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 시인은 바람을 많이 피워라.
나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연애를 많이 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오늘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당신에게 바람을 피우라고 다시 권한다.
당신은 시의 바람을 피워 본적이 있는가?
가장 진솔한 시는 내가 잘 모르던 대상과 뜨겁게 바람을 피워봐야 쓸 수 있다. 남녀간의 그런 통속적인 사랑이 아니라 세상 사물들과의 비밀스런 만남, 자꾸 그리워 하고, 밀어를 주고받고, 밤이나 낮이나 시간만 되면 생각나서 느끼고 싶고, 그립고, 만나고 싶은 그런 깊은 향유의 바람을 피워볼 대상을 만들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감정이 깊어져서 마침내 교접의 시간이 오면 은유라는 정자와 상징이라는 난자가 만나게 된다. 이렇게 시가 잉태되면 임부는 그 시의 생명이 모태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아야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가 육화(肉化/몸 바꾸기)되는 과정인 것이다. 즉, 온 몸의 지각과 초감각을 동원하여 시를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듯 온전한 시를 낳는 것이 시쓰기의 최고 미덕이다.
제대로 된 시를 탄생시키는 일에는 출산에 따른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고통의 과정을 거친 시가 세상에 나오면 그 시는 자기의 영토를 갖게 된다. 당신의 나이가 많거나 적음에 관계 없이 시에 대한 사랑이 있고 그리움이 있는한 시를 낳을 수 있는 충분한 생식 능력이 있고 시의 영토를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다.
멀리에서 찾을 것도 없다. 바로 당신 옆을 보라.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대상이 외롭게 숨어있다. 그들과 바람을 피우자.
이번 주에 회원이 올린 시인데 바람을 제대로 피웠는지, 사지 멀쩡한 자식을 낳았는지 살펴보자.
그녀, 이제 바람이 자려나 / 임세영
늦은 봄 젊은 미망인의 정한을 닮은
흰장미
푸른 달빛 아래서 마지막 향기
톡 쏘아 내고 사라지던 날
시작된 열정의 행진.
그녀,
화사한 그물 옷 관능의 날개 품고
바람 일으킬 때마다 참을수 없던 유혹
나는 그녀에게 매달려야 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했던가,
우리의 한정된 사랑과 욕망
애당초 예고된 이별의 끝
시간은 공간을 채워 가고
속절 없이 흐르는 세월의 수레
바람 많고 물결 일던 그녀,
여름 소리 작아지고 귀뚜리
소리 커질때 떠날 때를 알았음 일까,
바람 멈추고 은빛 날개 접으며
깨금발 뒷걸음질로 길고 깊은
동굴 찾아 떠날 준비를 한다.
그래,
함께 했던 뜨거운 계절
사랑 했었다오,
바람끼 많은 여인이라고 뭇사람들
입에 올려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때가 되면 나는 당신을 찾아 내어
내 앞에 당당하게 세우고 사랑한다
말 하겠오.
다시 만날때 까지 안 녕 !
이 시는 정말 바람을 피운 시다. 한 번 읽으면 바람끼 많은 연인과의 이별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뜨거웠던 계절' '바람 멈추고 은빛 날개 접으면' 등에서 어떤 열쇠가 보인다. 그렇다. 여름을 식혀주던 선풍기 이야기다. 임세영 회원이 언제 이렇게 중층묘사의 실력이 늘었는지 깜짝 놀랐다. 선풍기와 제대로 바람을 피웠다. 그리고 묘사가 살아있고 사물을 육화시키는 과정에 힘이 있다. 여기에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실제 사랑했던 연인에 대한 시인의 진술(陳述/작가의 생각을 넣는 일)이 복합적 심상으로 세워진다면 더욱 깊은 시의 맛을 낼 수 있다. 스토리와 긴장감이 살아 있도록 이렇게 쓴다면 앞으로 필요없는 가지를 쳐 낼 시안(詩眼)도 열릴 것이며 작품성이 깊어지는 것도 시간문제이므로 계속 건필 하시길 빈다.
