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122강
■ 시의 길이와 제목 붙이기
오늘은 시의 길이는 얼마정도가 적당하며 제목은 어떻게 붙이는 것이 좋은지 살펴보자.
예전 강의에서 다룬 적이 있지만 읽어보지 못한 회원이 많은듯하여 다시 다룬다.
1. 시의 길이는 몇 행정도가 적당한가?
초보자가 시를 길게 쓰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짧게 시를 쓰는 버릇이 들면 어지간히 잘 쓰지 않고는 시의 깊은 맛을 우려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너무 길게 쓰면 읽는 사람이 질리게 된다. 시가 아주 짧거나 아주 긴 경우에는 특별히 그렇게 쓴 이유가 있어야 된다. 우선 재미가 있어야 된다. 싱겁거나 너무 길어서 질리지 않게 해야 된다. 짧은 시의 경우 초보자나 젊은 사람이 썼다면 공허하게 읽힐 수 있다. 실력을 갖추지 않은채로 인생을 달관한 듯 시를 쓰면 안 된다. 그러나 시력(詩歷)을 인정받는 시인의 경우 좋은 시로 태어나기도 한다.
많이 알려진 다음의 시를 보자.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 고은, <그 꽃>전문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 함민복,<가을>전문
고은 시인의 위 시는 그 강한 울림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던 작품이다. 함민복 시인의 <가을>은 더 짧은 한 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역시 울림이 긴 시다. 이처럼 극히 짧은 시를 쓰기까지는 대단한 필력(筆力)이 있지 않고서는 좀처럼 쓰기 힘든 시다.
그렇다면 보통의 경우 어느정도의 길이가 적당할까?
독자가 시를 읽을 때 통상적으로 20~30행정도가 가장 알맞다고 한다. 초보자는 처음부터 이렇게 행을 맞춰서 쓰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선 시를 길게 써놓고 20~30행으로 줄여서 퇴고를 하는 방법이 좋다. 시가 너무 길면 독자가 읽다가 중지하거나 다시는 그 시를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그리고 연을 나눌 때는 의미가 달라질 때 나누는 것이 가장 장려되는 방법이다.
2. 좋은 제목 붙이기의 세 가지 방법
시의 제목은 시의 첫 얼굴이자 이름이다. 첫 인상이 억지스럽거나 반대로 그 시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들통나버리면 제목으로는 낙제다. 제목은 내용이 궁금하도록 해야 한다. 많은 시인이 제목 붙이기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나는 다음의 방법으로 제목 붙이기를 권한다.
첫째, 직설적인 제목 붙이기.
제목이 시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했는데 우리 회원들이 올리는 글을 보면 아직도 제목을 직설적으로 붙이는 경우를 본다. 직설적이란 시의 내용이 제목에 예속되어서 제목을 설명하기 바쁜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한라산 사계’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다고 하자 그 시는 읽어보나 마나 한라산의 사계절을 예찬한 글이라는 선입견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직설적인 제목을 붙일 요량이라면 그 내용이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해석으로 채워져야 한다. 예를 들어 나태주 시인의「풀꽃」이라는 직설적 제목의 시에는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는 새로운 해석이 있었기에 이 시가 성공할 수 있었다. 안도현 시인의「연탄 한 장」이나 김춘수 시인의「꽃」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사연이나 새로운 의미를 넣을 자신이 없다면 시의 제목을 직설적으로 붙이는 것을 삼가 해야할 것이다.
둘째, 시의 문장(모티브)으로 제목 붙이기.
T.V광고나 신문기사의 카피나 헤드라인처럼 제목을 붙이는 방법이다. 이 경우 시의 핵심 내용이 너무 드러나지 않게 전체를 아우르는 기술이 필요하다. 중심적인 모티브 하나를 택하여 제목으로 삼는 방법이다. 많은 시인이 이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아래 시는 격월간 <시와 편견>공동주간으로 수고해 주실 허형만 교수의 시다.
가벼운 빗방울
허형만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매달릴 수 없지
가벼워야 무거움을 뿌리치고
무거움 속내의 처절함도 훌훌 털고
저렇게 매달릴 수 있지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나뭇잎에 매달리고
그래도 매달릴 곳 없으면 허공에라도 매달리지
이 몸도 수만 리 마음 밖에서
터지는 우레 소리에 매달렸으므로
앉아서 매달리고 서서 매달리고
무거운 무게만큼 쉴 수 없었던 한 생애가 아득하지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문장이 될 수 없지
그래서 빗방울은 아득히 사무치는 문장이지
셋째, 시의 내용에는 없는 단어로 제목 붙이기
이 방법은 내용에 언급하지 않은 단어를 택하거나 엉뚱하다 싶은 제목 붙이기다. 이것을 잘 이용하면 보통의 시를 뛰어난 시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의 이미지와 맞지 않으면 오히려 실패 한다. 본문과 메타포(은유)가 맞아 떨어질 때 시가 훨씬 참신해 지거나 살아난다. 즉 제목은 A인데 내용은 B를 말하는 것이다. A와 B는 이미지로 연결되는 방법이다.
아래 시는 필자의 졸시 인데 제목이 본문과 이미지로 연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목수의 얼굴
이어산
당신이 목수였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나도 목수가 되기로 작정하고 십자가를 만들었지요
그 십자가엔 나의 아집과 나의 사랑 그리고 나의 허풍을
자랑스레 매달아 놨지요
무단침입한 지천명 그 험한 고개를 넘고서부터
사람들에게 꼭 맞는 십자가를 짐작하는
눈이 뜨이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십자가를 내려놓고 나의 골방에서 푹 쉬세요
꼭 필요할 땐 부를 게요
내 삶을 다 맡겨놓기가 미안하고 조금은 불안해요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온화한 눈길만 보내주었잖아요
내가 만든 십자가에서 사람들이
피를 철철 흘려요
저 사람 저 사람
그런데 내 가족이 왜 십자가에 매달려있지요
골방에 모셔놨던 당신은 왜 달려있지요
저 저 사람들 왜 내 얼굴이죠
죄 패엔 왜 이렇게 썼나요
“당신 대신”이라뇨?
- 이어산, <생명시 운동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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