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83강 마음을 숨겨 놓은 가을 시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2:09

  <토요 시 창작 강좌> 제83강

   ■ 마음을 숨겨 놓은 가을 시

   우리가 시를 쓰면서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다. 나와 관계 없는 것도 시가 된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시의 모든 대상은 시를 쓰는 사람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시에 나타나는 사물이나 대상은 그 특질적 성격을 비유적이거나 은유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문자로 표현하는 언어 행위예술이다. 이 언어예술 속에 넣어야 할 앙꼬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시는 시인의 마음을 숨겨놓는 장소라는 것이다. 독자는 시 속에서 시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고, 공감이 되면 감동하게 되고, 그 감동에 숨겨진 또 다른 감동을 발견하게 되면 명시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에서, 보이는 것의 묘사(서술)와 보이지 않는 것의 진술(시인의 주장)을 입체화 시킨 것, 중첩적이고 다중적 의미가 표함된 시가 좋은 시로 회자되어 온 과정이 바로 시가 걸어온 역사의 본류다.

   특급호텔의 주방장이 되고 싶은 의지가 충만하거나, 요리에 관심이 많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주방장이 될 수는 없다. 오랜 세월 칼을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하고 재료를 고르고 야채를 써는 방법부터 터득해야 하며 자신의 철학이 담긴, 보기좋고 먹기좋고 영양가의 균형을 맞추기 까지의 솜씨를 연마하지 않고는 인정받는 요리사가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시의 재료를 손질하거나 칼 쓰는 방법도 익히지 않고 멋진 시를 쓰겠다고 덤벼드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재료를 그대로 예쁜 쟁반에 담아내거나 삶아낸 것만으로 요리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시도 요리하지 않고 글 재료만 나열하는 수준으로 내어 놓는다면 시를 볼 줄 아는 독자들의 웃음을 살 수 밖에 없다. 시인이 되려면 글을 다루는 솜씨를 길러야 하고 다른 사람이 쓴 시의 맛을 볼 줄 알아야 나의 시를 요리하여 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가을을 재료로한 시 인데 어떻게 요리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가을날
   빈 손에 받아 든 작은 꽃씨 한 알
   그 숱한 잎이며 꽃이며
   찬란한 빛깔이 사라진 다음
   오직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모여든 가을

   빛나는 여름의 오후
   핏빛 꽃들의 몸부림이며
   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 것일까

   비애의 껍질을 모아 불태워 버리면
   갑자기 뜰이 넓어 가는 가을날
   내 마음 어느 깊이에서도
   고이 여물어 가는 빛나는 외로움

   오늘은 한 알의 꽃씨를 골라
   기인 기다림의 창변에
   화려한 어젯날의 대화를 묻는다

                    - 문병란, <꽃씨> 전문

   지난해 여든의 일기로 타계하신 문병란 시인의 가을 시다. 작은 꽃씨 한 알을 요리하여, 봄의 꽃이며 여름에 꽃이 떨어지기 전의 피빛 몸부림과, 가을의 껍데기를 불태우고 얻은 꽃씨에서, 화려했던 지난날의 대화까지 한 상 차려 올렸다. 그런데 이 시를 음미하다 보면 인생의 황혼을 은유로 숨겨 놓았음이 읽혀진다. 이것이 바로 다의적이고 중층적인 시의 진술이 되는 것이다.


   누가 죽어가나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며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는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 김춘수, <가을 저녁의 시> 전문

   위 시는 무의미의 시인이라 불리는 김춘수 시의 특질이 살아 있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이 누렇게 말라 가는 것을 '가을의 슬픈 눈'이라고 했으니 '그 누가 죽어가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가을의 이미지와 상실감이 슬픔의 정조와 묘하게 어우러져서 인생의 여름 한 철 그토록 애타게 찾아 부르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외로운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라고 까지 밀고 왔는데 그것은 타자일 수도, 화자일 수도, 우리 모두일 수도 있다는 암시인 것이다. 또한 이것은 자연스레 깊어가는 인생사의 가을과 이미지로 연결 되어서 아직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 같은 것이 진하게 배여 있는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다음의 시는 우리 밴드에 올라온 회원의 시다.
   위의 시와 비교해 보자.


   햇살이 창가에 앉아 화장을 한다
   등 뒤 살 빠진 대지가 힐끔거리고
   놀라 립스틱을 떨어뜨려 통통
   이곳저곳 붉은 자국이 생겼다
   작년 접어둔 책갈피가 시선을 이끈다
   잠시, 노란 먼지를 털어내는데
   하이네 시집에서 영화표 두 장이 삐죽 댄다
   비둘기 한 마리 떨어진 활자를 물고
   풍경 속으로 사라지자
   강릉행 기차가 흔들거린다
   늘어진 옆자리 버거운 머리로
   간간히 어깨를 두드리니
   얼굴은 벌써 오색으로 물들어 가고

    - 전진오, <가을 속으로> 전문

   가을 햇빛이 화장을 하다가 립스틱을 떨어뜨려 통통 여기저기 붉은 자국이 생겼다는 표현력은 시적 발화가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비둘기 한 마리가 떨어진 활자를 물고 가는데, 그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추락의 계절 가을의 정취와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결국 강릉행 기차가 흔들렸듯 사랑도 인생도 미완으로 흔들리며 물들어 가는 것임을 입체적 결합으로 시적 완성도를 높혔다. 다만 제목을 '가을 속으로'라고 함으로써 가을에 관한 시임이 너무 드러나 버렸다는 점이 약간 걸린다. 워낙 가을을 노래한 유명한 시인이 많기에 신인이 또 하나의 가을 시를 보태봐야 큰 관심을 끌기가 힘들 것이므로 가을 이미지와 연결시킬 수 있는 전혀 엉뚱한 제목을 가지고 오면 더 새롭고 궁금한 가을의 맛을 더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햇살이 창가에 앉아'라는 정경은 봄 정취에 가까우므로 퇴고를 고려해볼 필요성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계속 시를 쓸 수만 있다면 시인의 이름표를 달아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 시의 작법 세 가지

   1. 시의 발화자는 시인 자신이어야 하고 시인 스스로 사건인 시가 좋다.
       시인은 "생을 작고 동그란 돌맹이처럼 만들어" 마구 내던지는 존재가 되도록 하라고 문정희 시인은 그의 시 "시인의 침대"에서 말했다. 시의 사건 속 주인공이 되도록 항상 시를 써라는 말이다.

   2.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라.
       내게 익숙한 것이 시를 맹물로 만든다. 퍼뜩 생각 나는 것을 써놓고는 그것을 최대한 새로운 언어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지루하도록 자신에게 묻고 싸워서 조금이라도 새로운 표현이 이기도록 하라.

   3. 시를 흉내내는 꾼이 되지 말고 시를 사랑하는 독자가 먼저 되라.
      시를 요리하는 기술이 없이 시를 쓴다면 시의 글쟁이, 또는 글꾼이 되기 쉽상이다. 인공조미료(미사여구)를 치거나 기성 시인의 흉내를 내지 말라. 그리고 자꾸 다른 시의 맛을 보라. 그래야 나의 시맛을 낼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없듯 맛있는 시를 골라먹을 수 있는 미각을 가지도록 노력하라. 그래야 내 시도 맛있게 독자가 먹을 수 있게 맛도 내고 상도 차릴 수 있는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