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79강 요설(饒舌)과 사건(事件)의 시(詩)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2:05

<토요 시 창작 강좌> 제79강

   ■ 요설(饒舌)과 사건(事件)의 시(詩)

   시 전문 계간지 '시인수첩'에서 마련한 좌담회에서 허영자 시인(전 한국시인협회장)이 박성준 시인(30세), 박상수 시인(42세)과의 설전이 화제로 지난 8월 8일자 조간 C일보에 실렸다.
   78세의 허영자 시인은 젊은 시인들을 향해 "서투름을 시적 모호함으로, 무질서와 난삽함을 새로운 기술인 것처럼 내세운다면 우리 시단에 독(毒)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미래의 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문학평론가 이숭원 교수(서울여대)가 제시하자 "난해시가 유행한다면 독자는 더 달아날 것"이라는 허 시인의 지적이 있었고, 이에 대해 "시가 난해해져서 시 향유층이 축소된 게 아니라 사회가 변하면서 새로운 수용, 소통 양식이 형성된 것"이라고 젊은 시인들이 강변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오늘은 위 내용을 상기하면서 요설(饒舌)로서의 시와 사건(事件)으로서의 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허영자 시인의 시와 박상수, 박성준 시인의 시 한 편씩을 소개한다.

   사랑은
   눈 멀고 귀 먹고
   그래서 멍멍히 괴어 있는
   물이 되는 일이다
   물이 되어
   그대의 그릇에
   정갈히 담기는 일이다

   사랑은 눈 뜨고 귀 열리고
   그래서 총총히 빛나는
   별이 되는 일이다
   별이 되어
   그대 밤 하늘을
   잠 안 자고 지키는 일이다

   사랑은
   꿈이다가 생시이다가
   그 전부 이다가
   마침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일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그대의 한 부름을
   고즈넉이 기다리는 일이다
          - 허영자, <그대의 별이 되어>전문

   가시엉겅퀴즙
   머리카락
   바비 립 에센스
   죽은 토끼
   코코넛 파우더

   사라랑
   사라랑
              - 박상수, <시인의 말>전문

   귀신이 왔다간 자리에 담이 섭니다.
   담담해진 마음으로 쓰러진 누이를 내려다보면서
   미안해서 같이 쓰러져 봅니다. 쓰러져 봅니다.
   길고 긴 꽃잠 들러 갑니다.
   누이는 겨우 숨이 돌고 있고, 아 대신 내가 귀신 들고 싶어라.
   담은 담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 박성준, <담> 부분

   나는 그동안 이 강좌를 통하여 시는 언어예술인 만큼 전문적인 용어를 지닌 개념적 의미나 추상성을 회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시인의 자세와 언술적 특성을 살리는 창조적 표현, 즉 단어, 구(句), 행, 연의 유기적 구성을 통한 시 본래의 생명인 함축과 운율, 정제된 형식을 통해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 작법을 전달하려고 애써왔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허영자 시인의 시가 나의 방향에 조금 더 가깝다. 소개한 허 시인의 시는 사랑이라는 관념이 객관화되어 이미지가 선명하고 구체성을 갖는다. 이렇게 단일 구성으로도 시점과 관점이 흩어지지 않는 것이 허영자 시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의 시는 생략된 수채화 같은 서정시인지라 대중적 인기가 있다.
   반면 박상수 시인이나 박성준 시인은 쉬르리얼리즘(surrealism /비합리적인 잠재의식이나 꿈의 세계를 탐구하여 표현의 혁신을 꾀한 예술운동), 다다이즘(dadaism/기존의 가치나 질서를 철저히 부정하는 비이성적, 비심미적, 비도덕적인 것을 지향하는 예술 사조), 초현실주의적 실험시를 쓴다. 이런 사람들을 '미래파 시인'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특히 박상수 시인은 명지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0년 <동서문학>에 시, 2004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한 엘리트 시인이지만, '시는 불완전한 것이고 전문성을 따질 필요조차 의심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으로 형식과 리듬의 파괴를 통한 새로운 시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박성준 시인 역시 고등학교 시절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 경희대에서 문학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모교인 안양예고 문예창작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문학과 지성'의 409호 시집을 내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그를 '앙팡 테리블(enfan terrble/무서운 아이들, 또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기도 하다.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는 시의 외연을 넓히는 시도라며 이런 시의 조류에 편승하려 한다. 위 시인들은 시의 기본기가 탄탄하기에 그나마 인정을 받고 있다지만 어떤 이들은 시의 기초도 모르면서 난해함을 흉내내기도 하는데 공부하지 않은 사람의 시는 눈 밝은 독자들에게 바로 들통이 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솔직히 평론을 공부한 나도 '미래파'라 불리우는 그들의 시를 이해 하려다가 머리가 아파서 책을 덮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일반 독자들이 요설 같은 이 시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때도 많다. 그러나  소위 시단의 먹물들이 앞장서서 이들을 띄우고 시의 작품성이 대단한 것인냥 이야기 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대단한 작품도 많이 있지만 '끼리끼리 해 먹는다'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허영자 시인의 지적대로 앞으로 그런유의 시인들이 시단의 흐름을 주도 한다면 시가 독자에게서 더욱 달아나게 될 것이라는 염려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다양한 방향성의 새로운 시 쓰기, 과거 세대와는 다른 이질성을 이해하고 여러 카테고리로 호명 될 수 있는 다채로움을 독자에게 제공한다면 그것은 현대시가 걸어가야 할 하나의 흐름이기도 하기에 나도 그 말엔 동의하는 입장이다. <생명시 운동>의 이념인 진솔하되 시와 함께 가는 삶, 다양한 방향성의 새로운 시 쓰기와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근래 우리나라 시단에선 난해시를 정리하여 자아반성이 녹아 있는, '서정으로 돌아가자'라는 운동이 일고 있다. '서정시'란 우리의 정서를 정리한 말글이기에 우리에게 쉽게 녹아든다. 시를 붙잡고 난해성과 싸움을 하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서정시 운동'이 수 천년을 면면히 이어온 시 정신에 닿아있기에 그렇다. 때문에 서정시를 모르고 시를 쓴다는 것은 근본을 모르는 사생아 같은 시를 쓰는 격이다.

