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76강
■ 시 쓰기의 실패자들
시를 쓰다보면 절벽이 가로막은 것처럼 도무지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거나 '시'의 싱크홀 같은데 빠져서 허우적 거리다가 그만 자포자기하여 시 쓰기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인치고 이런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480~406)는 "약간의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2천5백 년 전부터 오늘도 유효하게 세상의 시인들을 향해 일갈하고 있는바, 시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끊임없는 노력으로 시 쓰기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성공을 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새기게 된다. 실패를 하지 않고 시 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실패한 시인일 것이다. 왜냐하면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는 사람살이의 지점을 읽어내는 일이 곧 시 쓰기요,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한 삶의 질곡을 진단하여 희망의 손수건을 세상을 향해 흔드는 일이 시인의 일인데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희망이란, 루쉰(魯迅, 중국의 사상가)의 진단처럼, 길이 없던 곳도 자꾸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것이고, 파도를 겁내지 않고 바다에 나가는 사람이 고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시를 쓰다가 막히거나 실패를 거듭해도 또다시 도전하는 사람이 시의 길을 만드는 사람이기에 시인으로 인정받는 반열에 오를 수 있거나 최소한 시를 제대로 읽어내는 독자라도 되는 것이다.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는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나의 고집대로 그 자리에 안주하면 성공하기 힘들게 되고, 세상의 속도만큼 나도 같이 뛰면 현상유지는 되는 것이며,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뛰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시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시에는 관심이 없거나 현대시의 흐름을 모르는 채로 내 고집에 사로잡혀 시를 쓰면 내 시가 진부한 넋두리인지, 지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게 되어서 시가 성공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시류에 편승하여 기성 시인의 흉내나 낸다면 그런 시는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있으나 마나 한 시가 된다. 그러나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실패를 하더라도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 결국 좋은 시를 쓰게 될 확율이 가장 높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난삽하고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시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좋은 시와 어려운 시는 다르다.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가 결합된 말의 덩어리를 이미저리(Imagery)라고 하는데 이런 시는 어려운 시가 아니라 뜻이 깊고 읽을수록 맛이 나는 좋은 시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만 몇 번을 읽어도 뜻이 잡히지 않는 시는 쓰레기통에 집어던져도 된다. 시를 좋아하는 보통의 독자가 몇 번을 읽어봐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는 그런 시를 좋은 시라고 꼽는 사람들끼리 보고 놀면 된다. 나의 이 강의도 어줍잖은 지식을 뽐내려 한다거나 여기저기에서 끌어모은 어려운 시론을 짜집기하여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면 읽을 필요도 없다. 될 수 있으면 회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를 사랑하는 보통의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여 노력하지만 사실 쉽게 설명 한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폴 크루그먼(Paul Krugman)도 이런 말을 했다.
"나 역시 아무나 읽지 못하는 어려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지만 대중이 알아 먹도록 써야한다"
오늘은 시적 대상에 대한 것을 생각하면서 세 편의 시를 보자.
물론 시적 대상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선택한 소재는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여러 시인들이 이미 발표한 흔한 소재로 시를 쓴다면 여간해서는 주목받기 힘들다. 어차피 시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공감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쌍방향의 문학인데 여기저기에서 들었던 내용을 다시 듣는다는 생각이 들면 독자는 흥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처음 시를 쓸 때, 시의 소재로 가장 많이 택하는 것은 '자연'이다. 그런데 이 자연이라는 소재는 수대에 걸쳐서 동서양의 시인들이 너무나 많이 써왔고 훌륭한 시도 수 없이 많다. 그러므로 여간 잘 쓴 것이 아니라면 자연에 관한 소재로 시를 써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자연을 매개로 시를 쓸 작정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느꼈을법한 내용은 멀리하고 새롭게 형상화 된 내용, 즉 자기만의 특질화 된 시각의 시를 쓰기 바란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소재로 했을 땐 조금만 방심해도 진부하거나 재미없는 시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범위한 자연은 아직도 나만의 시각으로 해석할 공간을 수도 없이 제공하고 있기에 소재가 빈곤하다고 탓 할 일은 더욱 아니다.
와우리 성애원 옆, 금곡폐차장엔
벌써 10년 넘게
쇠와 싸우는 풀들이 있습니다.
보통리 그 넓은 벌판 다 빼앗기고
변두리로 밀리고 밀리다
폐차장 무쇠더미 속까지 떠밀려와 살고 있습니다.
