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103강
■ 개성적인 시 쓰기
음식 맛이 있다고 고급음식이란 이름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 곳에나 있는 흔한 것이 아니어야 하고 그 음식을 담는 그릇과 맛깔스런 음식의 모양,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고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요즘은 위에 언급한 것에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개성까지 더한 것을 최고로 쳐준다.
시도 그렇다. 형식과 내용이 제대로 어우러져야 하고 시인의 개성 까지 담아낸 시를 좋은 시로 쳐 준다. 그렇다면 맛있고 고급스러우며 개성이 있는 시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단 말인가?
시 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학과 예술의 구조는 '형식과 내용'이라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은 마음과 몸, 정신과 육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구조인데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형식)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내용)이다"라는 말이 갖는 의미와 비슷하다. 시를 쓸 때 우선 형식이 좋아야 한다. 볼품없거나 더러운 그릇(형식)에 담긴 음식은 맛(내용)이 있고 없고 간에 쉽게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음식을 먹는 이는 독자인데 독자를 배려하지 않고 난삽하거나 거친 시어 조립(詩語組立)과 표현기법이나 상징기법이 직설적이면 아름답지 못한 그릇이다. 그릇이란 시인의 얼굴이자 성격이다. 에머슨은 "자신이 스스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전 세계를 여행한다 하더라도 결코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자기가 지닌 만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미(美)와 성(聖)은 하나이며 동질의 것이다"라고 게오르규는 설파했는데 성스런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성스럽다는 말과도 같다. 즉, 내용과 형식은 동질의 것이란 차원의 말이다.
시 형식의 으뜸에는 운율이 놓여 있고, 내용의 으뜸엔 서정적 논리구조가 놓여있다. 이것은 "시인은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라는 J.C랜섬이 했던 유명한 시론과도 통한다. 그런데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상상력의 핵심은 이미지(image)를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줄거리가 있는 구조로 만드는 일이다.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내용과 형식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말 하면서 저 뜻을 숨겨놓은 중층 묘사도 포함된다.
모든 예술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해도 될 만큼 상상력은 예술 창작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적합한 언어를 찾아내고 제자리에 끼워 넣는 능력이 없으면 좋은 시가 완성되지 않는다. 적합한 언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민감한 감식 능력이 있어야 된다. 길을 가다가 눈에 띄는 상점의 간판이 그 가게에서 파는 물건과 이미지가 가장 맞아 떨어지는 상호인지, 신문의 제목이 기사의 내용에서 뽑은 가장 적합한 것인지를 눈여겨 보는 습관이 감식 능력을 키우는 연습이다. 그래서 시 창작이란 결국 무질서한 사물을 질서화 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에서의 행(行)과 연(聯)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형식도 질서화를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시를 왜 쓰느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말을 하기 위해서 쓴다고 해야 하고, 시를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말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생명 시 운동>을 제대로 이해 한 것이다. 시인이라면서 순화 되지 못한 시어를 나열하거나 불안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들쑥날쑥한 시를 쓴다면 이름만 시인이지 시인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품위 있고 세련된 언어, 순수한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 사람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자 인격과 직결된다. 말이 아름다우면 행동이 아름답고 말이 거칠면 행동이 거칠게 마련이다. 마음이 맑으면 말이 맑고 글이 맑으면 사람들에게 좋은 기(氣)를 줄 수 있다.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는데 사특하거나 이중 플레이를 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형식과 내용이 제대로 어우러지게 하란 말이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정서가 없다면 세상은 사막처럼 변해갈 것이다. 가면을 쓰고 시를 남을 공격하는 도구를 쓴다면 시인이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개성 있는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롭고 개성 있는 정서를 독자에게 선물할 수 있을 때 완성 되는 것이다.
변기가 살아 있다, 이 밤에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변기 저 혼자 클클클 웃는 소리,
부글부글 용암이 솟구치듯 이따금씩
내 머릿속을 헤집고 나와
불쑥 내지르는 주먹.
휩쓸어 끌어들이는 소용돌이 물살 속에
너도 들어오라고
클클클 기분 나쁘게 웃는 소리.
- 강인한, <웃는 얼굴> 전문
위 시는 강인한 시인의 시관(詩觀)을 보여준다. 그는 속으로 울음을 우는 시인이다. 변기의 물을 내리듯 클클클, 세상을 한 번 비웃고는 불편하거나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을 변기에 버리고는 물을 내린다. 그 속으로 ''너도 들어오라고''기분 나쁘게 웃는다. 변기가 클클클
시사모 회원들이여,
당신도 오늘 밤에 웃는 얼굴의 변기에 더럽게 기분 나빴던 일이나 이해되지 않은 사람들을 싸잡아서 버리고 주먹질 한 번 하고 물을 내려버려라. 변기가 클클클 대신 웃어줄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열심히 살아볼 일이다.
102강에서 신달자 시인의 시 <저 허공도 밥이다>를 읽고 감상문을 댓글로 다신 분 중에 다음 세 분을 선정하여 시집 선물을 보내 드린다. 일창에 주소를 남겨주시기 바란다.
