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112강
■ 감각적 사유와 몸성 이미지
시에서 시인의 철학적 사고나 고차원적인 사유를 독자에게 가르치려하거나 설명하는 순간 이것은 시가 아니라 수필이 된다. 시에서 필요한 것은 담담하고도 감각화 된 사유다. 감각적 사유란 정서적 느낌 같은 것을 말한다. 시인의 시각이나 교훈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진한 맛을 정서적으로 독자가 느끼게 할 수 있을 때 좋은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시의 맛이 깊다'란 것은 내용의 깊이가 아니라 정서적 울림(느낌)의 깊이다.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 최찬상, <반가사유상>전문
위 시는 2014년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시인은 반가사유상의 외연과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였을 때 인생무상을 느끼며 고뇌하던 모습에서 유래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국보78호와 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절제된 언어로 반가사유상 겉에 드러난 꼭 필요한 것만 묘사하고 그 이면에 담겨져있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속성의 답을 찾아가듯 질문을 던지면서 감각적 사유로 깊이있게 접근하고 있다. 이 시의 압권은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생각이므로/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라는 부분과 "한 자세로/녹이 슬었으므로/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반짝이겠다"라는 부분이다. 무릎을 칠만한 절창구가 아닌가? 녹이 슨 상태의 저 안엔 부처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표현은 무소유의 가치로까지 확대되어 '그는 면벽한 자세만 남기고 떠났다'고 함으로써 울림을 준다.
이렇듯 좋은 시란 단순한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에 다가서는 감각(느낌)적 사유의 깊이에서 결정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사유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일 때 더욱 생동감 있는 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작법은 시적 대상을 우리 몸이 갖고 있는 몸성의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서 '바람에도 손발이 있다'거나 '바람이 태백산을 넘어오는 동안 등뼈가 휘어졌다'는 표현, '개의 욕설을 듣고 달의 얼굴이 샛노랗게 변했다'거나 '흙의 심장이 멎고나서 흙빛은 흑빛으로 변해 가고'라는 표현 등은 시적 대상을 우리의 몸성에 맞물리도록 배치하는 것이다.
그가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물을 버렸다
내가 물을 버렸을 때
물은 울며 빛을 잃었다
나무들이 그 자리에서
어두워지는 저녁 그는
- 이문재, <낙타의 꿈> 중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지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들만 남겨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
(중략)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 김광섭, <산>에서
우리가 시를 쓸 때 '무엇을'이라는 시적 대상의 중요성은 전체 비중의 10%도 채 안 된다. 반면 '어떻게' 쓸 것인가가 내용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강의에서도 한 번 다뤘지만 시란 결국 하잘 것 없는 대상이라도 '어떻게'쓰느냐에 따라서 시적 수준이 결정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위 시 두 편은 상당히 긴 시인데 일부만 소개했다. 시적 대상을 우리의 몸성과 연결하여 어떻게 감각적으로 풀어내고 있는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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