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72강 시의 게릴라 되기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56

<토요 시 창작 강좌> 제72강

   ■ 시의 게릴라 되기

   이 강좌를 통하여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견해를 소개하고 나의 주관적 관점을 이야기 하기도 했지만 밴드에 올라오는 시를 보면 아직 기초적인 작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시엔 특별한 답이 없거나 시인에 따라서 시 짓는 법이 다르긴 하지만 최소한 시가 되도록 하는 기초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은 보통의 경우 시의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겉멋에 취한 자기 중심적인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 자주 보게 되는 현상이다. 하기야 등단을 했다는 시인들도 기초가 부실하여 "시 이전의 시"를 완성된 시라고  발표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나도 등단 초기에는 기고만장한 마음으로 세상의 시인들이 우습게 보였고 내 시가 대단한 줄 알았다. 그래서 어줍잖은 시집을 발표를 하기도 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의 좋은 시를 몰라주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몇 년이 지나서 시에 대한 눈이 조금 열렸을 때 그 시집엔 시로 성장하지 못한 시가 수두룩 했음을 발견하곤 얼굴이 화끈거리고 자존심 상하여 시집을 회수하려고 소동을 빗기도 했다. 내가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도 좋을만큼 만만한 시인이 없다라는 겸손함이 그때는 내게 없었던 것이다. 30년 넘게 시단의 흐름을 지켜 보면서 남의 시를 무시하거나 겸손함을 갖추지 못하면 내 시도 무시 당하고 내 인격도 무시 당한다는 사람살이의 평범한 진리를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밴드는 그 특성상 얼굴을 서로 마주 하지 않는 익명성이 있기에 시를 발표하기에는 큰 부담이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곳은 공부하는 곳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서로가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서 좀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한 곳으로 회원들에게 자리매김되기를 바란다. 익명성에 기대어 무례한 언사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 그런 경우엔 회원 모두가 감시자가 되어서 이 밴드의 순수한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 시에 대한 진지함이 없는 사람은 가끔 다른 사람의 시를 무시하지만 자기의 시에 대해선 회원들의 조언을 "다른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데 왜 딴지를 거느냐?"는 식으로 문제를 삼기도 한다. 조언하는 말과 무시하는 말은 엄연히 다르다. 자기 시를 칭찬하는 주례사 같은 것에 만족하기 보다는 조언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시가 발전한다. 관심이 없으면 댓글이나 조언을 달아주지도 않는다. 나는 다시 분명히 말하거니와 회원들이 시를 잘 썼거나 못 썼거나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가 되느냐 안되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시를 좀 못쓰면 어떻고 잘쓰면 뭐할 건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으로 절대 남의 시를 무시하지 않되 서로에게 약이되는 조언을 바란다. 그리고 시를 제대로 쓰고 읽어 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공부하자는 이 밴드의 취지를 이해하여 조급함을 갖지 말고 진득하게 같이 가보자는 것이다. 본질을 외면한 성급한 걸음은 시의 곁에 오래 남아있기가 오히려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지난주부터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지나치기 쉬운 정말 중요한 시 작법에 대해서 핵심만 가려서 소개하고 있다. 쉽게 풀이한 속성 공부법이지만 실제로 시를 써보면 쉽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쉽다면 아무나 시인이 될 것이고 시의 가치성도 많이 떨어질 것이다. 어렵기에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는 불편함을 별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시를 제대로 읽어 내거나 쓸 수 있다면 자기의 품격이 그만큼 높아지고  세상살이가 더욱 의미가 있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회원들에게 제안한다. 남이 알아주던지 몰라주던지 시를 위해서라면 게릴라가 될 각오를 하기 바란다. 익숙한 세상 것들과 싸우는 시 게릴라! 시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시를 사랑한다면 나의 삶 일부를 투자해도 해 볼만한 시의 게릴라가 되는 것도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시는 산문처럼 직접적 묘사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어서 "시적 대상을 형상화 시킨 새로운 시각을 세상에 보고하는 보고서"인 것이다. 자기 혼자 좋아서 고민없이 익숙한 말글로 쓴 것은 일기에 가깝다. 그런 것은 혼자 보라. 새로움이 없는, 누구나 하게 되는 그리움 타령, 사랑타령, 꽃타령 등 진부한 것들은 시를 제대로 배우려는 사람에겐 독이라는 생각을 하라고 몇 번을 강조했지만 우리 밴드에 올라오는 시에서 계속 발견된다. 나만의 경험, 사물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라. 세상 만물을 통하여 자아(自我)의 결함을 발견하고 복구하는 작업이 시를 짓는 일이기에 시는 행복을 찾는 길이고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삶의 품격을 높여주지 못하거나 사랑의 지각(知覺)이 없는 시는 우리의 <생명 시 운동>과도 거리가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덧나게 한다면 그런 시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시를 쓸 때 기억해야할 일곱 가지
 
   1. 눈으로 오래 보고(깊은 응시)
   2. 주관적 감성으로(발칙해도 좋다. 새로운 해석과 나만의 감성으로 비틀어 생각하기)
   3. 사물의 형상을 그림처럼 그려놓되(이야기가 있는 말 그림)
   4. 언어의 배열과 형식이 시적 틀을 갖출 것(시각적, 의미적, 리듬적 틀)
   5. 묘사와 진술을 결합하되 나의 심상(이미지)이 반드시 들어 가도록 입체화  시켜서(꿈과 현실의 사실적인 부분과 상징적 부분을 결합 시킬 것)
   6. 최대한 뜻을 함축 하여(문장의 잔가지를 없앨 것)
   7. 심미안적 글을 쓰자(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갖자)

   나의 시작(詩作)노트에 적어서 들고 다니면서 달달 외웠던 내용인데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쉽지 않아서 몸부림 치기도 했지만 어쨋던 시가 되도록 쓰는데는 훗날 큰 도움이 되었다. 시가 잘 안되는 회원들은 우선 이 방법을 참고하여 실천해 보기를 권한다. 제대로 깨닫게만 된다면 시에 대한 눈이 열릴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제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