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강좌> 제87강
■ 좋은 시와 그렇지 못한 시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에게 ''책 속으로 들어가 봤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 하거나 그냥 재미있게 읽었노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재미있게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제대로 책을 읽어내는 것이란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 즉 작가의 의도까지 읽어내는 능력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시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시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시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시에 동화된다는 것이다. 동화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능력이다. 지난주에 말한 '감동하는 능력'처럼 좋은 시 안으로 들어가는 능력, 즉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공감하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독자로 남을 것이라면 즐겁게 읽기만 해도 되겠지만 시인이 되고자 한다면 시를 읽을때 시인의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나의 시쓰기에서 매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 능력은 내 작품의 수준이 결정되는 능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는 시를 끄적여놓고는 시를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두세 번 퇴고한 시도 아직은 끄적여놓은 수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기를 바란다. 뭐가 그리 급한가? 시는 천천히 써도 된다. 당장 시를 완성하려는 조급함을 버려라. 시를 완성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시적 체험을 독자에게 전이시킬 수 있을만큼의 확신이 섰을 때다. 보고 또 보고 시간을 갖고 천천히 써도 된다. 절대 조급하지 말아라. 평생 많은 시를 쓰지 못해도 제대로 된 시 몇 편만 있어도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써라.
요즘 우리 밴드에선 퇴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미 여기에 발표했던 시도 1차, 2차 다시 퇴고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두 번으로 퇴고를 끝내면 안 된다. 이 밴드는 시를 자랑하는 밴드가 아니다. 시를 공부하는 밴드다. 그러므로 다섯 번이고 열 번이고 도무지 더 이상 손댈 곳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열흘, 보름, 한 달 후에 다시 보고 퇴고할 부분이 눈에 띄면 또 고쳐라. 빨리 발표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곳은 시인의 트레이닝 장소다. 퇴고를 여러 번 했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자기 글에는 자기의 감정이 들어가 있기에 자신이 퇴고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지적이나 합평회가 중요한 것이다. 이 공간을 그런 곳으로 이용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지적을 받으면 기뻐하라. 당신의 글을 다 읽어 봤다는 말이다. 고맙지 않은가? 서로가 눈여겨 보고 애정어린 마음으로 댓글 조언도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좋지만 안 받아 들여도 그만인 자유로운 곳이다. 자유로운 시사랑의 운동장이기에 여기서는 구르고 물구나미를 서고 뒤로 뛰거나 자빠져봐도 된다. 자기만의 색깔이 나타나도록 시의 얼굴을 갖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맘껏 발표하고 고칠 수 있는 공간이다. 다만 같은 시를 이곳 뿐만 아니라 두세 군데 이상 발표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공부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완성된 시를 자랑하듯 발표하는 것이 된다. 정말 시적 구조를 갖춘 것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 미성숙한 작품을 여기저기 게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 작품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거니와 자기의 시를 중복 발표하는 것이 되므로 논문의 자기표절처럼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내가 몇 번 강조 했듯 시 전문 밴드라고 생각되는 곳은 하나 정도 선택하여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 후 더 이상 손대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면 시 전문지나 온라인에서도 인정받는 곳 하나를 택해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시를 진정성 있게 대하는 태도가 될 것이다. 물론 초보자에겐 누가 눈길을 주거나 알아 주지도 않거니와 어디에 발표를 해야 될지를 몰라서 헤매다가 그래도 반응을 보여주는 이런 밴드에 발표를 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는 한다. 그러나 앞으로 시단에 진출 할 작정이거나 이미 등단의 관문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그렇게 퍼지르듯 발표한 작품이 자기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두 군데 이상 게재한 작품은 발표한 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나중에 변명의 여지 없는 ㅇㅇㅇ작품 이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주류 시단에 진출해 보면 미성숙한 작품을 가볍게 발표한 그 한 편의 시가 인터넷에 떠돌 때 그것 때문에 주홍글씨처럼 그 수준의 시인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염려가 되서 하는 말이다.
이 강좌를 통해 퇴고에 대한 것을 공부한 내용이 공지에 있으므로 지난 강의를 참고하고 오늘은 시 쓰기의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지만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은 나의 주관적 시론이기에 취사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자신의 시에 배치할 시어와 제대로 다투고 있느냐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시 속에는 많은 시어가 등장하게 된다. 고민없이 시어를 등장 시키는 일은 시의 완성도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일이다. 그 시어가 왜 꼭 거기에 등장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다투어야 한다. 이것은 시인의 언어 감각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바꿔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이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가장 훌륭한 언어감각은 모두가 발견한 것 뒤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하여 내는 능력이다.
모두가 아는 내용은 시어로는 빵점 짜리다. 시가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의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숨어 있는 것을 나만의 감수성으로 발견하여 나의 색깔이 묻어나게 해석해내는 능력이 시인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능력이다. 이 능력이 없으면 시를 쓸 능력이 없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되는 첫 단계는 우선 타인의 시 속에 감춰 놓은 시인의 의도를 읽어내는 훈련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물 속에 감춰진 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시를 읽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 내 시를 제대로 쓰기위한 과정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오늘은 다음 세 편의 시를 천천히 세 번 이상 읽어 보고 그 중 한 편을 골라서 나의 느낌을 댓글로 달아 보기로 하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성(性)을 사용할 것이며
국가에서 관리하거나
조상이 간섭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상이 함부로 손을 넣지 못하게 할 것이며
누구를 계몽하거나 선전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정녕 아름답거나 착한 척도 하지 않을 것이며
도통하지 않을 것이며
그냥 내 육체를 내가 소유할 것이다
하늘 아래
시의 나라에
내가 피어 있다
- 문정희, <꽃의 선언> 전문
이 골목에 부쩍
싸움이 는 건
평상이 사라지고 난 뒤부터다
평상 위에 지지배배 배를 깔고 누워
숙제를 하던 아이들과
부은 다리를 쉬어가곤 하던 보험 아줌마,
국수내기 민화투를 치던 할미들이 사라져버린 뒤부터다
평상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동백 화분이 꽃을 피웠다
평상 몰아내고 주차금지 앙큼한 꽃을 피웠다
- 손택수, <앙큼한 꽃> 전문
매몰된 가을이 발견되었다
책을 끼고 그곳을 지나갔을 때
유난히 뺨이 붉은 꽃이 틈으로 뛰어들고
45쪽과 46쪽은 닫혔다
붉은 물을 토하며
서서히 종이처럼 얇아지는 동안
책은 책 밑에서 피를 말리고 있었다
계절이 계절을 덮치듯이
시간의 두께와 어둠에 내 기억은 갇혀 있었다
방치된 것들은 대부분 변형을 일으킨다
책갈피 사이
책의 생각과 엉겨있는 꽃의 얼굴
꽃들이 선호하는 죽음은 태어난 자리에서 치르는 풍장이다
압사壓死를 두려워하는 꽃들
한 권의 책으로도
죽일 수 있는 게 많다
- 마경덕, <압화壓花> 전문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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