   한편,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 스스로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과 같다. 사건이란 범상한 상태에서 벗어나 뜻밖의 놀라운 느낌과 생각을 일깨워 주는 일이다. 그래서 사건이 없는 시는 시가 되지 않거나 긴장감이 없는 맹물시다. 이 말은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건으로서 읽힐만 해야 제대로 시가 된다는 말이다. 힘찬 체험, 상식과 기대를 벗어난 사건의 생생한 표현이 시의 뼈대를 이루도록 하여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독자의 예상과 기대를 힘차게 배반하여 뜨거운 울림이 있는 사건을 찾아내는 일이 시인의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고도 막막한 사건의 퍼즐을 맞추듯 밤낮으로 연구하고 형사처럼, 탐정처럼 부지런히 뛰지 않으면 시인의 영토를 넓힐 방법이 없다. 명시로 기억되는 시의 대부분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새롭게 접하는 울림이 있는 사건(事件)이다.
   다음 시에는 어떤 사건을 형상화 했는지 살펴보자.


   창밖 감나무에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풋열매가 붉고 물렁한 살덩이가 되더니
   오늘은 야생조의 부리에 송두리째 내주고 있다
   아낌없이 흔들리고 아낌없이 내던진다

   그런데 나는 너무 무리한 약속을 하고 온 것 같다
   그때 사랑에 빠져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미친 약속을 해버렸다
  
   감나무는 나의 시계
   감나무는 제자리에서
   시시각각 춤추며 시시각각 폐허에 이른다

   어차피 완성이란 살아 있는 시계의 자서전이 아니다
   감나무에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 문정희, <미친 약속>전문

   문정희 시인은 "하늘이 흔들린 정도로 포효하며 열정을 다해 연애를 하거라"라고 <딸아 연애를 하라>라는 시에서 강조를 한다. 그리고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을 기다린다고 <다시 남자를 위하여>에서 갈구한다. 이것은 사랑을 저울질 하고 자존심 재다가 흘려 보낸 시간에 대한 도전적 사건이다. '사랑하다가 상처를 입어보는 것이 사랑에 안 빠져 본 것보다 훨씬 근사한 것이다'라는 연애론이다. 위의 시에서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미친 약속을 해버렸다'고 했다. 참으로 당돌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시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을 수 있을 때 더욱 재미있고 긴장감이 생기게 된다. 감나무의 감이 익어가듯 변하는 것이 우리의 사람살이이며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감나무 한 그루가 '인생의 시계'란다. 그래서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고 절대란 없다.
   이와 같이 제대로 된 시 쓰기란 미사여구의 차용을 멀리하고 담백하되 상식을 깨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잊지 말고 당신도 연습해볼 일이다. 그것이 익숙해야 당신만의 폼도 생기게 되고 시가 재미있게 된다. 당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