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넋, 오백 년 푸른 숨결 / 나명엽
영산강 굽이돌아 금사정 터 이르니
일천오백십구 년 기묘년(己卯年) 바람, 아직도 차구나
바른 개혁 억울한 유배길 가슴에 품고서
열한 분 선비들 한양에 관복 벗어 던지고 여기 왔노라
아아, 도학(道學)의 큰 뜻 강물에 씻어 의리를 맺었으니
복사꽃 영화는 한 때 뜬구름일진 데
보아라 선비들 손수 심은 동백 한 그루
눈 속에 피어나는 저 붉은 꽃망울
정암(靜庵)*의 일편단심 사약 잔에 비친 넋이라
굽히지 않는 기개 세한(歲寒)을 이겨 푸르구나
정유년 병화(兵火)로 정자는 재 되어도
뿌리 깊은 나무는 불길 속도 살아남아
현종 때에 다시 세워 오늘까지 이르노니
오백 년 세월 굽어살핀 역사의 눈이로다
천연기념물 오백십오 호, 아 그 위엄 한결같구나
금강계(錦江契) 맺어 배 띄우고 시를 읊던 날
백성을 사랑하던 공의(公義)의 귀한 외침
어찌 옛이야기라 치부하며 잊을소냐
동백꽃 뚝뚝 떨어져도 그 빛깔 변치 않음은
매운 선비 절개 전하는 이 동백의 사명인가!
오늘은 님들 찾아 금사정 뜨락 매만지고
동백나무 몸이 쓴 오백 년의 문장을 읽노라
복사꽃처럼 반짝 지는 한 철로는 살지 말라
동백처럼 정직하게 피어나 숭고하게 지는 생애
가슴마다 붉게 새겨, 우리는 영원히 이어가리라
*정암 : 조선 중종조의 조광조. 개혁정치 주장, 정쟁으로 유배 능주서 사약을 받음
<나명엽 약력>
▲시인, 광주문인협회 이사
▲시다래동인 회장, 생오지문학 회장
▲수상 : 영랑문학제, 용아백일장, 서울중구문학제 등 시부문 우수상
▲저서 : 시다래, 별숲 동인지 15권
▲전남대 경영학박사, 현 언론인, 전 광주일보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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