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86강
■ 보통 말로 생명 시 쓰기
시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맛깔스럽거나 감동이 묻어나는 줄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즉 우리의 보통 낱말도 시의 줄거리에 맞는다면 시어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낱말을 알고 있다는 것은 시를 쓸 때 큰 자산이 된다. 그래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있는 단어를 모아놓는 나만의 창고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딱 들어맞는 낱말을 꺼내 사용하느냐 못하느냐가 시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것은 국어 사전에 있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직접 수집한 이미지가 담긴 언어라야만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지난 강의를 통해서 몇 번 이야기 했지만 머리로 기억한 시어는 날아가 버리지만 노트에 기록한 시어는 내 시의 자산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언제든지 눈에 띄거나 생각나는 단어를 기록할 수 있는 메모장, 즉 나만의 시어 바구니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시어 바구니에 담긴 낱말을 모아서 꺼내 쓸 수 있도록 창고에 정리해 두는 작업을 한 사람과 그런 과정을 생략한 사람의 시는 그 깊이와 맛이 다른 것이다. 정말 시를 사랑하는 독자이고 시를 써볼 요량이라면 자신만의 시어를 모아놓은 창고를 하나 쯤 갖도록 권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하고 풍부한 시어 창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글의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 시어를 사용한 것, 또는 미사여구로 짜집기 하거나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면 시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시가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음의 시는 최승호 시인이 쓴 <시어(詩語)가게에서>라는 시의 전문이다.
시어(詩語)가게에서
수평선 900원
구름 500원
아지랭이 1,000원
길 300원
마음 500원
나라 100원
풀잎 400원
아스팔트 100원
빌딩 100원
노을 900원
바다 700원
고래 600원
욕망 100원
하나님 200원
시궁쥐 400원
절간 200원
이슬 900원
천둥 500원
미소 800원
깨달음 100원
발톱 300원
따오기 900원
복회귀선 400원
변기 200원
물푸레나무 700원
침대 300원
폐허 600원
섹스 100원
냉이꽃 900원
허무 200원
밤 두 시 800원
개똥 900원
다이야몬드 200원
늑대 700원
공룡 400원
여울 1,000원
하루살이 900원
바보 800원
쥐뿔 100원
은하수 600원
조개껍질 300원
모래톱 1,000원
파도소리 700원
섬 200원
저희 詩語 가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마다 좋은 시 쓰세요
- 계간《시평》2005년 가을호에 실림
하이데거는 시를 '언어의 건축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줄거리에 맞는 언어를 찾아서 조탁하는 능력이 있어야 제대로 된 시의 집을 지을 수 있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최승호 시인은 위의 시어에 어떤 기준으로 가격을 매겼을까? 눈여겨 보면 현실 세상에서 대접 받는 것들은 가격이 덜 나간다는 점이다. 100원 짜리 시어에서 1,000원 짜리 시어로 나눠놓고 있는데, 100원이나 200백원 짜리 시어는 대체로 관념적이거나 세속적이다. 서정적 시어에 값을 더 쳐준 시인의 의도가 읽히는데, 시는 어차피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뜻일 게다. 즉 난해한 시가 좋은 시가 아니라 독자에게 읽히는 시가 좋은 시며 그런 시를 써라는 암시인 듯 하다.
위의 경우에서 보듯 시어는 특별한 말이 아닌 일상적인 보통말이 대부분이다. 시 쓰기의 시작은 우리 주변에 있는 시어를 찾는 일부터 해야 한다. 시어를 찾는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시의 작은 재료를 찾는 일이다. 그리곤 그것에 리듬을 붙이고 의미가 입체화 되도록 잘 조탁하여 독자의 공감과 감흥을 이끌어 내도록 하는 일이 시 쓰는 일이다.
당신이 선호하는 시어들을 분류하고 가격을 매겨보라. 당신이 매긴 시어들의 가격에 따라서 시의 높낮이와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시에 대한 눈이 열릴 것이고 초보 시절에 매겼던 가격과 다른 시어들이 많이 발견 될 것이다. 당신이 지을 시의 집에 쓰일 값나가는 당신만의 시어를 창고에 많이 들여놓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생명시 쓰기 연습
1. 생각나는 단어를 무조건 적어라.
포스트잇에 적어서 보이는데마다 붙여놓든지, 공책에 적어놓든지 간에 틈만 나면 자꾸 보라. 그 시어가 당신에게 말을 걸 것이다. 그때도 꼭 받아 적어라.
2.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순서를 매겨서 적어보라.
이것이 확실하면 인생의 목표도 뚜렷해 진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자주 데이트를 해야 한다. 사랑하는 그것들이 나에게 나만의 향기가 있는 제대로 된 시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3. 당신의 아내나 남편, 자식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순서를 매겨서 적어 보라.
평생을 살면서도 자기 아내나 남편, 자식들이 정말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시인은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서 인정받는 사람이다. 오늘 부터라도 당신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 꽃을 좋아하는지, 분위기 있는 칫집에서 한 잔의 차를 같이 마시고 싶어 하는지 살펴 보라. 행복은 돈만으로 살 수 없다.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이 자란다. 경제적으로 가난해도 천국인 가정이 있고 억만금을 가지고도 지옥인 가정이 있다. 당신이 시를 쓸 때 응원할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인지 멀리있는 사람인지를 돌아보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옆에서 시 쓰기를 응원 한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이 된 것이다. 쉽고도 어렵지만 그렇게 만드는 일 또한 당신의 노력과 능력에 달렸다.
※ 생명 시 한 편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면서 얘기했다.
- 김영승, <반성 100> 전문
김영승 시인의 <반성>연작 시인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쓴 시다. 만족 하지 못하는 지금의 세태를 자성하는 시로 읽힌다.
한 편만 더 보자.
분이는 달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
경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한다.
복수는 백일홍이 아름답단다.
그러나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순아, 넌 무슨 꽃이 더 예쁘니?
채송화가 제일 예쁘지?
그래도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순이.
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
꽃밭을 빙 둘러 새끼줄에 매여있는 말뚝
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거꾸로 박혀 생매장당한 포플러 막대기가!
- 이오덕, <꽃밭과 순이> 전문
쉽지만 물기가 번지는 듯한 시, 모두가 이렇게 쓸 수는 없지만 이런 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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