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107강
■ 시의 조건, 시인의 조건
영국 BBC방송이 발행하는 잡지 <포커스> 2010년 2월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OECD가입국 35개 나라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국민 1인당 연간 포르노에 가장 많은 돈을 쓴 나라 1위가 한국, 2위는 일본, 그 뒤로 호주, 핀란드, 중국, 브라질, 체코, 대만, 미국, 캐나다의 순서였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정욕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 1등 자리를 2010년 이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니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사회학자들은 식탁문화가 실종되어가는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기인한바 큰 것이라는 분석을 내어놓고 있다. 식사시간은 단순히 배만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한 인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자리라는 것이다.
시인도 그렇다. 혼자서 제멋대로 배운 사람은 겉멋에 치중하거나 포르노처럼 시의 정욕에 치우쳐서 감정을 함부로 배설할 위험이 높아진다. 동인활동이나 시 모임을 통해서 시인의 자세도 배우고 시의 흐름도 배우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시는 쌍방향의 소통문학이기에 더욱 그렇다.
언어는 소통을 목적으로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그 언어를 가장 아름답게 가꾸는 이가 바로 시인이다. 시인이 언어를 함부로 다룬다면 시인의 자격이 없다. 시인의 서정적 충동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시는 글이 아니라 시 속의 화자를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언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언어는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소통이 되지 않는 시는 시인에게 책임이 크다. 표현이 미숙하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옥돌로 그릇 하나를 만들 때도 옥을 자르고 쓸고 쪼고 가는 과정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논어의 절차탁마(切磋琢磨)에서 시인들은 시의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 까지 정성을 다하여 언어를 자르고 다듬고 군더더기가 없도록 함을 배워야할 것이다. 여기에서 초보 시인들이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는데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은 시를 독자가 알아듣도록 설명하라는 말이 아니다. 마음으로 떠오르는 형상, 즉 심상(이미지)을 제대로 세우라는 것이다.
시를 공부하다 보면 심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어떻게 하면 심상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가?
우선, 시는 시적 대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물을 보면서 시를 쓰면 설명이 되기 쉬우므로 눈을 감고 그 사물과 연결되는 이야기를 상상으로 만들어 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부모, 친구,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잊어라. 그런 시는 식상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도 못한다. 그리고 사랑, 이별, 미움, 과거, 그리움 등 관념적인 것도 써봐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 것은 초보들이 쓰는 수준 낮은 소재로 낙인 찍혔다고 해도 될 만큼 너무도 흔한 것이어서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란 쉽지가 않다. 그럼 무엇을 쓰란 말이냐고 반문한다면 당신은 아직 초보 중에 초보다. 당신이 타는 자동차를 예를 들어서 핸들이나 백미러, 매일 오가는 도로변의 특정 건물, 책장에 꽂혀있는 많은 종류의 책, 옷장 속에서 몇 년째 세상을 구경하지 못한 옷 등 소재는 무궁무진 하다. 이런 것들을 모티프로 하여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상상을 하다보면 그것들이 말을 걸어 올 것이다. 그럴 때 재빨리 받아 적어라.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실제로 존재하는 그 대상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상상이란 어차피 허구이다. 소설이 허구이듯 시도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창조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잘 안 되면 우선 다른 사람의 좋은 시를 옮겨 적어놓고 그 작품 속에 내 생각을 집어넣어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모방을 잘하게 되면 자기의 생각을 점점 많이 끼워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이 강의를 어떤 평론가는 ''짜집기 한 글이다"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 나의 이 강의는 새로운 것이 없다. 많은 시인과 평론가들이 이미 소개했거나 내가 공부했던 지식을 끄집어내어서 짜집기한 것이 틀림없다. ''해아래서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성경구절처럼 세상에 없는 것을 내가 창조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이런 저런 것들을 참고한 시창작법을 정리하고 때로는 모방한 것에 내 생각을 끼워 넣는 것을 못한다는 것은 글쓰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에는 유명한 평론가와 시인이 많다. 그러나 나는 유명하지도 않고 실력도 별로 없다. 화려한 간판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시사모에 머물 필요가 없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경력이나 존경받는 훌륭한 평론가, 시인, 교수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 사람을 찾아가서 배우기 바란다.
나는 많지 않은 지식이지만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사회적 낭비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국의 시인이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될 책으로 알려진 '우리말 갈래사전'을 펴낸 박용수 선생은 내가 살던 고향에서 사진관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18세 때 심한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었는데 그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사라져가는 우리말의 중요성에 눈길을 주게 되면서 사람, 생활, 문화 등 아홉 개의 벼리를 바탕으로 204개의 갈래로 나누어 제시한 7만여 개의 우리 고유의 말을 집대성한 <우리말 갈래사전>을 펴냈다. 이 책은 한길사와 서울대학교출판사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펴냈다. 문익환 목사가 방북하였을 때 김일성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그 책은 고등학교만을 졸업하고 청각장애를 안고 사는 박용수 라는 사람의 땀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언론과의 필담 인터뷰에서 "왜 이런 힘든 일에 평생을 바치느냐?"는 물음에 "필요한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찾아 다녔다"고 했다. 유명하거나 높은 학력의 소유자도 아닌 그를 통해서 순 우리말과 토속말, 지역 말이 집대성되고 보존 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는 사실에 시인들은 정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남 주지 않을 거라면 시도 애써서 배울 필요가 있을까? 시를 발표하는 것 자체가 나의 시를 남에게 주는 행위다. 남 줄 것이기 때문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감동을 주고, 공감을 주기 위해 시를 배우려고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것이다.
앞으로 시사모 회원들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어떻게 하면 시를 제대로 읽어 낼 것이며 쓸 것인가에만 관심을 두라. 남의 글을 읽거나 내 글을 발표할 때에도 '배려와 공감'이라는 큰 화두를 가슴에 품기를 바란다. 시사모 회원간에는 시가 아니라 다른 조건으로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처음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지극히 적은 나의 지식이지만 짜집기 해서라도 시를 읽거나 쓰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다. 시사모는 나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 주기 위해 오늘까지 왔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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