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 / 박용래
산은
산빛이 있어 좋다
먼 산 가차운 산
가차운 산에
버들꽃이 흩날린다
먼 산에
저녁해가 부시다
아, 산은
둘레마저 가득해 좋다
-박용래(1925~1980)
요즘 산빛이 참 좋다.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은 싹은 미려(美麗)하다. 완두콩 빛깔이다. 그렇다고 산빛이 한 가지의 빛깔만을 띠는 것은 아니다. 산벚꽃은 피어 산빛을 보탠다. 송화는 피어 산빛을 보탠다. 작은 풀꽃도 산빛을 보탠다. 봄의 산빛은 샘물이 솟아 나오는 것처럼 반질반질하고 새뜻한 기운이 찰찰 넘친다. 그에 맞춰 그늘도 자리를 차차 넓히며 산내(山內)를 흐른다.
시인은 가까운 산과 먼 산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축 늘어진 버드나무의 꽃이 봄바람에 이쪽저쪽으로 날린다. 산등성이엔 아름다운 잔광(殘光)이 돌고 돈다. 가까운 산은 가까운 산대로, 먼 산은 먼 산대로 산빛이 있다. 해가 뜨는 때의 산빛은 말끔하고, 일몰(日沒)의 때에 우러르게 되는 산빛은 찬란하다. 개화와 낙화의 때에, 낙엽이 지는 때와 눈이 쌓이는 때에 산빛은 각각 그때의 의상을 입는다.
산빛은 능선과 산봉우리를 넘어서며 상방(上方)으로 뿜어져 나온다. 산의 가를 한 바퀴 넉넉하게 돈다. 뿐만 아니라, 노루와 꿩이 우는 소리도, 사람의 목소리가 내는 산울림도, 계곡물이 흘러내리며 만드는 청량한 소리도 산의 둘레를 이룬다.
[조선일보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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