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84강
■ 시에서 쓰지 말아야 할 단어
시를 쓰다보면 "이런 표현이나 단어를 사용해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시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알아보자.
시를 쓴다는 일을 내 감정을 쏟아 내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는 낯익은 자탄이나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다.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어루만져서 여과되고 정화된 말로 그려진 그림을 독자 앞에 내어놓는 일이다. 또한 예사말도 특별하게 비틀어서 그리고 시침을 떼서 그리되 공감과 사색을 할 수 있는 여백이 있어야 한다.
'별이 아름다운 이 밤에/당신이 그리워 미치도록 보고 싶다'
라는 표현은 시가 될까? 이런 표현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예사말이므로 시가 되지 않는다. '그리워'나 '보고싶다'라는 말이 중복 되었거니와 일기에나 쓸 수 있는 수준이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너무나 슬픈 나머지/마음을 추스리지 못했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넋두리, 또는 감정을 여과없이 표현한 일상의 용어일 뿐이다. 이런 보통의 용어라도 시의 일부분으로 차용 할 수는 있지만 이런식으로 글이 이어지면 시가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는, 낯설게 하거나 비틀게 한 만큼 자유롭다"는 말이 경전처럼 시인들에게 회자 되는 바 시인이 되기로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을 새기고 새겨서 가슴에 품고 살아야 시다운 시를 쓸 수 있다.
잊고 살자 다짐해도
혼절의 무게로 다가와
버릇처럼 세포마다 문신 새기고
내 안에 오직 너로만 퐁퐁 샘솟게 하는
너는 대체 누구더냐
-양애희, <사랑, 그 천개의 무색 그리움>중
'당신이 그립다'는 직설적인 것과 이렇게 '세포마다 문신을 새긴'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 같은 시의 등위에 놓일 수 없는 것이다.
슬픔에 관한 시를 보자.
덤불 우거지고 잡풀 웃자라
이 골이 저 골 같고 저 골이 이 골 같아서
도무지 찾을 길 없는 길을
아버지는 어찌 알고 저리 수이 오르시는가
(중략)
우거진 덤불과 웃자란 잡풀들
아버지, 낫으로 베어낼 때마다
조금씩 환해지는
알몸의 길이여
알몸의 무덤이여
- 박제영, <저승길이 환해질 때> 중
슬픔을 절제하고 여과 시켜서 독자로 하여금 속울음을 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로 숨겨놓고 사물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일을 대신하는 사람인 것이다.
한 편만 더 보자.
뽀족한 악몽을 밀어내고
담장에 오르는 새벽
나는 내가 비좁다
창을 열면
내 안으로 눈이 내리고
붉은 새가 걷는다 붉은 새가
칼들이 쏟아져내리고
아버지가 보인다
취한 손으로 가족들 발톱을
뽑아내는
모두가 찌르고 모두가 찔리고
모두가 떠나지 않고 이곳에 서 있다
내 안으로만 쌓이는 눈
창이 열리면
나는 나를 뚫는다
새가 새를 뚫는다
- 남지은, <넝쿨장미> 전문
위 시는 신세 한탄조의 넋두리가 될 뻔한 것을 최대한 자기의 직설적 감정을 숨기고 은유를 동원하여 쓴 솜씨가 돋보이는 시다.
시의 본문에는 넝쿨장미라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 화자는 "나는 내가 비좁다"라고 한다. 그래서 나를 뚫고 나오는 가시! 그 넝쿨장미의 특질을 살려서 서로가 얽히고 설켜서 찌르거나 찔리는 불행한 가족사와 외로운 현실을 암시하고 있다. '창 안의 나'와 '창 밖의 나'와의 싸움에서 '내가 나를' '새가 새를' 뚫는다고 함으로써 숨은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데 '내리는 눈'도 '쏟아지는 칼'이 되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취한 손으로/가족들의 발톱을/뽑아내는' 악몽이 체념적 결말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시에서 자신의 불행을 과감하게 펼쳐놓았다는 것은 행복을 염원하는 강력한 욕망의 표출이자 모호함을 통한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는 작법이기도 하다.
이 시는 <문학동네>신인상 당선작인데 현대 서정시의 주소 같은 것이어서 공부해볼 만하다.
