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물고기 / 메리 올리버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6. 16. 06:19
물고기 / 메리 올리버

내가 처음 잡은
물고기
양동이에 얌전히
누워 있지 않고
퍼덕거리며
얼얼한
놀라운 공기 빨아들이고
무지개 빛깔
서서히 쏟아내며
죽어갔지. 나중에
나는 물고기 몸을 갈라
살에서 가시를 발라내고
먹었지. 그래서 바다가
내 안에 들어 있지. 나는 물고기,
물고기는 내 안에서 빛나네, 우린
서로 뒤엉켜 다시 바다로
돌아가겠지. 고통,
그리고 고통, 또 고통으로
우리 이 열정의 대장정 이어가고,
신비에서 자양분 얻지.

메리 올리버(1935~2019)

 

이 여름에 ‘물고기’ 하고 부르면, 은빛 비늘을 반짝이는 물고기 한 마리가 내 혓바닥 위에서 펄떡거릴 것만 같다.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고, 내 몸은 바닷속에서 물고기들과 천천히 유영한다. 넘실대는 너른 바다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간다.

메리 올리버는 처음 잡은 물고기를 양동이에 넣었다. 그 물고기는 “무지개 빛깔”을 “서서히 쏟아내며 죽어갔”다. 죽은 물고기의 “몸을 갈라” “가시를 발라내고 먹”자 시인은 스스로 물고기가 되었음을, 바다가 온통 제 속으로 들어왔음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의 “신비에서 자양분”을 얻으며, 고통으로 뭉쳐진 삶의 “대장정”을 다시 이어갔다.

메리 올리버의 모국어는 자연이었다.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매가 될 것이다”라는 고백처럼, 시인은 자연에서 길어 올린 언어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시를 받아 적었다. 눈빛이 점점 흐려지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살아 있는 자연의 언어일 것이다.

 [경향신문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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