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109강 난해한 시와 다의적인 시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2:33
  <토요 시 창작 강좌> 제109강

   ■ 난해한 시와 다의적인 시

   시는 주관적 성격의 장르이기에 시인의 주관적 해석을 독자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시를 읽는 대다수의 독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된다. 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엄혹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하여 현대시가 어려워졌고 일반 독자들은 시에서 점점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 영향이 지금도 시단에 남아있어서 시의 본류인 '서정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억누르고 있고, 아직도 좋은 시의 반열에는 해석이 어려운 시가 놓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 것은 난해한 시와 다의적(多義的)인 시를 혼동하고 있는 문제다. 난해하다는 것은 뜻을 너무 감춰 놓거나 그 의도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시를 말하는 것이고 다의적이란 내적 의미의 큰 줄기는 바로 서 있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상태, 즉 다층적이거나 다중성이 내포된 시를 말한다.

   ''시는 쉽게 독자에게 읽혀야 한다''라는 분위기를 타고 너무 쉬운 시, 시가 되지 않는 글을 시라고 내어놓는 시인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이로인하여 시의 질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져서 지금은 신인들이 소위 주류라는 시단에 진입하는 장벽이 점점 높아져서 2류, 3류로 회자되는 시인들은 주변부 문학판을 형성하는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다. 그러나 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서정적 의미를 살리고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준의 시를 쓸 수만 있다면 1류든 2류든 무슨 상관이랴.

   그동안 나는 시의 제목이나 내용에서 시인의 의도가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위에서 언급한 어려운 시와 다의적인 시처럼 숨기는 것과 암시적인 것을 혼동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시를 숨기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도록 어렵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암시성을 갖도록 하라는 뜻이다. 제일 좋은 시는 구체적인 형상(이미지)을 세우되 그 안에 시적인 암시가 서려있어야 한다.
   사실적인 내용으로만 시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있을 법한 사실성에서 너무 동떨어진 것도 문제가 된다. 즉, 리얼리티(reality/실제성)가 부족하면 긴장감도 떨어진다.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독자도 알고 있는 흔한 내용이거나 시가 재미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걸 쓰거나 설명적으로 풀어서 쓴 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는 더 큰 문제다. 이런 경우는 보통 시적인 논리가 형성되지 않아서 자기가 한말을 되풀이(중언부언/重言復言)하거나 이말 했다가 저 말(횡설수설)하여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잘 모르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시의 대상이 비록 허구의 이야기로 꾸민 구조라 할지라도 시적 정황이나 펼쳐지는 장면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고 그 안에 긴장감이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될 때 좋은 시가 탄생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꼼꼼히 살펴보니
   어라? 진열장 안 명품 고려청자들의 몸엔
   다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금이 간 것은 명품이 아니라고 믿어온 내게
   누군가 잘 일러 주었다

   식은 테, 혹은 빙렬이라고 하는 금이 있기에
   이 청자들은 영원히 명품이라고

   또 언젠가는 북한산 산행길에 보니
   어라? 고태 은은한 옛 성곽의 돌과 돌 사이엔
   다 틈이 있었다

   틈이 생기면 쉬이 무너진다고 굳게 믿는 내게
   바람이 잘 일러 주었다

   성곽의 숨구멍, 이 틈이 있기에
   장구한 세월에도 성곽은 요렇게 건재하다고

   인간들은 오늘도
   금이 가서 헤어지고, 틈이 생겨 무너지는데
   알고 보니

   저 자연에선

   금이라는 것
   틈이라는 것

   엄청 좋은 것!

        - 문창갑, <금과 틈>전문


   위의 시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현실에서 소외된 것에 대한 관심을 점증시키는 기법을 사용하였고 화자는 금과 틈은 무엇을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이 있어서 명품이 되기도 하고 틈이 생겨서 성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며 자연에서는 함께 살아가는데 금과 틈이 오히려 필요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관계의 단절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주 작은 금과 틈이고 결국 이런 것들이 모여 생의 한 부분을 이루므로 금과 틈을 수용하는 자연에서 그 여유를 배우자는 뜻으로도 읽혀진다.

   이처럼 제대로 된 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증은 유발시키고 있는지, 다의적인지, 긴장감을 더하는지, 새로움이 있는지에서 결정 된다고 해도 될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