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85강
■ 주류 시인과 변방의 시인
오늘날의 대한민국 시단은, 자기들이 최고라고 떠드는 대표적인 문학단체와 문학지, 그리고 평론가들에 의해서 사분 오열 되고 있다. 이들은 정작 전체를 아우르고 시의 발전에 이바지 하려는 마음이 별로 없는듯하다. 서로 자기가 잘났단다. 시단의 목소리를 합해서 우리의 시문학사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무엇 하나라도 이루려는 적극성이 없다. 그 하나의 예로, <국립 한국문학관> 건립을 위해 한국문인협회가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지만 문단 전체의 힘을 모으지 못하여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정부에서는 문예지 발전을 위해 편성해 놓은 예산 10억 원 중에서 30%인 3억 원만 집행했다. 영세한 문학사는 정부에서 지원했던 매월 몇백만 원이 생명줄이었데 그 지원이 끊어지자 문을 닫은 시 전문지가 속출했다. 그동안 문단을 좌지우지해온 진보적인 문학인들이 정부에 밉보여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세워놓은 예산조차 집행하지 않는 무식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담당 공무원들이나, 일을 이렇게 만든 문단의 주도세력, 시인들의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꼭 우리의 국회를 보는 것 같다. 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일은 주류 시단의 시인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막는 장벽이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문학지가 생겨나서 책 장사와 시인 장사를 하는 바람에 수준 미달의 시인들을 쏟아내고 있는 탓도 있지만, 시단을 장악하고 있는 유명 평론가와 시인들은 작품성을 이유로 오히려 벽을 더 높혀가면서 자신들의 사단을 만드는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다. 유명 문예지의 당선자 현황을 보면 일 년에 배출되는 시인의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데, 보통의 경우 상반기 1~2명, 하반기도 그만큼의 숫자를 뽑는다. 어떤 문학지는 몇백 편의 응모작 속에서도 당선자를 내지 않거나 1년에 한두 명 정도의 시인을 배출하는 곳도 더러 있다. 물론 좋은 시인을 뽑으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시인이 되는 일을 판검사나 의사 배출하는 것 보다 더 어렵게 해놓고 대단히 잘하는 일인냥 그것을 자랑할 일은 아닌 것이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자도 1년에 한 명의 시인을 뽑는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제대로 포용하고 한국 시의 발전 동력으로 삼으려는 노력은 커녕, 수준 낮은 사람으로 매도하여 내쫒거나 저들끼리의 사단을 만드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일인지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류, 3류 상업적 문예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돈만 주면 함부로 시인의 명찰을 달아주는 곳이 전국적으로 대략 300여 개가 넘는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농사를 짓듯 제대로된 시인을 키워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유명 문학지도 그렇거니와 이를 부추기는 일부 평론가와 시인들, '등단'이라는 달콤한 꾐으로 풋과일도 안 되는 수준으로 기본 소양이나 인성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얼치기 시인으로 만들어 주고는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는 문예지, 그러다가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폐간해 버리는 현실이 우리의 시를 결국 망하게 할 수도 있는 심각한 지경에 와 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일 년에 몇십 개씩 문예지가 생겨나고 없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곳으로 등단을 했다는 시인들 중에는 모지(母誌)가 없어지는 바람에 미아 신세가 되어서 여기저기 떠돌거나 시단을 떠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다. 또한 그런 문예지 출신 시인들을 주류 문학지라고 일컬어지는 곳에서는 아예 외면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단은 난해한 시를 잘 쓴 시라고 장려하는 측과 독자에게 읽히는 시, 서정적인 시가 좋다는 측의 노는 마당과 물이 다르다. 시의 다양성 측면에서 서로 보완 발전하면 좋으련만 서로 다른 값어치나 높낮이를 배워보려거나 맛볼 기회와 장소를 마련할 의지는 없고, 편의적이고 편향된 시각으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편을 가르거나 유,무명의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 이제는 시단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이런 일의 심각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
내가 생각하는 해결 방법은, 어줍잖은 시인보다 시를 사랑하는 독자층이 두꺼워지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시 읽는 재미를 키워주기는 커녕, 시를 난도질하고 어렵게 만드는 교육이 계속 되고 있다. 시에 관한 시험문제를 보면 더 기가 찬다. 시를 쓴 시인도 풀지 못하는 시험문제를 내어놓는 교육현장에 대해서 시단은 남의 일 보듯 하는데 이곳에서부터 시의 위기를 오게한 진원지가 아닌가 한다. 학생들은 '시는 어려운 것'이라는 교육을 잔뜩 받고 사회에 나오므로 그들이 시를 공부했으되 시의 독자로 흡수되지 않는다. 이럴 거라면 시 공부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시집 백 권도 읽지보지 않은 사람들, 즉 독자도 되지못한 사람이 시인이 먼저 되는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내팽개쳐 둔다면 시의 역사는 이름깨나 날렸던 소위 시단의 주도세력들에게 일일이 그 책임을 물을 날이 올 것이다.
