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빗길 / 이동우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6. 20. 12:57

빗길 / 이동우

 

그럼에도 나는 낭비되지 않고

어둠을 갱신하며

처음 와본 거리에서

서로를 갉아먹던 그들과의 지난밤을

놓아주려 하고

 

빗물은 어떠한 것도 탐하지 않으며

잠시 품었다가 흘려보낼 뿐

 

적신다는 건 움켜쥐지 않고

상대에게 스미며

살포시 안아주는 거라고

 

물을 붓고 기다리면

자라나는 것들이 선명해지고

 

한바탕이었다고 해두자

 

지금처럼 잊힐 때까지

퍼붓는 소나기였다고

 

흔들려도 매달리며

난파되어도 구조될 거라 믿으며

나의 표류를 맡길 수 있는

 

빗방울을 어설프게 흉내 내다보면

 

맹목적으로 불빛을 쫓게되고

갇힌 자리에서 흔들리게 되고

 

다 내준 빈 몸

 

목덜미를 물린

물멀미에 지친

 [이동우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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