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120강
■ 하찮은 일상과 시
시를 멀리에서 찾으려고 하면 몇 편 쓰지 못한다. 시적인 순간은 일상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일상에서 지나쳐 버리기 쉬운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에 많은 시가 숨어있다. 평소에 보이지 않는 시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힘들어도 사랑의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말을 걸어야 한다. 정호승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여 불렀던 노래처럼 ''인생이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아도''말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 하듯 시를 써야 한다. 즉 자신이 살아낸 인생이 진솔하게 녹아있는 시가 독자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가 진실하게 독자에게 다가 갈 수 있도록 하려면 남에게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체면을 던지고 나를 가리고 있던 가식을 던져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의 진실이 오롯이 드러나는 시를 쓸 수 있다. 이것은 시 쓰기의 본질적 방향이며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쓴 사람이나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와 긍정적인 힘이 되는 시작법(詩作法)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가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 함민복,<눈물은 왜 짠가>전문
위 시는 숨기고 싶은 가난한 삶의 순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억지스럽지 않다. 우리의 가난했던 어머니들이 가졌을법한 장면을 구어체(口語體)를 섞어서 실감나게 환기시키고 있다. 시적인 순간은 멀리 초월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 있다. 이마에서 땀이 나는 게 아니라 눈동자에서 땀이 난단다. 기가 막히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 시에서의 백미(白眉)는 제목이기도한 “눈물은 왜 짠가?”다.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을 일순간에 큰 울림이 있는 시로 만들어 버렸다.
함민복 시인의 시 한 편 더 보자.
쥐가 꼬리로 계란을 끌고 갑니다 쥐가 꼬리로 병 속에 든
들기름을 빨아 먹습니다 쥐가 꼬리로 유격 훈련처럼 전깃줄
에 매달려 허공을 횡단합니다 쥐가 꼬리의 탄력으로 점프하
여 선반에 뛰어오릅니다 쥐가 꼬리로 해안가 조개에 물려
아픔을 끌고 산에 올라가 조갯살을 먹습니다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30분 60분 90분----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 한 월급
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 함민복, <셀러리맨 예찬>전문
쥐꼬리가 이렇게 대단한 줄 모르고 우리는 그것에 대한 상실감과 불평으로 부족함의 대명사처럼 입에 달고 다니지는 아니했는가? 함민복 시인은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을 예찬하고 있다. 그리고는 “노동자의 눈동자가 산초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고 한다. 쥐꼬리 인생은 슬프지만 현실세계를 이루고 있는 빛나는 눈동자인 것이다. 함민복 시인은 실제 쥐가 물에 빠져서 죽지 않으려고 발부둥치며 견디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말 하잘것 없는 이야기로 시를 쓴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A를 이야기 하면서 B를 말하고 그 B는 C가 핵심인 의미의 겹침을 교과서처럼 보여주고 있다. 함민복 시인의 은사인 오규원 시인은 “무겁다고 다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가벼워도 깊이를 담을 수 있다”라고 했는데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심연의 울림이 있는 시, 우리도 자꾸 이런 시를 접하고 쓰다보면 언젠가는 더 좋은 시도 쓸 수 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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