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밑줄긋기 / 사윤수
등대는 바다라는 책 한 권만 바라본다 갈마드는 너울 문자와 해무의 고전까지 이미 다 외웠거나 눈을 감고도 알 터인데 삼백예순여섯 나날 읽고 또 읽는다 따스한 불빛 밑줄을 쉼 없이 긋는다 새벽 수평선 위에 피어나는 별꽃 같은 귀향이나 만선의 구절을 발견할 때면 등대는 눈시울이 젖기도 했을 것이다 그 고단한 내용을 맨발로 달려가 안는다, 등대는
- 사윤수 '등대'
자기 자신의 삶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더 오래 품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독자다. 세상에 널리 펼쳐진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눈시울이 젖기도 하는 그런 존재. 제자리에 머무르는 듯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겪어보지 않은 일을 겪어볼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등대 같은 사람이 되어보자. 페이지마다 수십 줄의 수평선이 놓여 있으므로, 그 수평선을 모두 더듬었을 때 멀리서 박명이 온다. 끝이자 시작인 시간이 온다. 읽는다는 것은 가장 멀리 떠나보는 일이다.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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