쇠와 살대고 살면서도
쇠와 섞이지 않는 강아지풀 하나
지난 봄에 살해당한
풀의 아이를 배고
죽은 엔진 뼈대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습니다.
- 최문자, <쇠 속의 잠 3> 1연
이 시는 자연을 소재로 한 시인데 시인은 생명 현상의 본질을 간파하고 파괴된 풍광을 비판, 고발하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진술이 무엇인지를 공부하려면 우리나라 최고의 '진술시인'으로 불리는 최문자 시인의 시를 눈여겨 보기를 권한다.
대지를 물들이는 저 쑥과 냉이, 씀바귀에 대해
과수원 언저리를 온통 노랑물살 지게 하는 저 유채꽃에 대해
(중략)
뻐꾹새에게 물어봐라
벌, 나비에게 물어봐라
(중략)
별과 달이 밤새도록 읽다가 펼쳐둔
과수원 시집
나는 거름 져다 나르며 읽고
앞산 뻐꾹새는 진달래 먹은 듯 붉게 읽는다
- 배한봉, <과수원 시집>중에서
그 뻔한 풍광도 시집이 되고, 그 시집은 새도 읽고 나비도 읽고 거름을 져다 나르는 시인도 읽는데 결국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봄을 "뻐꾹새는 진달래 먹은 듯 붉게 읽는다"로까지 진행되어서 서술+진술+이미지화에 성공하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단단하고 제각각의 역할이 확실하게 주어졌다. 눈여겨 보라. 배한봉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것들은 역할이 명징하기로 유명하다. 시 쓰기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다.
그 여자 이름을 잊었다
용정에서 혜란강 가는 길
선구자 한 소절 부르고 싶어 철없이
일송정 찾아가는 길
조선족이야요 천 원에 다섯 개야요
따가운 땡볕 오가며 젖먹이를 업은 채
삶은 옥수수를 팔던 여자
황토먼지 푸석이는 버스 창가에
다투어 맨발로 뛰어오던 머룻빛 눈매가 서늘했던 여자
기념사진을 찍어주며 윤동주를 안다고 하던
그래서 은빛 맑은 물가에 손을 함께 씻었던
가물가물한 그 이름을 까맣게 잊었다
한국돈 이천 원 받아쥐고 돌아서며
설핏 눈시울이 붉어졌던 조선족 여자
그 뒷모습은 잊지 않았다
덜컹거리는 버스 차창 너머
연변 맑은 강바람 속으로 멀어져가던
- 나종영, <뒷모습> 전문
위 시는 인물을 소재로 한 것이지만 슬픈 우리의 근현대 역사와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찡하기도 한 시다. '인물 시'는 그 인물의 특징적 면모가 실감 있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의 역할이 확실하지 않은 시는 영 재미 없는, 방향 잃은 시가 되므로 꼭 시의 주인공을 잘 챙겨야 한다.
이 외에도 특정물을 대상으로 얼마든지 시를 쓸 수 있는데 한 편만 더 소개 한다.
대흥사 입구의 마늘밭
마늘잎들이 누렇게 때깔을 쓰고 있다
마늘이야 마른 생각들 버석거려도 머리통 가득
매운맛을 가두겠지만
수확이 가까울수록 잎들의 혈행(血行)을 끊어
머리 뿌리 온통 깨달음으로 채워넣으려는
저 독한 마음을 읽고 있는 한
나는 아직도 한참이나 갈증을 견뎌야 하는
메마른 5월이다. 누가 내 몸을 캐서
불알 두 쪽 갈라본들
거기 통속의 향기 드러나겠는가
- 김명인, <마늘> 부분
위 시는 '마늘'이라는 대상을 선택하여 마늘의 수확이 가까워질수록 거추장스러운 잎들의 혈행(血行)을 끊고 마늘의 특성인 매운맛을 가득 머금고 여물어져 가고 있는 것과 통속의 향기(通俗의 香氣)인 마늘의 특질을 시인에게로 치환(置換)시켜서 오롯이 제 맛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자문하고 있다. 이처럼 담백 하지만 사물의 특질과 연결된 자신만의 사람살이의 해석이 시를 쓰는 본질에 가까이 가는 일인 것이다.
오는 10월에 시상식을 갖게 될 <제2회 한국 서정시 문학대상> 수상자로 김명인 시인이 선정 되었다. <우리나라 현역 시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와 <제7회 미당 문학상 수상작> "식당 의자"가 그의 시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 현대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김명인 시인의 시를 서정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읽어 볼 일이다.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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