시인들은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시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시인들이 너무 많고, 시의 멀미가 날 정도로 난해하거나 수준 이하의 시를 시라고 버젓이 내어놓는 혼란한 시단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생명시 운동>을 시작하여 지금껏 소박하지만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이다. 시와 지내왔던 나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니 인생의 맛을 어느 정도 아는 나이인 50대가 넘어서야 시가 무엇인지 조금씩 눈이 떠이게 되는 경험을 했다. 결국 시란 사람살이의 호흡이나 공기 같은 것이어야 하고 메마른 가슴에 번지는 감동의 눈물 같은 것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시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것은 우리 밴드가 지향하는 실천 이념이기도 하다. 또한 <생명시 운동>의 가치도 시를 시답게 하려는 것이고, 시인이 되려는 욕심보다는 우선, 시를 즐기고 사랑하고 제대로 읽어내는 독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며, 작품의 높낮이와 유,무명에 관계 없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힘을 모아서 한국 시의 부흥을 일으키는데 일조하자는 운동이다. 돌담이나 탑을 쌓는데는 반듯하고 좋은 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졌거나 작고 못생긴 돌도 고임돌로 반드시 필요하듯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가 귀중한 한국 시의 자산이라는 인식을 시단이 먼저 갖고 있어야 하고 정부의 담당공무원은 시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그자리에 앉혀야 한다.
오늘은 시단의 현실을 이야기 하다가 할말이 많아져서 정작 시에 대한 공부는 간단하게 언급하게 된 점을 양해하기 바란다.
※ 어떻게 시를 읽어낼 것이며 쓸 것인가?
1. 깨끗한 시집을 없애라.
시집이 깨끗하면 시는 그곳에서 깨끗하게 잠자다가 죽는다. 좋은 시를 깨우는 일은, 좋은 시어엔 밑줄을 치면서 깨우고, 동그라미 그리면서 깨우고, 자꾸 흔들어보고, 나의 생각이나 모방시도 적어놓는 등 새까맣게 학대 할수록 그 시가 시집을 박차고 나와서 내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2. 개처럼 먹어라.
맛있는 먹이를 먹는 개는 곧 세상이 끝나는듯 집중해서 먹는다. 먹을 땐 맛있게 신들린듯 집중해서 먹어야 한다. 시를 맛있게 먹을 줄 알아야 맛있는 시를 쓸 수 있다. 세상의 유명 요리사는 다른 요리사의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다. 당신은 시집을 몇 권이나 맛있게 집중해서 먹었는가?
3. 감사의 꼬리를 흔들어라.
맛있는 먹이를 주는 주인에겐 무한 반복으로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내게 좋은 시를 제공한 시인의 시를 향해서 감사의 꼬리를 흔들어라. 좋은 음식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드는 것도 능력이다. 그래야 내 시의 스타일이 생긴다. 되지도 않은 실력으로 꼬리가 몸통을 흔들려는 오만함을 버려라. 틈만 나면 꼬리를 흔들 수 있는 음식을 찾아서 먹어야 내 폼이 생긴다. 똥폼도 잡다보면 내폼이 되듯 좋은 시와 어울리면 내 시도 좋아진다.
4. 감동을 받는 능력을 키워라.
같은 것을 봐도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 감동하는 것도 능력이다. 감동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이 못본 것을 보는 감수성의 능력이다. 감동의 능력이 클수록 나의 내면에 얼어붙어있는 무한한 세상을 깨우는 일이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는 능력이 중요하고, 느꼈으면 감동하고, 감동한 것은 글로 남겨야 능력의 실체가 생기는 것이다.
5.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멀리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자주 웃는다. 주변의 배반도 하늘을 보면 웃음이 나고, 하늘을 보면 내 마음도 하늘처럼 넓어져서 이해도 생기고 용서도 생기고 시가 생겨나고 결국 감사가 생긴다. 하늘을 자주 응시하면 사람살이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현상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하면 시인이 된 것이다. 시를 위해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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