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118강
■ 통속적인 시란 무엇인가?
2008년 한국문학예술위원회에서 펴낸 "100년의 문학용어사전"에 통속문학이란 “문학적 교양이 비교적 낮은 독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흥미나 기호에 중점을 두고 저술한 문학”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렇게 단정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어느 매체에서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다. 흔히 우리의 대중가요를 통속적인 음악이라고 하지만 그 것 또한 교양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시가 통속적이라 할지라도 그 또한 나름의 역할이 없는 게 아니므로 문학적 수준이 낮다고 해도 무시하고 비하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다. 나는 지난해 강의에서 한국의 시가 망하게 된다면 그것은 작품성을 부르짖으며 시인들도 이해하기 힘든 시를 좋은 시라고 내어놓는 문단의 권력자들 때문일 것이라는 말도 했었다. 소위 전문교육을 받고 고급문학을 향유하는 까다로운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시가 구속된다면 시는 대중에게서 점점 더 말어지거나 잊혀진 문학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 강좌를 통하여 시를 제대로 읽어내고 제대로 써보자고 매번 강조하고 있다. 그래야만 우리의 시는 사람살이에 없어서는 안 될 자양분이 되고 쉼터가 되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를 또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모든 예술의 귀착점은 ‘'행복과 위로와 반성’'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술의 교만함이나 해석 불가함이 없는 순수한 지점이다. 어제 어떤 회원이 우리 밴드에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아이가 아무렇게나 피아노를 띵띵거리듯 시를 쓰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글을 올렸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시도 제대로 알고 써야한다. 그러나 시의 수준이라는 게 매우 주관적인 것이므로 말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소위 고급시(高級詩)라고 발표되는 시에서 흔히 발견되는 엄격하고도 난해한 내용은 그것이 지닌 시사적(詩史的) 효용성도 있겠지만 단적으로 모든 예술은 소비를 위한 것이기에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시인도 외면하는 시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 없다. 그러한 틈을 비집고 통속성을 밑천으로 시를 싸구려화 시키고 있는 문학의 장사꾼들이 발호하고 있는 현상을 나는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과 서점에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시인들의 통속적인 시를 한 번 보자.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전문
위의 시는 류시화 라는 사람을 전국적인 유명 시인으로 만든 시집의 대표시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위의 시가 왜 통속적인 시라고 하는지 모를 수 있다. 시는 잠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의 입맛에 맞춘 해석이 별로 필요없는 설명적이거나 교훈적인 것이 시라면 성경이나 불경, 사서삼경을 읽을 일이다. 류시화의 위 제목의 시집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집 등에서 발견되는 교훈적 계몽적 내용이 통속적이라는 말이다. 법정스님의 저서나 성철 스님의 법문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적인 것이지 위대한 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한 편 더 보자
우리 만났을 때
그 때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그렇게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처음 연인으로
느껴져 왔던
그 순간의 느낌대로
언제나 그렇게 아름답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퇴색되거나
변질 되거나
욕심 부리지 않고
우리 만났을 때
그 때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그렇게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 용혜원,<처음처럼> 전문
시가 시답다는 것은 신선한 심상(心象/이미지)이고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하는 충격적인 정서를 불러내는 일이며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한 세상만물의 방언을 해석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몇 번 강조했었다. 위의 글은 아무런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 시는 엄밀하게 말하면 시가 아니다. 통속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진부함을 벗어나자는 것이다. 류시화 시인이나 용혜원 시인, 이정하 시인, 원태연 시인의 시집이 서점에서 많이 팔린다. 류시화 시나 그 시인들의 시를 좋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류시화류의 시만 좋아한다면 문제라는 것이다. 대중의 입맛에 맞는 것을 써내는 사람들 나름의 시관과 재주를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진부한 나열과 설명, 그리고 진술로만으로는 시다운 시가 될 수 없다는 시작법을 무시한다면 이 강좌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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