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69강 시를 쓰기 위한 조건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53

<토요 시 창작 강좌>제69강

   ■ 시를 쓰기 위한 조건

   시를 쓰기 위해선 사물을 자세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준비가 된 셈이다. 그런데 사물에 대한 것을 표현하면서 일상적인 언어습관과 직설적인 방법에 의지하면 삼류 시가 되기 십상이다.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하면서 누구나 알고 있는 진부한 것, 또는 직설적인 애정행각 위주로 한다면 수준 낮은 연애소설의 일부분처럼 될 가능성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랑의 표현법은 순간적인 모습만을 생각해서는 안되며 암시적이고 은유적 묘미가 부여될 때 시로서의 맛이 나는 것이다. 시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바라보는 자세의 결과물이며 새로운 형태의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15년 전 7월, 내가 관여하던 문학회 동인 30여 명과 함께 해외문학기행을 갔었다. 중국문학의 뿌리이자 조선시대문학의 뿌리이기도 했던 시경(詩經)과 고문진보(古文眞寶)의 직,간접 저자인 공자(孔子)의 고장 곡부(曲阜)를 중심으로 주(周)나라 때부터 송(宋)나라 때까지의 문학 흔적을 찾아보는 여정이었다. 동행자들은 들떠있었고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곡부의 빼어난 풍광을 배경으로한 팔각정에서 중국문학과 한국문학의 연관성, 특히 시경과 고문진보의 평설(評說)을 통한 고대와 근현대 시를 비교해가면서 나는 대표로 강의를 한 후, 그동안의 감상을 간단한 시로 써보라고 했다. 그런데 필기구를 준비해온 사람이 반이 되지 않았다. 배낭에 이런저런 먹을 것과 잡다한 것은 챙겨왔지만 정작 시를 쓰는 사람들의 분신이어야할 필기구를 챙기지 않은 시인들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군인이 총을 챙기듯 당연히 챙겨 올 줄 알았던 기본적인 것을 챙기지 않은 점을 지적한 나도 민망하고  그들도 민망한듯 서로 바라보다가 한바탕 웃고 말았다.
   시 쓰기는 사람살이의 한 순간을 쪼개고 모으고 편집하는 철학적 관조이다. 그저 나열하거나 펼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질곡과 고통과 환희의 경험들을 최고의 경지에서 농축하고 압축하여 세상에 보고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잘 본질과 어긋난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주객이 전도된 일들을 하기도 한다. 시인은 꿈에서도 시를 쓰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에도 번개 같은 시상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으므로 필기구는 나의 몸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분신이 되어야 한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고 순간의 감정이나 서정을 기록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 조건인가? 제때 기록하지 않으면 다음엔 잊어먹기도 하지만 그때의 감성을 잡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꿈을 꾸다가 기발한 시상이 떠오를 경우 꿈에서 깨자마자 옮겨 적을 수 있도록 머리맡에도 필기구를 항상 두어야 한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우선 무엇이 생각나면 쓴다는 일이다. 어떤 시인은 꿈에서 쓴 시를 현실에서 옮겨 적어서 발표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고백할 정도이니 꿈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봐야 되지 않겠는가? 시는 겉 멋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대하는 간절한 자세와 준비로 쓰는 것이다.

   오늘은 관념적인 시에 대해 간단히 맛보기로 하자.

   아마추어 시인의 시 중에는 관념적인 시가 많다. "이 시는 참 관념적이야"라는 평을 들었을 때 그것이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도 모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시에서 관념적이란 현실을 떠난 추상적인 사고와 의식, 이론적인 생각 등을 말하는 것이다. 즉 행복, 고통 등을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것으로 끝내거나 자기 혼자만의 어려운 낱말을 동원한 것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또한 관념적인 시는 관념 그 자체에 머물거나 추상적이기에 내가 설명하고 해석하고 말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시는 말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시는 관념의 유희에 의지한 결과물이 아니라 현실과 사물에 대한 깊은 응시와 고뇌와 울림이 담겨야 한다. 이 말은 현실 대상의 특질과 이미지, 즉 장면의 묘사가 생생하고 선명하되 시적 형상화라는 여과 장치를 거쳐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념 그 자체에 머물면 시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귀가를 서두르고 싶지 않다
   인간 세상은 뒤돌아보면 서두르다가 어긋나고
   처지고 풀어져 버렸다
   스승은 일찌기 내게 노자처럼 느릿느릿 살게,
   게으르기라면 더 게을러서 살게, 라 하셨지
   그 말씀이 소리를 죽이며 내 뒤를 여태 따랐는가
   어스럼으로 너울치는 바다가 한 자 한 자
   짚어준다
   멀리 부산 가덕도 쪽에서 여객선일까 희미한 외등 켜지고
   점점 다가 오지만
   나는 조금도 서두르고 싶지 않다
                    - 강희근, <북쪽> 부분

   "귀가"를 서두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시인은 고단한 삶으로 서둘러 귀가하는 장삼이사(長三李四)와 달리 홀로 "여객선"의 "희미한 외등"을 바라보며 인생의 의미를 되묻는 시다.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요소들을 확장된 형식이자 공간적 형태의 진술적 말 그림으로 보여주는 시다.

   시는 관념이 아니라 노래이기도 하다. 개인의 서정담론을 빌려서 함께 나누는 사회적 긴장이 바탕이 되기도 했었고,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눈감고 있었던 다채롭고도 복잡한 흔적을 포착하여 그것을 고스란히 녹이고 축약하여 순도 높은 보석처럼 남겨 놓으므로써 역사적 기능도 담당했기에 시가 오랜 세월동안 우리 곁에 살아남아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는 사물에 대한 그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쓰는 것이다. 여기에 훌륭한 가수가 맛깔스런 노래를 부르듯 감정이 흥얼흥얼 따라 갈 수 있는 리듬을 더한다면 더욱 맛있는 시가 될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