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제90강
■ 감동적인 시 쓰기
우리는 시를 잘 써보려고 애를쓴다. 그러나 시를 잘 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시가 어색해졌다는 경험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시를 잘 써보려고 머리를 쓰면 머리에서 쥐가 난다고 한다. 또한 시는 가슴으로 쓰고, 세월로 쓰고, 엉덩이로 쓰고, 시를 쓰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써야 시가 된다는데 동의하는 여러 시론도 있다. 종합하면 시는 억지로 쓰지말고 자연스럽게 써라는 말이다.
나는 그동안 이 곳에서 시인의 자세와 시 읽기, 시 창작의 여러 방법을 소개하였는데 시 창작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과 시를 쓰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사람으로 나뉘어 졌다. 무분별하게 올라오던 글들이 다소 정리되거나 시를 발표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진중해진 점 등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시 쓰기가 더 어려워 졌다는 회원들에게는 내 능력의 부족함이 미안할 뿐이다. 그래도 밴드라는 온라인에서 지난 2년에 걸쳐 90강이 이어져 온 것은 순전히 회원들의 격려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간 새로 들어온 회원들도 많으므로 다시 한 번 이 밴드가 추구하는 시의 자리에 대해서 언급할 생각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소설(산문)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서사(抒事)문학인데 반해 시는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그려내는 서정(抒情)문학이다. '서정'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말한다. 따라서 '서정시'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개인의 정서를 구체적이고 개성적인 것으로 육화(肉化)시켜서 독자에게 보고하는 1인칭 문학형식이다. 그래서 시는 객관적인 것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개개인의 정서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시의 본 모습은 '감동으로 말하는 문학양식'이기에 감동이 없는 시는 좋은 시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그렇다면 감동적인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다음 두 가지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첫째,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 밴드에 올라오는 글에는 아직도 어디에서 본듯하거나 귀에 익은 낡은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한 글을 종종 보게 된다.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한 내용인, 시를 시답게 하는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즉, '새로움'이 빠지면 시는 앙꼬없는 찐빵처럼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해 주길 바란다. 낯설음과 새로움이란 일상적인 경험을 거부하거나 배반하는데서 얻어진다. 그것은 '아니, 이럴수가?!'라는 충격이다. 그 충격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이해되는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렇지만 황당무계하거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억지스러운 것은 감동의 유발이 아니라 냉소적이거나 웃기는 말장난으로 치부되어 시로서의 가치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감동은 독자의 몫이다.
시는 관념적으로 설명하거나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문학이 아니다. 돌려서 말하고 어떤 정서나 장면을 제시하여 간접적으로 말하는 문학인데 큰 틀에서는 결국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에 널려있는 온갖 것이 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설명하거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살이와 연결되는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궁극적으로 행복과 사람살이의 진실을 읽어 내도록 장치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까봐 친절하게 설명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반만 말하라. 감탄과 결론은 독자의 몫으로 숨겨놓고 독자에게 숨겨진 뜻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주라. 그것을 찾아 낼 수 있는 열쇠만 배치하여 놓으면 된다. 열쇠는 제목이 될 수도 있고 내용 중에 중심 모티프가 될 수도 있지만 다 설명해 버리지 않는 열쇠, 반만 설명하는 열쇠가 시를 시 답게 하는 것이다. 그 열쇠로 독자가 문을 열게 하라. 그리고 감춰진 의미를 찾았을 때 무릎을 치는 감동이 있는 것이다. 내가 설명하고 감탄하고 결론을 내린 시는 독자를 무시한 글 자랑에 다름 아니기에 독자는 감동하지 않는다. 결국 진정한 시 작법은 세상 온갖 것 중에서 일부분을 가져와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사람살이의 진실과 의미를 찾아가는 감동의 여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음 두 편의 시에는 사람살이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의미 부여와 감동이 있는지를 살펴 보자.
이끌고 가는 줄 알았는데
내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멈칫 한 번 하지 않고
말없이 밀어주고 당겨주며
더러 지쳐 주저앉아 있을 때는
곁에 바짝 붙어 기다려 주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도 내 몸에 들어와
나보다 먼저 빛을 기다리며
언제나 나를 일으켜 주고 있었고,
빛난다고 자만하는 한낮에
그림자를 잠시 잊을 때에도
모습을 낮추거나 숨길 뿐
한 번도 나를 가린 적이 없었다.
오늘도 그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긴 팔 펼치고
여명(黎明)으로 나아가자고 기다리고 있다.
- 백운복, <그림자>전문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 황인숙, <삶> 전문
백운복 시인의 <그림자>라는 시는 현대인은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산다는 것을 에둘러 말하고 있다.
그림자는 내가 잊고 있었고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발견이다. '그림자처럼 나를 지켜주었던 존재가 나에게 있었던가?'라는 물음이다.
황인숙 시인의 <삶>은 석 줄로도 시가 되었다. 사는 이유가, 험한 세상을 살아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외상값'이란다. 그 외상값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당신은 어떤 외상값을 갚기위해 살아가는가?
이처럼 짧은 시에도 하나의 명징한 이야기가 들어있으면 시가 된다. 물음표와 말줄임표에는 삶의 근본문제와 깊은 고뇌가 들어있다. 그러나 문장부호는 시에서 될 수 있으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위의 시처럼 그것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시가 되지 않을 경우에만 사용하기 바란다. 산문에는 문장부호가 필요하지만 시에서는 산문처럼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세우는 일이므로 시적 분위기를 해치는 문장부호의 사용을 자제하라는 것이다.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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