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111강 시어 선택의 허와 실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2:35

<토요 시 창작 강좌> 제111강

   ■ 시어 선택의 허와 실

   '넓은 들에 장미가 잡초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 있다'를 시적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다음 중 어떤 표현이 마음에 드는가?

   1)넓은 들에 활짝 피어있는 잡초속의 아름다운 장미
   2)들에 피어있는 잡초속의 아름다운 장미
   3)들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장미
   4)들에 핀 장미
   5)들의 장미
   6)들장미

   시의 초보자는 아래로 내려올수록 어딘가 좀 허전할 것이다. 마치 치석 제거를 하고나서 입속의 혀 끝이 까끌하고 이빨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이……. 그러나 시는 가능한 한 언어를 절제하고 의미를 함축시키는데서 그 미학적 효과가 더욱 두드러지는 장르이다. 따라서 “시는 가능한 한 언어를 버리고 더 이상 버릴 수 없는 마지막의 언어를 선택해 써야 한다”는 오세영 시인(서울대 교수)의 시론은 시인들의 지침이 되고 있다. 이 강좌를 통하여 "언어 경제의 법칙"이 시의 기본임을 몇 번 강조했던 것과 같은 말이다.
   위 예문에서의 '들'이란 원래 '넓다'란 의미와 야생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장미가 필 정도의 넓은 야생이라면 잡초가 없겠는가? '장미'도 장미꽃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전제로 한 말이다. 그래서 구태여 '넓은'이나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는 언어의 낭비이며 산문적 설명이므로 시적 완성도를 생각한다면 '들장미' 한 단어로도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빠른 쾌유를 빕니다'라든지 '처갓집에 간다'와 '000님 귀하' '귀하께서는'처럼 시에도 별 생각 없이 관습적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짧은 문장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의 수준이 드러날 수 있다. 쾌유(快癒)란 말 자체가 '빨리 병이 낫기를'이란 의미가 담겨있고 처가(妻家)란 말도 '처의 집'이라는 뜻이 포함 되어 있기에 '빠른 쾌유'나 '처갓집'이라는 말은 겹말이다. '000님 귀하'나 '귀하께서'도 '님, 귀하, 께서는'은 모두가 별도의 극존칭이므로 하나만 써야 된다. 또한 현수막을 영어로 말할 때에도 정확한 표현인 '플래카드(placard)'가 아닌 플랜카드, 플랑카드 등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고 아직도 바비큐(barbecue)를 바베큐로 잘못 쓰거나 한문인 폄훼(貶毁/다른 사람을 깍아내려 흘뜯음)를 폄하로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시에는 단어 하나를 차용할 때에도 겹말이 아닌지, 정확한 표현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시인의 의무이자 기본적인 자세다. 시가 말놀이라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시인이란 우리의 모국어를 가꾸어 가야할 위치에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또한 시에서는 될 수 있으면 접속사(接續詞)나 감탄사(感歎詞), 대명사(代名詞)를 남발하면 안 된다.

   접속사는 문장의 앞뒤를 연결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나, 또는, 그래서, 왜냐하면' 등의 등위접속사(等位接續詞), ~때문에, ~ 할 때, ~하자마자, ~할 때까지, 비록 ~지만, ~후에 등의 종속접속사(從屬接續詞), 그리고 상관접속사(相關接續詞)인 ‘뿐만 아니라’ ‘A또는 B 둘 중 어느 쪽도’ 등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시가 깔끔해 진다. 접속사가 많이 쓰인 문장은 산문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탄사는 시에서 기피해야 될 대표적인 표현이라고 몇 번 강조했었다. 감탄사는 감정을 직접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시인이 감탄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감탄해야 하는데 잘 못하면 독자에게 감탄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 스스로가 동의하고 감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명사(代名詞)란 사람이나 사물, 처소 등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가리키는 품사인데 포괄적인 표현이다. 예를 들어 '새가 날아와서 지저귄다.' '너는 거기서 무엇을 하려고 섰는가?' '시골의 호젓한 길을 걷고 있다'등의 표현이다. 시에서는 그 상황에 제일 적합한 것, 즉 '새'라면 참새인지 직박구리인지 멧새, 되새인지를 쓰는 것이고 '시골의 호젓한 길'이나 '너는 거기서 무엇을'처럼 막연한 표현이 아닌 구체적인 것이 훨씬 시적이다. 두루뭉술한 것은 시인의 표현력 미숙을 드러내는 것이다.

   찰비산이 놀다 간 길
   달맞이꽃을 세며
   향아 냄새 맡으러 가는
      <향아 잠들다> 부문


   너도밤나무 향이 질펀할 때
   그 배에 올라
   사나흘 출렁거리다가
       <울릉도 트위스트> 부문

   위의 따옴 시는 필자의 습작시 중의 일부문이다. 구체성을 띠게되면 훨씬 시적인 흥미를 끌 수 있게 된다.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에

   맞댄 두 꽁무니를
   포갠 두 날개로 가리고
   사랑을 나누는 저녁 매미

   단 하루
   단 한사람
   단 한 번의 인생을 용서하며
   제 노래에 제 귀가 타들어 가며

   벗은 옷자락을 걸어놓은
   팔월도 저문 그믐

   멀리 북북서진의 천둥소리

          - 정끝별, <처서> 전문

   위 시는 버릴 것이 더 이상 없는 구성어(構成語)이다.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라는 구체성이 시를 더욱 싱싱하게 한다. 시인의 내면적 깨우침은 '멀리 북북서진의 천둥소리'에서 더욱 긴장감을 주고 있다. 지극히 제한적이고 선별적 시어를 통해 통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사랑'과 '용서'라는 관념어를 새로운 얼굴로 만들었다.

   이처럼 시는 보태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버려서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마지막으로 선택된 언어를 배열하여 이야기가 명징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당신도 지금 써보라.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