다음은 이덕규 시인이 피운 바람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어처구니 / 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 밭에 덮어 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 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 거려서 또
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 이를 또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이 시는 표현과 감정의 섬세한 부분까지 육화(肉化/몸바꾸기)가 되어 시로서 성공하고 있다. 시란 어떤 사물을 섬세하게 표현하는데서 나아가 낯설게 하기와 몸바꾸기의 작업이 제대로 되어야 비로소 사지육신이 멀쩡한 자식을 낳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화'나 '거듭남'과 비슷한 의미요 불교에서 강조하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과잉친절이 몸에 베여있는가?
초보시인들이 걱정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가 쓴 글을 독자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까봐 친절하게 설명하거나 쉽게 시를 쓴다. 그리고 시가 가지고 있는 상징까지도 정성을 다하여 설명해 준다. 이것이 문제다. 시는 은유이고 상징이고 비유인데 과잉친절은 시를 형편없이 만들거나 재미없게 만드는 주범이다. 독자가 스스로 깨닫게 하라.
하이데거의 '시간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스스로 말하고 있다. 내가 사물대신 말하지 말라. 사물이나 상황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고 설파했다. 설명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못 알아들을까봐 우리의 편협한 시각과 감정으로 다 설명해 버리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설명을 하면 그 순수함과 객관성이 사라져서 자신의 넋두리나 하소연, 교훈적인 관념시, 또는 추상적인 시가 되기 쉽다.
ㅡ노년의 사랑ㅡ
할아버지 산야에서 나물캐고
할머니 지하철역 구퉁이에서 나물팔고
먼지를 간식삼아 하루를 번다
해져야
된장에 냉이한줌 넣어
한끼 먹으며
탁주 한잔 부디치니
술잔이 말을한다
인생뭐있어
이게 행복이지
골진 얼굴에 웃음이 좋다
먼저 도망갈까 두려운 깊은밤
두손은
포개어 곤히 잠든다
위 시도 우리 시사모 회원이 쓴 것인데 이 시를 써놓고 제대로 시 한 편 건졌다고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 했을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자.
시의 씨앗이 움을 틔우기 위해 간질거리는듯 하다. 그런데 시의 싹이 나고 잎이 피고 꽃이 피어서 제대로 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적당한 물을 줘야 하는데 설명이라는 비료를 과하게 주는 바람에 오히려 시를 망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위 시는 노년의 사랑을 표현한 것인데 밖으로 드러난 언어가 아니라 안에 감추어진 뜻의 언어, 즉 메타(meta)언어가 약한데다가 "인생뭐있어/이게 행복이지"란 부분은 묘사를 한다는 것이 핵심적 의도가 심각하게 노출된 과잉 친절이자 설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독자가 시를 읽으면서 ''아, 이런게 행복이야!''라고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 시의 작법인데 이렇게 시인이 결론을 내려 버리면 독자가 느껴야 될 재미나 감동의 공간이 좁아져서 시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힘든다. 시인은 독자에게 자기가 하고싶은 말, 그 의도의 50%만 드러낸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라. 그리하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해석의 공간이 펼쳐질 수 있다. 그리고 위 시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제대로 안 됐다. 요즘은 스마트폰에서도 맞춤법 검사기를 내려받아서 이용할 수 있다. 맞춤법은 최대한 바르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제목과 첫 연의 시작이 시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할 만큼 중요하므로 더욱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제목의 앞이나 뒤에 줄을 첨가하는 것도 미사여구를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같기에 불필요한 것이다. 또한 현대시를 쓰는 사람은 이름 앞에 호(號)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호(부르짖을 號)란 원래 귀한 이름 대신 애나 어른이나 크게 불러도 되는 이름이란 뜻이다. 시인의 이름은 존경 받아야 할 귀한 것이다. 봉건 시대에 주인이나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아랫 사람이나 하인들, 또는 누구든지 불러도 되는 별칭으로 사용했던 것을 현대시를 쓰는 사람이 계속 사용하는 문제는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호를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이 장려할 일이라면 말과 글의 전문가인 시인들 대부분이 벌써 사용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넘어가는 일들도 살펴서 하나씩 차츰 바로잡아 나가는 시인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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