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떠들썩팔랑나비의 작명가에게 / 손택수
수풀도 좀 점잖고 싶을 때 있지
나비도 날개를 접고 곤히
쉬고 싶을 때 있지
마냥 떠들썩 팔랑거려야 하니 얼마나 고역인가
하긴, 나도 내 이름이 싫을 때가 있으니까
집 없는 이름 한가운데 왜 집을 가졌는지
그래도 집 택 자 덕분에
시집이라도 몇 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수풀떠들썩팔랑,
나비 이름을 부르면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채집을 가던 소년이 보인다
면바지에 묻은 풀물처럼 잘 지워지질 않는 여름
나는 여전히 발뒤꿈치를 들고 있다
잡았다 싶은 순간,
나비는 늘 저만치 멀어진다
그때 내가 잡고 싶었던 건 나비가 아니라
더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저물도록 떠들썩 팔랑거리던 그 환한 거리가 아니었을까
이름 속에 들어올 수 없는 떨림을 알아서
앉은 나비를 품고 두근거리는 수풀과
아닌 척 거리를 좁히는 기척에 골똘해진 나비와
작명가의 숨결이 실려 있는 말,
수풀떠들썩팔랑
「수풀떠들썩팔랑나비의 작명가에게」는 이름, 기억, 그리고 잡히지 않는 그리움에 관한 시입니다. 긴 나비 이름을 중심으로, 어린 시절의 환상과 성찰을 포개어 풀어내고 있어요.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정조가 깃든 이 시를, 몇 가지 키워드로 해석해볼게요.
1. “수풀도 좀 점잖고 싶을 때 있지 / 나비도 날개를 접고 곤히 쉬고 싶을 때 있지”
- 여기서 ‘수풀’과 ‘나비’는 존재의 본성을 넘어서, 고단한 역할의 피로를 상징합니다.
- ‘떠들썩’하고 ‘팔랑거려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이름, 그러나 그 이름이 항상 자신의 본모습을 반영하는 건 아니죠.
- 이건 우리 인간의 삶에도 겹쳐집니다.
“나는 나지만, 나 아닌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피로함.
2. “하긴, 나도 내 이름이 싫을 때가 있으니까”
- 여기서 작명가를 언급하며 시인은 자신을 돌아봅니다.
- ‘손택수(孫宅洙)’, 이름 가운데 ‘집 택(宅)’ 자를 들어,
집 없는 사람의 이름 속에 집이 있다는 역설을 드러냅니다. - 하지만 동시에 그 이름 덕분에
“시집이라도 몇 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유머 섞인 자기 위안도 들어 있죠.
3.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채집을 가던 소년”
- 여기서 시는 기억의 복원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 '면바지에 묻은 풀물', '발뒤꿈치를 들고 있는 몸짓'은
어린 시절의 선명한 감각을 불러옵니다. - 나비를 향해 다가가지만,
“잡았다 싶은 순간, 나비는 늘 저만치 멀어진다” —
이건 단순한 사냥의 실패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의 부재,
혹은 성장이란 멀어짐의 감각일지도 몰라요.
4. “잡고 싶었던 건 나비가 아니라 / 저물도록 떠들썩 팔랑거리던 그 환한 거리”
- 가장 핵심적인 전환입니다.
- 나비는 단지 기억의 매개체,
진짜 잡고 싶었던 건 그 여름의 거리, 환한 시간,
즉 지나가버린 찰나의 환희죠. - 이 문장은 시 전체의 정조를 전복시키며,
'이름에 담지 못한 떨림'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5. “이름 속에 들어올 수 없는 떨림”
- 결국 이 시는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감정,
기억 속 생생한 감각,
그리고 이름이 담지 못한 존재의 흔들림을 그립니다. - “수풀떠들썩팔랑”이라는 과장된 이름 안에,
실은 아주 여린 정서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거죠.
시의 정서 요약:
이름과 정체성 | 과장되거나 과중한 이름이 때로는 진실을 가릴 수 있음 |
기억과 성장 | 과거로 되돌아가는 장면을 통해 성장과 상실을 교차시킴 |
잡히지 않는 것들 | 나비처럼, 혹은 여름처럼,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것 |
언어의 한계 | 모든 떨림과 감각은 결국 이름에 담기지 않음 |
🔎 마무리 감상:
“수풀떠들썩팔랑”이라는 유쾌한 언어를 중심으로,
자아와 이름, 기억과 환상,
그리고 붙잡히지 않는 감정들을 따뜻하게 풀어낸 시예요.
웃음을 머금고 시작하지만,
끝에는 조금 울컥해지는 그런 시 —
이름이 아닌 떨림을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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