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63강 시의 발화(심화과정1)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45

<토요 시 창작 강좌>제63강

■ 시의 발화(심화과정1)

   고백 하자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 부터 시(詩)짓기 선수였다. 교내든 전국 단위든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무슨 상이라도 받아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쓴 '신호등'이란 시는 당시 문교부 장관상을 받았는데 이듬해 여름방학 책 안쪽 표지에 실려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으니 어려서부터 나의 콧대는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중학교에 가서도 글짓기 대회 운문부를 휩쓸었던 상을 고등학교 1학년 이후엔 백일장에 여러 번 참가는 했으나 장려상 외엔 상을 받지 못했다. 나는 점점 실망하였고 심사하는 선생님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던 중 모대학교에서 주최한 전국 고등학생 백일장에서 심사위원 선생님이 나의 시를 예로 들면서 심사평을 했는데 나는 도둑질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충격을 받았고 쥐구멍을 찾아야 했다.
"좋은 싯귀를 공책에 적어놓고 활자 끼우듯 끼워서 적당히 만든 것은 시가 아니다. 시는 어머니가 아기를 낳듯 자기만의 서정으로 낳는 자식 같은 것이다. 팔다리와 눈과 코와 귀를 각기 다른 곳에서 빌려와서 붙여놓았을 때, 그것은 시가 아니다"
   내가 써먹었던 시 짓는 방법을 조사한 듯 정확하게 집어내었는데 그동안 나는 좋은 싯귀를 공책에 빽빽하게 적어놓고 그때그때 적당한 것을 끼워 넣어서 시를 써왔던 것이다. 그 심사평을 하신 분은 문덕수 시인이었다. 그 후 나는 '시인다운 시인과 시 다운 시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였고 평생 시를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깨알처럼 옮겨 적어왔던 대학노트 다섯 권 분량의 온갖 시어들은 지금 나의 시업도정(詩業道程)에서 뺄 수 없는 귀한 자양분이 되고 있는데 <발표된 시어 사전>으로 활용, 응용하고 있다.
 
   ● 시 창작과 시 낳기

   엄밀히 말하면 '시 창작' 이란 말보다는 '시 짓기'란 말이 시 정신(poetry)에 가깝다. 한국 시사(詩史)에서 이 개념을 처음 언급한 사람이 박용철(시인, 평론가1904~1938) 님인데 그는 "한 편의 시는 상상력, 의식, 지성, 감성과 정서, 무의식, 몽상 등이 통합되는 극적인 순간에 빚어진다"라고 정의하였다. 즉 서정적 발화를 통하여 얻어진 상상력과 감성과 지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집을 짓듯 튼튼한 구조로 이루어 지는 것이 좋은 시라는 것이다.
   요즘은 '시 짓기' 보다 '시 낳기'란 말이 유행한다.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아기를 낳듯 낳는 것이다"라는 견해와 일치 하지만 참 어려운 말이다.
   시 창작의 비밀을 이론화하여 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시를 짓는데 필요한 최대공약수 같이 오랜 세월동안 자연스레 형성된 이 기초 작법조차 무시하면 시가 안되거나 시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초보 시인들은 그래도 이 이론을 제대로 알고 시를 쓰면 시가 한결 간결해지고 독자의 공감을 얻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기초가 단단한 사람, 철저히 준비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앞설 수 밖에 없다. 중견 시인이 되고 시력이 붙으면 뒤집어서 써 놔도 시가 되지만 아직 시의 기초 개념조차 익히지 못한 사람이 겉멋이 들어서 기성시인의 흉내나 낸다면 제대로된 시인으로 성장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 최적화 된 시 짓기(낳기)의 단계

