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 이설야
검은 파도를 바라보며
내가 빠뜨린 봄을 천천히 마신다
물안개처럼 흩어지는 얼굴들
어둠을 말아놓은 종이컵처럼
쉽게 구겨지는 마음
찢어지는 싫은 마음
컵의 안쪽은 뜨겁고 시끄럽다
생각은 흘러간다
없어지는 것 같다가
더 많이 나에게 달라붙는다
나인 것처럼
달라붙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검은 숲과 새들이 몰려오고
별들이 지나가다 빠지고
바람은 축축하게 젖어 더러워졌다
내가 손을 놓친 그림자들
다 쓰지도 버리지도 못한 어제의 얼굴들
물풀처럼 서서히 떠오른다
[이설야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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