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88강 서정시와 생명시 운동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2:16

<토요 시창작 강좌> 제88강

서정시와 생명시 운동

   어제 오후 4시 부터 백석대학교 강당에서 [제2회 한국서정시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는데 수상자는 고려대학교 교수인 김명인 시인이었다. 그는 10행으로 된 시만 모아서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묶어서 지난해 민음사에서 펴내었던 이 시집으로 상을 받은 것이다. 김명인 시인은 그동안 소월시문학상과 이형기문학상,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지만 이번 상의 의미는 더 각별하다고 했다. 그것은 한국에서 가장 서정시를 잘 쓰는 시인을 가려뽑아서 시상하는 상을 받은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명예교수로 있는 오세영 시인이 축사를 하면서 지적한대로 난삽하고 정신이상자적인 글을 '시' 라고 우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 시단'에서 모처럼 일고 있는 '서정으로돌아가자'는 운동의 깃발을 올린 이 상의 수상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시단의 사건이라고 했다.
   김명인 시인의 시는 문학이 지향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축, 자연과 시의 조화로운 해석을 통한 문학적 회화성을 잘 나타내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의 시를 몇 번 읽노라면 ''아, 시가 이런 것이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수상시집에 실려있는 그의 시를 한 편 보자.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김명인


   졸음기 그득 햇살로 쟁여졌으니
   이곳도 언젠가 한 번쯤은 와 본 풍경 속이다
   화단의 자미 늦여름 한낮을 꽃방석 그늘로 펼쳐놓았네
   작은 역사는 제 키 높이로 녹슨 기차 한량 주저앉히고
   허리 아래쪽만 꽉 깨물고 있다. 정오니까
   나그네에겐 분별조차 고단하니 기다리는 동안
   나도 몇만 톤 졸음이나 그늘 안쪽에 부려 놓을까?
   불멸불멸하면서 평생 떠도느라  빚졌으니
   모로 고개 꺽은 저 승객도 이승이란 낯선 대합실
   깨어나면 딱딱한 나무의자쯤으로 여길 것인가

  
   나그네인 시인은, 자미(배롱나무)꽃잎이 떨어져서 꽃방석을 펼쳐놓은 것 같은 작은 역사(驛舍), 그 배롱나무 그늘에 주저앉아 있는 낡은 기차가 정오의 햇살을 쬐고있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시인은 이것 저것 판단해야 하는 피곤한 삶의 '분별심'을 내려놓고 그늘 아래서 기차와 같이 졸고 싶다고 한다. 불멸할 것 같던 기차처럼, 살아남기 위해서 평생을 떠돌던 대합실에서 고개를 꺽고 잠들어 있는 승객은 결국 시인 자신인데, 삶이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서 졸다가 깨어나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다.

   서정시란 이처럼 강력하게 느껴진 정서적 경험이나, 이상과 현실에서 조화롭게 뽑아낸 정서적 교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때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참신한 비유를 통해서 얻어지는 정서적 반응이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시인의 성공 여부는 독자로 하여금 이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얼마나 느끼게 하느냐에 달려있는데 서정시가 추구하는 귀착점 이기도 하다.

    시는 '정서적 언어의 회고 양식'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리처즈(I.A Richards)는 과학적 언어인 객관적, 개념적, 비개인적, 지시적, 논리적 의미보다는 정서적 언어인 주관적, 간접적, 개인적, 함축적, 비약적 의미를 살리는 시를 써야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좋은시와 나쁜 시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했는데, 비논리적이거나 이질적 경험들을 끌여들여 균형과 조화를 이루거나 결합되도록 한 포괄의 시(poetry of inclusion)가 최고급의 시이며 그것이 시의 특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론은 테이트의 텐션(tension), 브룩스의 역설(paradox)과 아이러니(irony)로 발전하였다. 이 이론에 관한 것은 다음에 공부할 기회의 고리로 일단 남겨둔다.

   한편, 서정시인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양의 시를 읽고 있다는 강인한 시인이 제시하고 있는 좋은 시를 확실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은 겉멋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에 소개한다.

   ● 시를 잘 쓸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좋은 시를 필사(베껴쓰기)하라.
    좋은시 500편 정도만 베껴쓰면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좋은시 천 편만 베껴 쓴다면 마치 호손의 '큰바위 얼굴'을 흠모한 소년이 그렇게 닮아가는 것처럼, 좋은 시에 가장 근접한 시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좋은 글이나 표현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시가 잘 안 될 때는 억지로 시를 쓰려고 끙끙거릴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의 시를 필사하는 버릇을 가져보라. 글을 베껴쓰다보면 기가 막히는 나만의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가 떠오를 때가 있다. 이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적어라, 적어야 쓸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시는 이것을 가공하고 결합하여 최상의 아름다움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다.
   머리가 빙빙 도는 난삽하거나 이해불가의 헛소리 비슷한 것들을 멀리하고 시가 내 삶을 더욱 풍요롭거나 품위있게 하고 내 정서에 도움이 되는 서정의 깃발이 펄럭이게 하는 시 운동, 생명시 운동으로 귀결되는 이 운동에 동참해 보는 것도 결코 손해보는 일이 아닐 것이다.
  ''서정으로 돌아가자!''

   - 이어산, <생명시 운동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