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창작 강좌>
■ 시인은 창조자 인가?
무릎을 칠만한 빼어난 시를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친다고 하자. 그 시인이 '벤허'라는 세기적 영화를 완성한 월리암 와일러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11개나 받고는 질렀던 탄성과 같이 "신이시여! 정녕 이 시를 제가 썼단 말입니까?"라고 했을 때 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실 것이다."풋, 그럴 리가"
시를 쓸 때 분명히 알아둘 것은 시인은 창조자가 아니라 그때그때 떠오르는 정서적 감흥을 옮겨 적는 '필경사(筆耕士)'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나의 시어는 더 좋은 구절로, 새로운 생각으로 바뀔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조합이기 때문에 시에서 완전한 창조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이 자세를 가져야만 시인은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공부하려는 노력이 따르게 된다. 시단의 유명 시인들이 크게 명성을 얻고나면 자기가 대단한 시의 창조자가 된 것처럼 죽을 때 까지 행세한다. 보르헤스 식으로 말하면 "하나의 표현은 분절(分節/몇 개의 마디로 나눔)을 계속하는 것이기에 완전함이란 없다" 이 말의 뜻은, '길'이라고 했을 때 모이고 나뉘는 큰 길과 오솔 길 같은 여러 종류의 길이 있는 것처럼 시어는 이미 존재하는 것에 우리가 의미를 불어넣거나 새롭게 발견하여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 결국 시인은 시어의 창조자가 아니라 '필경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필경사가 평생 절창만을 적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진정한 필경사는 죽을 때 까지 겸손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겸손한 자세로 시를 써야만 시도 살고 시인도 살고 독자도 산다.
빗소리 / 박형준
내가 잠든 사이 울면서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여자처럼
어느 술집
한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거의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술잔을 손으로 만지기만 하던
그 여자처럼
투명한 소주잔에 비친 지문처럼
창문에 반짝이는
저 밤 빗소리
박형준 시인은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창문에 반짝인다"로 분절하고 추억처럼 가시화 대상화 시키고 있는 가닥을 잡고 있다. 세상의 수 많은 시인이 비에 관한 시를 썼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쓸 것인데 빗소리의 진정한 창조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인간은 다만 발견하여 옮겨 적는다는 표현이 적확(的確)하다. 그러므로 시인의 경쟁력은 자기가 본 사건을 자기의 시각으로 분절하고 상황을 엮어서 필경하는 능력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적 상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시의 사건과 다큐멘터리의 사건은 어떻게 다른가?
시의 사건은 이미지와 율격을 통해서 설명 되지만 다큐멘터리는 육하원칙에 의해서 설명 된다. 전자는 보편적이지만 후자는 일회성이다. 시의 사건은 독자들에 의해 계속 진행형으로 거듭해서 일어나는 보편적이면서 영원한 것이 된다. 소월의 시가 그러했고 목월이나 윤동주, 백석, 미당 등이 그러했다. 시의 사건을 어떻게 유발하는 것이 좋은지를 놓고 많은 시인들이 고민한다. 공광규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해 보라고 권한다. 나도 공감되는 바가 많아서 내 식으로 해석한 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 시 작법의 일곱 가지 방법
1. 사물에서 느끼거나 발견한 서정적 충동을 즉시 옮겨 적어라.
사물과는 연애하듯 항상 애정을 갖고 바라보고 느껴라.
2. 경험만이 아니라 사건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경험에 의지하면 일평생을 쓴 다해도 몇 편밖에 쓸 수 없다.
3.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라.
자기의 색깔이 드러나는 진정성을 담아라.
4. 선배에게서 배우라
자기보다 시를 잘 쓰는 선배나 시의 스승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시를 퇴고하면 시가 늘지 않는다.
5. 재미있게 써라.
재미없는 시는 오래가지 못한다. 시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어야 한다. 재미는 행복을 부른다. 시를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재미있게 즐겨라. 재미있는 글이 살아 남는다.
6. 시에 생동감을 넣어라.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성 있는 이야기 구조로 써라. 현실적 자기 존재와 무관한 시는 죽은 시 이거나 곧 썩어서 없어질 시다.
7. 쉽게 써라.
횡설수설 난잡하면 불통문학을 만드는 공범이 된다. 시는 마음 먹은 것을 표현하는 지향의 발현이므로 절차탁마한 의도가 전달 되도록 하라.
다음의 시를 읽고 느낌을 댓글로 달아 보기 바란다.
무량사 한 채/ 공광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나무문살 꽃무늬단청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ㅡ 이어산<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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