지가 아니기에 본향이라고 하던가.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포근함, 감싸 안기듯 편안한 휴식과 경험을 마음속 깊이 간직했다. 그리고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곳,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 바로 고향임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양자 약력>
▲등단 : ‘동산문학’ 수필, ‘문학공간’ 시
▲광주문인협회 이사, 동산문학 회원, 광주수필 회원
▲수상 : 예술교육 문화상, 동산문학상
▲시집 : ‘지금 여기에’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능소화 / 문혜진 (0) | 2026.05.04 |
|---|---|
| 숲속의 의자 / 이상국 (0) | 2026.04.29 |
| 여명 / 손영란 (0) | 2026.04.27 |
| 붉은 넋, 오백 년 푸른 숨결 / 나명엽 (0) | 2026.04.27 |
| 봄 이야기 / 김용국 (0) | 2026.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