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 제114강
■ 시 쓰기의 애매성
우리가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말을 듣는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려고 하지만 자칫 방심하면 잘못 말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설화(舌禍)를 겪기도 한다. 그렇다면 '말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시는 왜 비논리적이고 애매하게 쓸까? 단적으로 말해서 시란 인생사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생사에는 정답이 없잖은가? 시도 그렇다. 각자 느끼는 감성과 서정은 주관적인 것이기에 객관적인 정답이 없다.
시에서 '애매성'을 빼버리면 산문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의 애매성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인식이 필요하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여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분명한 글을 시라고 발표하는 경우를 본다. 이렇게 되면 시인의 역량이 모자라서 얼버무린 것으로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현대시는 애매성을 무기로 난해한 시를 쏟아내는 시인들이 넘쳐나서 독자가 시에서 멀어지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에서 애매하다는 말은 부정확 하거나 해독 불가능한 난해한 글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다의적(多意的) 의미가 내재(內在)된 상태를 말한다. 엠프슨(W. Empson)은 애매성을 "뜻 겹침"이라고 말했다. 문학용어로 중층묘사라고도 한다. 현대시단은 대체로 애매성을 적극 옹호한다. "시의 미감(美感)은 애매성이 클수록 풍부해 진다"고도 한다. 나도 그 말에는 적극 동의하는 입장이지만 애매성과 난해성이 구분되어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시는 시적 대상(사물)을 빌려서 우리의 인생사를 애매하게 말하는 문학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사가 내포되지 않은 시는 사물의 서술이나 묘사(스케치)에 그치기 쉽다. 그래서 직설적이지 않되 사람살이의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시가 좋은 시라는 것이다.
쇠의자에 등뼈를 세우고 앉아
밥을 먹는다
밥이라는 말처럼 슬프고 기쁜 말이 있을까
밥? 밥 먹고 산다는 말을 먹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 한 숟갈의 뭉클함
밥알 한알 한알의 그리움을 먹는다
창밖 가시나무에 앉은 새! 너 가지 마라
나와 함께 밥을 먹자꾸나
쇠의자에 등뼈를 세우고 앉아
울컥울컥 새소리를 쪼아 먹는다
수인(囚人)처럼
내가 내 몸을 뜯어 먹는다
눈물 몇 방울을 후식으로 먹는다
- 문정희, <쇠의자> 전문
위 시를 처음 읽는 사람은 내용이 애매할 수 있다. 시를 한 번 더 읽어보라. 나름대로 해석이 되고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밥 먹고 산다는 말을 먹는다'란 부분과 '울컥울컥 새소리를 쪼아 먹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렇다 시인이 밥을 먹거나 말을 먹는다는 것은 시를 쓴다는 상징적 의미다. 이 열쇠만 가지면 이 시는 다 풀린다. 좋은 시란 이처럼 일상적인 일에도 예기치 않은 생각을 새롭게 조립하였을 때 발현 된다. '가시나무'의 환경에서도 새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듯 시가 그렇게 쓰여진다면 좋으련만 수인처럼 말글에 갇혀 새소리를 쪼아 먹듯 기억을 쪼아먹는 작업이 시 쓰는 일이라는 것이다. 시 쓰기의 곤고함은 먹고 살기위한 고통 같은 것임을 이 시에서 읽혀진다.
내친김에 문정희 시인의 시 한 편을 더 보자.
몇 날을 혼자다
혼자 집이다
온 세계가 나 하나로 가득하다
시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창밖의 석류도 혼자 여물어간다
다 익으면 혼자 입을 열리라
그래, 홀로 잘하거라
차를 한 잔 마시려고
불 위에 물을 올린다
물이 불을 만나 와글와글 소리를 낸다
나는 물에게 말한다
뜨거워졌니?
어서 내 몸으로 들어오너라
- 문정희, <뜨거운 소식>전문
위 시에서 '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이 시도 술술 풀린다. 다의적으로 해석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시도 시쓰기의 고통을 이야기 한 것이다. '창밖의 석류도 혼자 여물어'가듯 '다 익으면 혼자 입을 열리라'고 한다. 여기에서 물은 '시'다. '물이 불을 만나 와글와글 소리를'내듯 시도 '와글와글 소리'를 내도록 뜨겁게 체화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있다. 그러면서도 에로티즘(Erotism)적 분위기가 묘하게 사람에게 흥분감을 준다. 본문 어디에도 시를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말 하면서 저말 하기, 거짓말로 참말하기가 시다.
우주 정원 어디쯤에서 한 점
열로 피어나면서 떨고 있을 흑점
그것이 내 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난다
이런 날 나는 나에게 문병을 간다
울음의 온도를 높여 불온한 별들을 마음에 띄우는 것이다
(중략)
눈이 멀기 전 장님이 본 세상의 마지막 풍경은
얼마나 아득한 것이었을까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
- 김원경, <이 별과의 이별>부문
이 시도 이 별(星)을 이야기 하면서 이별(離別)을 말하고 있다. 뜻 겹침이다. 만약 본문에 '이별'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면 시시한 통속적인 시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시에서처럼 생각할수록 이별의 절절함이 묻어나게 쓸 수만 있다면 좋은 상태의 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이라면 만나고 헤어짐을 다반사로 하는 흔한 소재이기에 '이별'이라는 제목의 시는 정말 잘 쓰지 않고는 성공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 시는 제목을 "이 별과의 이별"이라고 살짝 변형 시켰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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