1. 박용철(창원)
2. 유경화, 안산
3. 김용주 / 서울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55>
■ 개성적인 시 쓰기
음식 맛이 있다고 고급음식이란 이름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 곳에나 있는 흔한 것이 아니어야 하고 그 음식을 담는 그릇과 맛깔스런 음식의 모양,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고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요즘은 위에 언급한 것에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개성까지 더한 것을 최고로 쳐준다.
시도 그렇다. 형식과 내용이 제대로 어우러져야 하고 시인의 개성 까지 담아낸 시를 좋은 시로 쳐 준다. 그렇다면 맛있고 고급스러우며 개성이 있는 시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단 말인가?
시 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학과 예술의 구조는 '형식과 내용'이라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은 마음과 몸, 정신과 육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구조인데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형식)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내용)이다"라는 말이 갖는 의미와 비슷하다. 시를 쓸 때 우선 형식이 좋아야 한다. 볼품없거나 더러운 그릇(형식)에 담긴 음식은 맛(내용)이 있고 없고 간에 쉽게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음식을 먹는 이는 독자인데 독자를 배려하지 않고 난삽하거나 거친 시어 조립(詩語組立)과 표현기법이나 상징기법이 직설적이면 아름답지 못한 그릇이다. 그릇이란 시인의 얼굴이자 성격이다. 에머슨은 "자신이 스스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전 세계를 여행한다 하더라도 결코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자기가 지닌 만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미(美)와 성(聖)은 하나이며 동질의 것이다"라고 게오르규는 설파했는데 성스런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성스럽다는 말과도 같다. 즉, 내용과 형식은 동질의 것이란 차원의 말이다.
시 형식의 으뜸에는 운율이 놓여 있고, 내용의 으뜸엔 서정적 논리구조가 놓여있다. 이것은 "시인은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라는 J.C랜섬이 했던 유명한 시론과도 통한다. 그런데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상상력의 핵심은 이미지(image)를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줄거리가 있는 구조로 만드는 일이다.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내용과 형식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말 하면서 저 뜻을 숨겨놓은 중층 묘사도 포함된다.
모든 예술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해도 될 만큼 상상력은 예술 창작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적합한 언어를 찾아내고 제자리에 끼워 넣는 능력이 없으면 좋은 시가 완성되지 않는다. 적합한 언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민감한 감식 능력이 있어야 된다. 길을 가다가 눈에 띄는 상점의 간판이 그 가게에서 파는 물건과 이미지가 가장 맞아 떨어지는 상호인지, 신문의 제목이 기사의 내용에서 뽑은 가장 적합한 것인지를 눈여겨 보는 습관이 감식 능력을 키우는 연습이다. 그래서 시 창작이란 결국 무질서한 사물을 질서화 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에서의 행(行)과 연(聯)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형식도 질서화를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시를 왜 쓰느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말을 하기 위해서 쓴다고 해야 하고, 시를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말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생명 시 운동>을 제대로 이해 한 것이다. 시인이라면서 순화 되지 못한 시어를 나열하거나 불안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들쑥날쑥한 시를 쓴다면 이름만 시인이지 시인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품위 있고 세련된 언어, 순수한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 사람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자 인격과 직결된다. 말이 아름다우면 행동이 아름답고 말이 거칠면 행동이 거칠게 마련이다. 마음이 맑으면 말이 맑고 글이 맑으면 사람들에게 좋은 기(氣)를 줄 수 있다.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는데 사특하거나 이중 플레이를 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형식과 내용이 제대로 어우러지게 하란 말이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정서가 없다면 세상은 사막처럼 변해갈 것이다. 가면을 쓰고 시를 남을 공격하는 도구를 쓴다면 시인이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개성 있는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롭고 개성 있는 정서를 독자에게 선물할 수 있을 때 완성 되는 것이다.
변기가 살아 있다, 이 밤에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변기 저 혼자 클클클 웃는 소리,
부글부글 용암이 솟구치듯 이따금씩
내 머릿속을 헤집고 나와
불쑥 내지르는 주먹.
휩쓸어 끌어들이는 소용돌이 물살 속에
너도 들어오라고
클클클 기분 나쁘게 웃는 소리.
- 강인한, <웃는 얼굴> 전문
위 시는 강인한 시인의 시관(詩觀)을 보여준다. 그는 속으로 울음을 우는 시인이다. 변기의 물을 내리듯 클클클, 세상을 한 번 비웃고는 불편하거나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을 변기에 버리고는 물을 내린다. 그 속으로 ''너도 들어오라고''기분 나쁘게 웃는다. 변기가 클클클
시사모 회원들이여,
당신도 오늘 밤에 웃는 얼굴의 변기에 더럽게 기분 나빴던 일이나 이해되지 않은 사람들을 싸잡아서 버리고 주먹질 한 번 하고 물을 내려버려라. 변기가 클클클 대신 웃어줄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열심히 살아볼 일이다.
102강에서 신달자 시인의 시 <저 허공도 밥이다>를 읽고 감상문을 댓글로 다신 분 중에 다음 세 분을 선정하여 시집 선물을 보내 드린다. 일창에 주소를 남겨주시기 바란다.
1. 박용철(창원)
2. 유경화, 안산
3. 김용주 / 서울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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