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 시인과 시정신
우리가 보통 '시(詩)'라고 할 때의 시는 한 편의 작품, 즉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같은 것을 'Poem'이라 지칭한다. 그러나 '나는 시를 사랑한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풍경', '시를 낭송하듯 운율을 살려서 말한다' 등의 시정신(詩精神)을 지칭할 때는 'Poetry'라고 구분한다. 즉, 구체적인 시 작품을 'Poem', 추상적인 시정신을 'Poetry'라 한다. 그러므로 시(Poem/포엠)에서 시정신(Poetry/포에트리)이 녹아있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닌 것이다. '시정신'은 시뿐만 아니라 음악과 그림과 무용과 조각 등의 모든 예술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업에서 본질적이며 핵심적으로 뒷받침을 하고 있는 정신인 것이다. 그래서 시는 '시 정신을 언어로 구사한 예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별에서 온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숨 쉬고 느끼고 생활하면서 이상 세계의 도래를 꿈꾸는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정신이 투철한 시인은 우리 가운데서 자라난 한 그루의 나무다. 그리고 그 나무의 모양이나 맺는 열매, 낙엽 까지도 제각각의 모양이 뚜렷한 개체다"라는 말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시를 써서 발표하는 시인보다 시를 올바르게 감상할 줄 아는 독자들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귀하게 여겨서 숲을 만들어 내는 산주(山主)처럼 시인들의 주인은 시인이 아니라 독자다.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많은 나라는 독자가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키우는 것과 같다. 그런 사회는 시가 좋은 숲을 이루어서 거기에서 쉴 수도 있고, 사람들의 정신이 밝고 맑게 되며 사회를 순화시키는 등의 순기능을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정신을 배양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 것이다.
시를 올바르게 감상하거나 시를 읽어내는 독자도 되지 못한 사람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정신(Poetry)이 없는 시, 시(Poem)를 흉내 낸 강열한 자기현시(自己顯示)의 욕망이고 지나친 자만으로, 설계도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큰 빌딩을 짓겠다고 덤벼드는 것과도 같다. 아무도 시의 독자가 되려고 하지 않고 시인이 되려고만 한다면, 아무도 관객이 되려고 하지 않고 배우만 되려고 하는 연극무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진실로 시를 사랑하거나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좋은 시집을 사서 읽을 줄 아는 독자가 되는 일부터 해야 한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Poem Lovers'라 하지 않고 'Poetry Lovers'라고 하는 이유도 '시정신이 담겨있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는 말이다.
이곳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운동장이다. 내가 쓴 시를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남의 시를 읽어 보는 연습을 먼저 해야한다. 그리고 그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시 정신을 기르는 일과도 연결되어 있다. 즉 독자가 먼저 되기 위한 훈련이다. 이 훈련에 참가하는 방법이 바로 댓글로 격려 또는 절제된 언어로 자기의 느낌을 적어보는 일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함부로 남의 글을 지적하는 일은 언어폭력이 될 수 있으므로 시처럼 최대한 절제하는 연습을 자주 하면 내가 시를 쓸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자신의 글에는 다른 회원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면서 진작 자신은 타인의 글에 무관심 하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시사모에서 매달 시상하는 <이달의 작품상>과 <이달의 회원상>에는 작품의 참신성과 발전 가능성을 참고 하지만 시인이 될만한 자세를 가졌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제한이 있긴 하지만 이것을 판단하는 방법으로는 댓글활동을 유심히 보고 가늠할 수 밖에 없다. 댓글을 보면 그 사람의 인성이 어느정도 보인다. 우리는 시의 기술자나 시의 노동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진정한 독자와 시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시는 계간<시와편견> 편집자문이신 최금녀 시인의 자화상이다. 일단 한 번 일어보자.
자화상/최금녀
기생이 되려다 못된 년들이
글을 쓴다는
김동리 선생님의 말씀으로
화끈 달아오른 내 얼굴
그 말씀에 주를 달아준 분은
더운 차 한 잔을 밀어놓고 사라지며
“끼가 있다는 뜻”이란다
그렇다
느지막하게 내린 신끼로 굿을 치고 다니는데
선무당 사람 잡는 소리가 등을 훓어내리고
옷 속으로 식은 땀 쭉 쭉 흐른다
애무당 하루라도 날춤을 추지 않으면
아쟁이, 대금소리에 삭신이 아프고 저려서
색색이 옷 차려입고 신바람을 맞으며
동서남북 발길 안 닫는 데 없다
세상만사 굿 한방이면 끝나는 듯
작두날 위에서 물구나무서며
신끼 휘두르니 위태 위태하다
최금녀 시인은 59세에 <문예운동>으로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그는 등단 후 일곱 권의 시집을 내고 납활자판의 시선집, 일역 시집, 영역 시집, 불역 시집 등을 잇달아 내면서 시 전문가들의 관심을 집중 시켰는데 발표하는 작품마다 예사롭지 않은 끼가 번득인다는 점 때문이라고들 한다. 요즘 시에는 끼가 없다는 탄식들을 그는 깨버린다. 위의 시도 최금녀 시인의 끼가 그대로 드러나는 시다. ‘애무당 하루라도 날춤을 추지 않으면/아쟁이, 대금소리에 삭신이 아프고 저려서’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말이다. 시를 쓴다는 당신은 그러한가? 시인의 끼란 바로 시정신(Poetry/포에트리)이다. 그의 시들이 오롯이 제 몫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생이나 선무당이 끼가 없이 되겠는가? 그러나 그는 넘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항상 되돌아보는 절제된 것이어서 품위가 있다. 지난주에 제주도 애월에 있는 필자의 집에서 그는 최문자 시인 등 모두 12명의 국내 시단의 기라성 같은 편집진과 함께 계간<시와편견> 최종 편집회의에 참석했는데 시정신을 제대로 시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은 제대로 된 독자가 먼저라는 인식을 같이 하기도 했다.
이번 주 숙제를 하나 내어드리고자 한다.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 윤동주, 서정주, 노천명, 김현승, 유안진, 신현림, 이수익, 고은, 박영조 시인의 시를 차례로 읽어보시기 바란다. 우리나라 시단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들이다. 자화상(自畵像)이란 말 그대로 자신을 표현한 글이지만 제 몫의 끼가 담겨있는지를 살펴보고 감상평을 써 주기를 바란다. 다음 주 금요일 까지 올라온 글에서 좋은 감상평을 뽑아서 시상코자 한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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