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119강
■ 시 작문법 일곱 가지
우리 회원들 중에는 시인도 있고 시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완전 초보자도 있어서 나는 될 수 있으면 시짓기의 기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되 가끔 심화과정을 넘나들며 지난 3년간 이 강좌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회원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는 게 자유로운 온라인 모임의 특성상 체계적인 과정을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많기도 하지만 여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최소한의 시작법(詩作法)을 무시한 글이 종종 발견되어서 기초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때마다 나는 이 강좌가 회원들의 시짓기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여 강좌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도 진지하게 글을 읽고 올려주는 시의 짜임새가 점점 좋아지는 회원들이 있기에 부족하지만 오늘도 다시 용기를 내어서 강좌를 올린다.
“시는 아름다운 말로 엮은 언어의 집이다”라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가?
시의 궁극적 목적에서는 위의 답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듣기 좋은 노래도 한 두 번이지 “아름다운 말”로 채워지던 시의 시대는 끝났다. 계속 아름다운 것은 독자가 질리게 된다.
전라북도 진안에 있는 마이산(馬耳山)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 풍광에 감동했다. 말의 귀처럼 생긴 봉오리며 금당사-탑사를 거치는 등산로는 험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산이어서 감탄을 연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계림을 여행하면서 이강(濔江)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 기기묘묘한 풍광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마이산의 3만 6천배에 달하는 온갖 형태의 봉오리들이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데 차를 타고 가는 길가로 몇 시간째 펼쳐지는 그 풍경이 갈수록 무덤덤해지더니 나중에는 잠이왔다. “질리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계림이나 장가계, 칠채산, 황산, 강란산 등 명산이 있는 각 지역의 사람들은 각기 자기지역의 풍광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싸게 파는 집”이란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는 상점 옆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싸게 파는 집”이라는 간판을 건 장사꾼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름답다는 것도 결국 사람의 마음이고 그것도 질리게 되면 아름다움이 사라진다는 시론과 연결 되었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시론을 체험한 셈이다.
다음의 시 작법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
◾시 작법 일곱 가지
1. 시의 씨앗 받기(의미부여)
단순한 회상이나 추억, 사랑 이야기는 퇴행적 소재이므로 이를 과감하게 버려라. 시의 씨앗은 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찾아라.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마음에 그려지는 형상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 형상(이미지)이 시를 발아 시키는 씨앗이다.
2. 봉건적 리듬을 탈피하라
‘오리다’ ‘- 구려’ ‘- 하리’ 'ㅡ로 소이다' 등의 봉건적 리듬을 탈피하라. 그리고 연과 행의 구분을 무시하고 이야기 형태로 일단 길게 써놓고 축약하라. 밀가루 반죽을 제대로 해야 좋은 빵을 구워낼 수 있는 것처럼 산문 형태로 반죽부터 제대로 해야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다.
3. 세상을 달관한 듯 교훈적이거나 지시적인 늙은 시를 멀리하라
시인은 자기의 나이에서 20세는 빼고 살라는 말을 몇 번 했었다. 스무 살 더 젊다는 생각으로 황무지나 미지의 땅을 개척하듯 시를 쓰면 시가 젊어진다.
4. 쉽게 읽히는 시가 아니라 독자가 상상을 하게 만들어라.
엉뚱한 제목(이미지로 연결 된 진술적 제목)이나 엉뚱한 발상으로 주제를 그 속에 감추어라. 옷자락만 보이도록 하라. 직설적인 것은 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써라.
5. 제목에 함몰되지 말라
제목을 생각하면서 시를 쓰면 제목을 설명하는 시가 된다. 제목을 설명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A는 이래서 A다’'라는 설명은 ‘'꽃은 꽃이다'’라는 말과 같으므로 시가 되지 않는다. 시는 적어도 ''A는 B다'’ 또는 ‘'A는 B이며 C를 감춘 말이다’'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 내용과 제목이 직설적으로 연결되는 단어는 피하고 시와 관련 있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단어를 시의 제목으로 정하라.
6. 시쓰기는 울고싶은 독자와 함께 울어주는 작업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잘못하면 자랑이 될 수 있다. 비극적인 긴장미로 독자와 정서적으로 같이 울어주는 시를 써라. 이런 시는 치유의 능력을 발휘한다. 고독, 무기력, 우울, 슬픔, 비애적(悲哀的) 정서를 유통 언어나 봉건적 언어가 아닌 최대한 새롭거나 개성적인 언어로 표출하라.
7. 정서의 집을 완성하라
구조화 되지 못한 시는 짓다가 그만둔 집처럼 된다. 등장한 단어는 반드시 의미의 연결에 필요하도록 하라. 시를 쓸 때 의미의 수미상관(首尾相關)이 되지 않은 것은 쓰다가 만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라.
김치를 썰다가 문득,
날 선 창을 알몸으로 견디는
골고다 십자가를 만난다
칼 쥔 손에 힘을 주면
삭둑삭둑 잘리는 허상 앞에
그는 오롯하게 살아있다
살아서 날마다
더해지는 상처를
온 몸으로 감싸 안는다
상처를 아름답게 품고 사는
그에게서 나는
죽는 듯 사는 법을 배운다
- 옥효정, <도마>전문
도마 위에 김치를 얹어놓고 썰다가 알몸으로 골고다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한 한 사나이를 떠 올린다. ‘칼 쥔 손에 힘을 주면/삭둑삭둑 잘리는 허상’이라는 표면 뒤엔 세상의 권세나 명예는 그 사나이를 알았기에 허상이라는 내면적 의미를 감춰놓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오롯하게 살아’서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자신의 상처(죄)를 창에 찔렸던 그의 ‘온 몸으로 감싸 안는다’고 한다. ‘상처를 아름답게 품고 사는/그에게서’ 화자는 ‘죽은 듯이 사는 법을 배운다’고 함으로써 희생과 봉사와 순종의 삶을 배우고 있다.
이 시는 제목에 함몰되지 않고 ‘A는 B다’라는 의미 상관의 시로 끌고 왔다. 그러나 눈 밝은 독자는 C에 감춰진 그 무엇을 찾아낸다. ‘A는 B임을 말하지만 C의 옷자락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그 C는 “도마”다. 주방 기구의 도마에서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인 "도마“를 본 것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그는 예수의 옆구리에 난 창에 찔린 자국을 만져보고서야 부활의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다. 이 ''도마''는 예수의 희생정신으로 치환 된다. 이 시는 짧지만 지독한 신앙시(信仰詩)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문이나 신앙고백 등 근본주의적인 글을 신앙시라고 우기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A와 B는 핵심 C를 말하기 위한 장치였다. 시란 이렇게 중층적 의미(뜻 겹침)가 깊을수록 시가 추구하는 "퍼 올릴 수록 맛이 나는" 시다운 시로 태어날 수 있다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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