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117강 숨김의 시학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2:40

 <토요 시 창작 강좌> 제117

   ■ 숨김의 시학

   나는 나 자신과 여러분께 ''시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고자 한다.
   ''시만 잘 쓰면 시인인가?''

   21세기 초까지는 시인이 좀 괴팍하거나 경제활동 무능자, 아웃사이드적인 허무주의자, 심지어는 알코올중독자도 시만 잘 쓰면 용납이 되었다.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작품이 훌륭하다고 해도 이젠 그런 사람이 각광을 받거나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시인이 쏟아져 나오는 홍수 속에서 역설적으로 시 정신이 바로 박힌 시인이 우대받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인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아도, 시를 잘 쓴다고 할지라도 진정한 의미의 시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내가 시인다운 시인의 삶을 산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나도 불량품 시인 중의 한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시의 본질적 가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시인의 순수성이 구현되어야 하는데 세상에 부대끼면서 나의 순수성을 지키기가 정말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시인의 순수성이란 ‘시를 쓸 때에만 시인이 아니라 세상의 희로애락 현장이 시의 현장이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하루 종일 잡사(雜事)에 부대끼다가 특정한 시간대에 시를 쓰는 것은 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시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시를 생각할 수 없었다는 핑계나 도피적 알리바이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시론을 설파한 시인도 있다. 지난 강의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시의 정의는 시인의 숫자만큼 많기에 정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쓰는 사람은 시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어야 자신만의 향기를 제대로 낼 수 있다. 자기의 시에 자신만의 시혼(詩魂)과 삶의 철학을 응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서도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면 시가 되지 않는다. 언어의 절제란 감정의 절제를 뜻한다.

   함축과 생략을 통하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시 작법에 참고할 다섯 가지

   1. 시는 전사(前事)가 아니라 후사(後事)다
      (드러난 이야기가 아니라 숨겨진 이야기, 즉 그림자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숨겼다는 것은 그 숨김을 이해 불가능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연관된 이미지로 열쇠를 독자에게 쥐어주라)

   2. 시적 내면화 연습을 계속하라
      (내용이 뻔하지 않게 하고 한 번에 뜻이 쉽게 잡히지 않도록 압축과 생략을 하라)

   3. 시인이 창조해야하는 것은 문장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존재다.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시 속의 화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뚜렷하도록 하라)

   4. 상상력에 걸신이 들어라
     (시인은 상상력을 얻으려 다니는 영혼의 걸인이 되어야 한다. 상상력의 재벌이 되어야 시의 파티를 열고 이미지의 칵테일로 건배를 할 수 있다)

  5. 시인의 직장은 삶의 현장이 되도록 하라
   (우리의 삶을 시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시인의 삶이 되는지에 초점을 맞춰라)


   “시를 잘 쓴 사람은 문학사에 남겼지만 시를 알고 뜨겁게 시인의 삶을 산 사람은 우리의 영혼 속에 살아남는다‘는 시론을 설파한 시인도이 있다. 기능적 시인이 아니라 시의 본질적 정신성에 다가선 시인이 우리의 시사에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다시 봄
   세상을 다시 봄
    - 이숙희, <기적> 전문

   위 시는 조사 ‘은’과 ‘을’만으로 시행(詩行)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 편만 더 보자.


   식어가는 치킨 앞에서
   한 여자가 눈물을 쏟는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치킨에 닿자
   치킨은 낮게 중얼거린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만”

   벌거벗은 몸뚱이가 시리다
   낯선 조우(遭遇)

   포크로 가슴을 찌른다
   껍질을 벗긴다

   입술이 사라진다

        - 송현경, <치킨의 사생활> 전문


   위 시가 말하고 있는 핵심은 인간과의 관계다.
   어느 날 갑자기 마주한 치킨처럼 달라져 버린 사람 앞에서 “한 여자”는 “눈물을 쏟으며” 할 말을 잃는다고 했다. 벌거벗은 시린 몸뚱아리, 포크로 가슴을 찌르며 껍질을 벗겨버리고 싶은 불편한 만남이다. 입술이 사라진다고 하였으니 ‘할 말이 없다’라는 표현이다. 치킨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관계의 불편함을 말하고 있지만 전혀 그것을 전면에 드러내 놓고 있지 않다. 전사(前事)가 아니라 후사(後事)다.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란 이런 시를 말하는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