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77강 왜 시를 쓰려고 하는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2:03

<토요 시 창작 강좌> 제77강

왜 시를 쓰려고 하는가?

   나는 이 강좌를 통하여 누가 손가락으로 옆구리만 쿡 찔러도 좋아하는 시인의 이름이 튀어나오도록 자기 시의 방향에 맞는 시인을 정하라고 권한 바 있다. 그 시인의 시를 필사하고 시집을 달달 외울 수 있을 만큼 되어야만 내 시의 폼이 잡히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묻는다.
   "당신은 왜 시를 쓰려고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여 당혹해 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어떤 이는 자기의 행복을 위하여 시를 쓴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시를 사랑하기 때문에 쓴다고 한다. 시를 쓰려는 목적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 강의를 통해서 강조했던 것은 "인생의 창문에 맞는 멋진 커텐을 달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숨쉬기"가 되기를 바랬던 것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안은행 '마이크로 크레디트' 그라민 은행을 창립한 무하마드 유누스(Muhammed Yunus)는 "우리는 꿈꾼 것만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이문재 시인은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없는 꿈은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라는 지론으로 유명하다. 나의 생각도 비슷하다. 당신도 시를 쓰려는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써보라.
   나는 "시인다운 시인, 독자다운 독자가 되자"라는 <생명시 운동>을 주창 하였고 이 운동은 우리 시단에서 작은 바람이 되어서 가까운 시인을 비롯한 여러 시인들로 부터 지지를 넓혀가고 있다. 이 운동의 구체적 시 쓰기는 "내가 누구인지를 세상에 밝히려"는 것이기도 하다. 어깨에 힘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하여 내 자신을 알고, 나답게 겸손한 사람살이의 완성을 위한 보고서를 삶의 중간중간에서 발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성향들이 제각각이므로 당신의 글 쓰기에도 당신에게 맞는 확실한 목적이 정해져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한 모퉁이를 차지하는 그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확신이 없이 시를 쓰려고 한다면 목적없이 항구를 떠나는 배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시를 배우려는 사람들 중엔 여기저기에서 수박 겉 핣기식으로 조금씩 배운 것 때문에 오히려 헷갈려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시론도 일단 자기의 성향에 맞는 사람의 것을 택하여 진득하게 공부 하여야만 한 가지 시론이라도 제대로 알게 되고 그 바탕위에서 한 발씩 시의 지경(地境)을 넓혀나가는 것이 된다는 사실에 유념하기 바란다. 그동안 이 강좌에서 언급한 시론(詩論)도 왠만한 책 한두 권의 분량이 넘지만 항상 관심을 갖고 읽어주는 회원들과 그렇지 못한 회원들이 있었다. 이 강의를 읽어 본 사람들은 우리 밴드에서만큼은 작품 활동이 활발하고 그만큼 시에 대한 열정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밴드에 대한 애정도 조금씩 더해가고 있고 이것은 온갖 밴드가 난립한 가운데도 우리 밴드가 시 전문 밴드로서의 색깔을 지켜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진행해온 나의 이 강좌는 기초와 전문분야를 넘나들며 최대한 쉽게 풀이하여 소개해 왔기에 깊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회원들의 욕구에는 많이 부족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오늘은 그런 회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만한 책을 한 권 소개한다. 시인이자 소설가로 전 세계에 글 쓰기 붐을 일으켰던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가 쓴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이다. 몇몇 출판사에서 앞다퉈 발행할 정도로 유명한 책인지라 읽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읽어 본 것은 한국외대 출신의 권진욱 님의 번역본이었데 나에게는 꽤 도움이 되었다.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하는 창의적인 글쓰기의 비법은 "글을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기의 법칙"이었고 시를 쓰는데 참고해야 할 내용들이 수두룩 했다. "당신이 바로 지금, 현재에 존재할 때, 세상은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라던가, 어느 교사에게서 걸려온 전화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렇다. "아이들 책상 밑에 신발에 묻혀온 흙들로 아주 지저분해요. 정말 좋은 신호예요. 봄이 왔다니까요"라는 생각의 반전을 소개 하기도 하고 "시 쓰기는 시 쓰기를 통해서 만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규리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려다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날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인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 모양으로 흘러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 이규리,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전문

   위 시를 읽으면서 지금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된다.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던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킬 수 없게 된 자신에게 세상의 꽃들이 피어나서 때린다는 회환의 고백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 생각나는 사람은 지금 챙겨볼 일이다. 시인도 그렇다. 지금 생각나는 것을 글로 써야 한다. 지금 메모라도 해놓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시의 부음을 듣게 될 수도 있다.

   관련된 우리 회원의 시 한 편을 보자.


흥정

                                    김미경

이른 아침 진열장 앞에서 쭈뼛거리던 노인
며느리 준다며 홍삼 한 박스 보듬는데
고랑 진 주름마다 그늘을 지우며
손자 보러 가는 얼굴 값이란다
"요즘은 세상이 거꾸로 돼서
시아버지가 해다 바쳐야 해"
멋쩍게 투덜대는 말투와 달리
얼굴은 오뉴월 봄 햇살만큼 따뜻하다
꽃망울 터지는 한소끔 미소 위해
이슬 머금은 햇살로 흥정하는
노신사의 지혜가
샛강의 개망초 꽃처럼 넉넉하다

나는 언제 한번 
보고픔에 값을 치러본 적 있었던가

요양병원에서 청하는 애닮은 손짓에
한달음에 달려가지 못하고 흥정만 하다  파장 되버린 미련함
당신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값이라면
바짓단 다 적셔가면서라도 아침 이슬을 털어 달려갈 텐데

대답 없이 푸르기만 한 봉분에
소주 한 잔 털어내는 못난 자식
이제야 가슴에 품은 그리움 하나
눈물로 흥정합니다

   시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시란 이처럼 독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시에서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보고픔에 값을 치뤄 본 적 있었던가"라는 고백이다. 이 고백은 세속적이지 않다. 눈물을 머금고 있다. 이는 메타시(meta poetry반성과 성찰을 인식하는 시에 관한 시)에서 요구하는 자세와도 근접해 있다. 그동안 봐 왔던 김미경 회원의 페스티쉬(pastiche/혼성모방, 모방짜집기)적 초기 시의 경향에서 벗어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연이 신파처럼 되었지만 시력이 붙으면 소리내어 우는 울음보다 더 깊은 속울음으로 살려 낼 수 있을 것 같다.
 
   저 가을 산을
   어떻게 혼자 넘나
   우리 둘이서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 작자미상, 7세기 중국의 시

   시는 혼자 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물론 혼자 쓴다. 그러나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는 세상 만물과 주변의 수많은 인연이 있었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시는 같이 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 덜 힘들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보통 사람은 인연을 단순하게 보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인연을 꿰뚫어 본다.
   제대로 된 시를 쓰고 싶은가?
   세상 만물을 꿰뚫어 볼 때까지 보라.
  
   - 이어산, <생명시 운동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