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길 / 이동우
그럼에도 나는 낭비되지 않고
어둠을 갱신하며
처음 와본 거리에서
서로를 갉아먹던 그들과의 지난밤을
놓아주려 하고
빗물은 어떠한 것도 탐하지 않으며
잠시 품었다가 흘려보낼 뿐
적신다는 건 움켜쥐지 않고
상대에게 스미며
살포시 안아주는 거라고
물을 붓고 기다리면
자라나는 것들이 선명해지고
한바탕이었다고 해두자
지금처럼 잊힐 때까지
퍼붓는 소나기였다고
흔들려도 매달리며
난파되어도 구조될 거라 믿으며
나의 표류를 맡길 수 있는
빗방울을 어설프게 흉내 내다보면
맹목적으로 불빛을 쫓게되고
갇힌 자리에서 흔들리게 되고
다 내준 빈 몸
목덜미를 물린
물멀미에 지친
[이동우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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