요즘 우리 밴드에 올라오는 시를 보면 초보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라 잃었던 일제 35년의 피식민문화의 찌꺼기인 왜식 한문투의 단어들로 멋을 내려 하거나 기성 시인의 흉내를 내는 문학적 허풍으로 시를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신인은 신인답게 진취적이고 실험적이고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 몇 번 말했지만 매끈한 시가 좋은 시가 아니다. 새로운 시가 좋은 시다.
우석대 문창과 교수인 안도현 시인은 시에서 사용하지 말아야할 죽은 표현들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는데 공감이 가는 내용이기에 소개한다.
※~~척 과장하지 마라.
혼자 외로운 척
시 쓸 때만 그리운 척
자기 혼자 아름다운 것을 본 척
자기만 낭만주의자인 척
이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 진 듯 마음이 무척 아픈 척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철학과 종교와 사상에 해박한 척
시의 각주를 달아서 유식한 척
등등의 '척'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인 것이지만 계속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 아래의 시어들은 시간의 무덤에서 하얗게 풍화된 죽은 말들이다. 무엇보다 관념적인 한자어를 써야만 그럴 듯한 시가 된다는 착각이 문제다. 정진규는 시에서 관념이 ‘화자의 우월적 포즈’(<질문과 과녁>)라고 꼭 집어 말한 바 있다. 당신은 관념적인 한자어가 시에 우아한 품위를 부여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품위는커녕 한자어 어휘 하나가 한 편의 시를 누르는 중압감은 개미의 허리에 돌멩이를 얹는 일과 같다. 신중하고 특별한 어떤 의도 없이 아래의 시어가 시에 들어가 박혀 있으면 그 시는 읽어 보나마나 낙제 수준이다.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감정 개성 격정 결실
고독 고백 고별 고통 고해 공간 공허 관념
관망 광명 광휘 군림 굴욕 귀가 귀향 긍정
기도 기억 기원 긴장 낭만 내공 내면 도취
독백 독선 동심 명멸 모욕 문명 미명 반역
반추 배반 번뇌 본연 부재 부정 부활 분노
불면 비분 비원 삭막 산화 상실 상징 생명
소유 순정 시간 신뢰 심판 아집 아첨 암담
암흑 애련 애수 애정 애증 양식 여운 역류
연소 열애 열정 영겁 영광 영원 영혼 예감
예지 오만 오욕 오한 오해 욕망 용서 운명
원망 원시 위선 위안 위협 의식 의지 이국
이념 이별 이역 인생 인식 인연 일상 임종
잉태 자비 자유 자학 잔영 저주 전설 절망
절정 정신 정의 존재 존중 종교 증오 진실
질서 질식 질투 차별 참혹 처절 청춘 추억
축복 침묵 쾌락 탄생 태만 태초 퇴화 패망
편견 폐허 평화 품격 풍자 피폐 필연 해석
행복 향수 허락 허세 허위 현실 혼령 혼령
화려 화해 환송 황폐 회상 회억 회의 회한
후회 휴식 희망
위의 단어를 다 빼고 시를 쓰라니?! 기가찰 노릇이다. 그러나 이런 단어는 '관념적인 한자어'라는데 유의해야 한다, 이런 단어는 의도를 가지고 써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차용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렇게 진부하고 추상적인 관념어를 즐겨 쓰는 사람은 우리의 언어를 학대하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시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우리 말이 수도 없이 많거니와 그런 것을 찾아서 시의 자리에 오롯이 앉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시인이므로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의 강의는 사실 시의 초보자에겐 어렵고 충격적인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내 것으로 체화시킬 수만 있다면 시 창작의 몇 계단을 뛰어 넘는 일이므로 꼭 공부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36>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86강 보통 말로 생명 시 쓰기 (0) | 2017.12.25 |
|---|---|
| 제85강 주류 시인과 변방의 시인 (0) | 2017.12.25 |
| 제83강 마음을 숨겨 놓은 가을 시 (0) | 2017.12.25 |
| 제82강 시에서의 철학과 생명시 (0) | 2017.12.25 |
| 제81강 묘사와 진술의 시(詩) (0) | 2017.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