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101강 새롭거나 좋은 시 창작법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2:27
<토요 시 창작 강좌 > 제101강

   ■ 새롭거나 좋은 시 창작법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의 시가 새로운 시로 인정받기를 원할 것이다. 나름대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신선하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식상함이 느껴지는 시라는 평을 듣는다면 난감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평을 몇 번이나 듣게 되면 아마 시 쓰기를 그만 두고 싶을 게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도대체 시적으로 새롭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써야 시가 신선해진단 말인가?
   우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실력있는 시인들의 시, 잘 쓴 시라고 일컬어지는 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쓴 시적 대상은 꼭 새로운 것이 아닌데도 새롭게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내용적 측면이 아니라 정서적, 태도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서 그렇다. 내용적이란 것은 설명이나 묘사에 머무는 수준이라면 정서적, 태도적이란 것은 자신의 주장이 담긴 진술적 태도, 즉 시인이 생각하는 어떤 형상을 그리거나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새롭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산을 보고 시를 썼다고 하자. 산세의 웅장함이나 아름다움을 설명하거나 묘사하면 시가 안 되거나 시의 맛이 떨어진다. 시인이 아닌 보통의 사람도 느낄 수 있는 것을 쓴다면 독자가 그 글을 새롭게 느낄 수 있겠는가? 산 전체를 조감도적으로 묘사하면 많은 내용의 시가 나올 것 같지만 사실은 넓게 보면 볼 수록 시의 확장력은 더욱 축소 된다는 사실을 초보 시인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시를 몇 편 쓰고나면 쓸 거리가 없어지거나 아주 빈약한 내용, 또는 진부한 느낌을 주기에 딱 좋은 시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좋은 글을 쓰는 시인들의 글을 보라. 같은 산을 보더라도 충감도적으로 본다. 성능이 아주 좋은 망원경으로 쭈욱 잡아당겨서 보는 것 같이 본다는 말이다. 숲을 보고 나무들을 보고 나무에 깃든 새나 꿈틀거리는 벌레, 심지어는 벌레에 기생하는 미세한 무엇을 본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섬세하게, 더 간절하게 대상을 읽어낸다. 그러면 벌레에 기생하는 그 무엇이, 벌레가, 새의 우듬지가 숲을 움직이는 힘으로 보이기도 하고 이렇게 하찮은 것과 연결 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낸다. 이렇게 되면 엄청난 시의 확장력이 생긴다. 벌레 한 마리가 숲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우주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와의 연결 고리를 수없이 찾아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시적 대상을 멀리서 보면 총체적이고 두루뭉실한 시가 나온다. 가까이,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라. 한 발 떨어지면 한 발 뒤떨어진 시가 나온다는 생각으로 시를 써보라. 하나의 대상을 가까이 당겨서 보고 집요하고 절실하게 보라.


   소가죽으로 만든 가방 속에는
   소가 들어 있다
   가방 끈을 메고 집을 나서려면
   고삐를 묶어 놓은 여물통이 따라오고
   사랑채가 따라오고 마당도 따라온다
   마당은 사람들이 밟아도
   아랑곳하지 않는 풀들로 가득하고
   말라리아에 걸린 양철지붕은
   오한이 나서 잔기침을 하는지 들썩거린다
   한쪽에선 이마에 손을 얹은 어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숯불 약탕관에 부채질을 하며
   질경이를 달이는 모습도 보인다
   고삐를 더 끌어 당기면
   짧은 고삐 때문에
   몸이 가로대에 걸린 소가 미처 몸이
   빠져 나오지 못해 눈을 꿈벅이는것이 보이고
   큰 병원으로 가기 위해
   후들거리는 다리로
   바지를 꿰고 있는 내 모습도 보인다
   소가죽 가방 속에는
   전자 계산기와 만년필과
   손수건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숨 쉴 때마다 하얀 콧김 나오는
   정다운 소도 한 마리 들어있다
   나는 아침마다 소 한 마리 데리고
   대문을 나선다

        - 신미균, <가방> 전문
  
   새롭게 보인다는 것은 결국 구체적인 형상이 개별화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 시는 화자가 처한 간절한 경험적 상황과 그것을 대변해 주는 개별화된 상관물, 그 관계성이 복합적 이미지로 형상화 되어 있다. 대상을 최대한 가까이 밀착하여  본 것이다. 화자만의 여러 상황들을 진술하고 있는데 유년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감춰진 심상(이미지)이 있다. 잘 읽어보고 이 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바가 무엇인지를  댓글로 느낌을 달아 보라. 제대로 본 두 분께 작은 선물을 보내려 한다.

   결론적으로 제일 좋은 상태의 시는 구체적인 형상안에 시적인 의미가 암시적으로 서려있어야 한다. 지난 100강에서도 언급했듯이 현대 독자들은 잘난 시인이나 우월한 화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생각이 별로 없다. 시를 써서 독자를 압도하거나 자기가 깨달은 것을 가르치려는 글을 쓰지 말라. 기가막힐 만큼의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교훈이지 시가 되지 않는다. 깨달음의 장면을 미학적으로 그려서 넣는 것만 시로 허용 된다. 시로 가르침을 줄 생각이라면 시인의 길을 포기하고 선생의 길을 선택하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