   1. 원천적 단계
       이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으로 나누는데 시 쓰기에 앞서 갖춰야 할 기본 자질과 준비 사항 등을 말한다. 몇 날을 고생하여 쓴 시를 유명하신 시인께  자랑스레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시집을 몇 권이나 읽었보았냐고 나에게 물었다. 우리 집엔 시집 40여 권이 있었기서 나는 "40권 정도는 읽어 봤다"고 했더니 그 시인은 "시집 400권도 읽어보지 않고 시를 쓰는 것은 나침판 없이 바다여행에 나선 것 같은 무모한 짓이다"라고 하셨다. 신경림 시인은 "시 1천 편을 외우고 나니 시의 길이 보이더라"고 했다. 시에 정말 목마르다면 우선 시를 많이 읽고 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정적 감성을 선천적인 것이라면 독서와 사색, 남의 시를 읽고 외워 보면서 시의 자양분을 쌓는 것은 후천적 범주에 드는 중요한 것이다.

   2. 의미화 단계
   의미화를 다른 말로 하면 시적 인식 갖기, 즉 발상(發想)의 과정이다. 시를 이루는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물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내가 그동안 깨닫지 못한 것을 깨우치는 단계, 마음에서 폭포수 처럼 쏟아지는 그 어떤 시적 감성이 주된 내용이다. 다른 사람의 것을 차용을 하는 것은 시의 독창적 발상을 죽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3. 형상화 단계
   시의 핵심은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시적으로 인식된 것을 글로 그리는 그림처럼 실현화 하는 것이다. 이것을 표현의 현현화(顯現化)라 하기도 하고 심상(心象/image)세우기 라고도 하는데 언어를 통해서 어떤 형상을 우리 머리속에 그려 내어 추상적 관념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언어의 옷을 입은 시의 구체적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다음주에 계속)

   ※ 5월에 관한 숙제 시 중에서 다음 두 편을 뽑았습니다.

   사월에 만난 오월 / 최승환

   끊임없이 오는 너는
   끝내 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냥 주저 앉았다
   거센 물결을 네 발로 가르며
   다가오던 바퀴는
   어디로도 향하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
   돌고 또 돌아 맴돌고
   목구멍으로 토해 버린
   검은 눈빛은 진실을 응시한다

   힘있는 자들은 힘없는 존재를
   분리한다
   손 내밀지 않는 자의 마주침의 부재,
   그 현란한 수사학,
   희미한 기억조차 없다

   헐 벗은 분노는
   잊혀진 미생의 꿈틀거림
   그 옛날 동굴의 울림으로 오고 있다
   절벽에 핀 꽃같은 열정이
   고통으로, 너의 그리움으로
   기어이 온다



   나의 어머니 大地 / 김미경

   이슬로 정갈히 씻은 당신
   우주의 시간을 돌고 돌아
   시절마다
   푸른 혈관 툭툭 불거지는
   산고를 겪는다 
   초유 같은 황토로
   수혈 받은 짧은 푸르름
   낙엽으로 덧없이 찢긴 채
   벌거숭이 허물 덮듯 하얀 수의 입는다
   가슴을 짓누르는 진통
   끊을 수 없는 뫼비우스띠처럼
   늙은 노모 빈 젖꼭지에 매달린 아픈   
손가락
   전생에 지은 죄
   억겁의 세월 끊을 수 없는 족쇄가   채워졌다
   숙명은 거부할 수 없는 모성을
   심연 깊이 심어놓았다

   ※ 위 두 분께 작은 선물을 보낸다.

   다음주 숙제는 시의 제목은 자유롭게 정하되 그 제목의 단어가 시 본문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게 하여 시를 써보라. 제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나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시를 완성하라.

   (예시/例示)

   비 오는 날

   낡은 구두는
   젖은 발이 안쓰럽습다
  
   젖은 발은
   새는 구두가 안쓰럽습니다



   석양 / 김일영

   잊자고

   잊어버리자고

   눈을 씻으러

   들어간다
  
   ※위 두 분은 제 개인 창에 주소와 연락처를 남겨 주세요. 작은 선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