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60강 시인과 글쟁이 (시의 기본 5)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42

 <토요 시창작 강좌>제60강

   ■ 시인과 글쟁이 (시의 기본 5)

   환자를 잘 치료하기로 소문난 병원장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은 의사면허가 없는 무자격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면 그는 이제까지의 명성이 무너지고 사기꾼 비슷한 위상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빨리 달리는 육상 선수가 있다고 하자. 그것을 누가 인정해줄 것인가가 문제다.
   환자를 잘 치료하는 사람이니 우리가 인정하면 되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라고 우리가 인정하면 되는 것인가? 현대사회는 그렇지가 않다. 상징적 효력을 공표하는 지위를 가진 타자나 기관에 의해서만 그 효력을 인정 받는 것이다. 즉 의사는 수련의 과정을 거치고 국가가 실시하는 의사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는 사람도 세계육상연맹이 그 기록을 인정해주기까지는 그 상징적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시인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시를 쓴다고 할지라도 시인이 되려면 시집을 묶어서 발표하든지 등단을 하여 타자, 즉 상징적인 제도를 통하지 않고는 시인으로 인정받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시인이 되기 전까지의 그는 글쟁이지 공식화된 시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 상징적 효력을 가진 타자나 기관이 자격 미달이라면 그런 제도를 통해 등단하더라도 그것 또한 제대로 된 시인으로 인정 받거나 활동하는데 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런 사람은 2류, 3류 시인으로 취급받아서 시의 변방을 떠돌다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등단을 할 때도 심사숙고하여 정말 시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시인을 배출하는 '권위(權威)'라는 상징성(象徵性)을 가진 곳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며 좋은 시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1. 좋은 시가 좋은 시를 낳는다.
       좋은 시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좋은 시를 쓰기란 어려운 일이다.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듯이 이름난 시인의 시를 자꾸 접해봐야 그 시의 맛을 느낄 수 있고 언어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시안(詩眼)도 열리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자기 작품에 객관적 잣대를 갖다 댈 능력이 생기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시인은 문사철(文史哲)에 능하지 않고는 훌륭한 시인이 되기 어렵는 말이 있는 것이다.

   2. 언어를 다루는 연습을 하라
       시란 '언어의 정수'라 한다. 정수(精髓)란 말은 뼈속에 있는 골수란 뜻인데 사물의 중심을 이루는 가장 뛰어나고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즉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내는 감각과 언어를 다루는 솜씨를 연마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 될 수 있다. '초원의 빛'으로 유명한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는 "시란 최상의 언어를 최상의 순서로 늘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시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치열한 언어의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된다는 것은 시의 프로가 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프로가 되려면 자기와의 싸움과 피나는 수련이 필요하다. 훌륭한 운동선수나 바둑기사, 서커스의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 것처럼 언어를 다루는 시인이 되는 데도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꾸 써보고 또 쓰는 연습을 꾸준히 하지 않고는 시인이 될 수는 없다. 시가 안된다고 조급할 필요는 없다. 그런 과정을 시인이라면 누구나 거쳐왔기 때문이다. 시가 잘 안 씌여진다고 주저 앉으면 연필 한 자루와 노트 한 권으로도 세상을 품게 되는 시인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시를 즐기면서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면 자연스레 시가 시인을 만들어 주거나 시인보다 더 훌륭한 독자를 만들어 주고야 만다.

   3. 관찰하는 눈을 가져라
       조지훈 시인은 시를 잘 쓰려면 과학자의 눈을 닮으라고 했다. 사물을 관찰하는 데 치밀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지라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던 것들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알지 못했던 뜻밖의 사실이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발견한 새로움이란 바로 시의 중요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아침에 봤던 꽃도 저녁에 보면 다르고 어제의 태양이 오늘의 그것과는 다름을 찾아내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예리한 관찰을 통해서 사물의 의미를 붙잡는 일, 그 의미를 나의 삶과 연결되도록 사유를 넣는 작업이 시 쓰기인 것이다.

   달개비 떼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
                       - 황동규, <풍장 58>

   모든 예술의 바탕은 관찰이다. 성냥개비만 한 작은 달개비 꽃에서 코끼리를 본 황동규 시인은 그것이 풍장(風裝)이란다. 그렇게 피었다가 바람과 햇볕을 온 몸에 받고는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4. 그리고 침묵하라
       시는 말과 침묵이 유기적으로 엮어져 있는 구조다. 말은 침묵을, 침묵은 말을 잉태한다. 좋은 시는 말보다 더 많은 침묵이, 침묵에는 더 많은 말을 서로 품고 있다. 다 말하면 산문이 되지만 핵심만 뽑아서 보여주고 침묵 속에 말을 숨겨 놓는 작업이 시 쓰는 작업인 것이다. 말이 많으면 시가 아니다. 침묵할 기술을 연마하지 못하면 산문 비슷한 글이나 쓰는 글쟁이로 전락한다. 많은 말을 감춰놓았지만 독자들이 그것을 찾아내어 감동하도록 열쇠를 쥐어주는 방법을 연마하는 것이 좋은 시를 쓰고싶은 사람이 할 일이다. 그것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시의 기초작법을 최대한 쉽게 풀어서 꾸준히 소개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참고하여 글을 써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 나의 강의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할 것이다. 진심으로 시를 공부하고 싶다면 시간을 내어서 강의 내용대로 해보라. 길이 보일 것이다.
   지난주에도 숙제를 하여 올려준 사람들이 많았다. 시를 대하는 자세가 더욱 진지해졌다. 작품성을 갖추는 일은 자꾸 써보면 된다.
  
  숙제에서 뽑은 <이주의 시>


   성형미인 / 위인환


   손가락 끝에 지문이 없다
   백분지 일의 차이도
   느낄 수 있는
   혼이 살아 있을 뿐이다

   천 오백도로 달구어진
   열정이 녹아 흘러 내려
   만든 성형 미인

   영점 영영의 사명을 띠고
   매끈한 피부에
   벼룩이 눈꼽 보다
   작은 상처

   손끝에 감겨오는
   영혼의 느낌으로
   메꾸고 다듬어
   완벽한 미인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민들레의 부채 /김미숙(마야)
                
                
   체온을 상승시킨 바람이 오지랖이다.
   보도 블럭에 깔린 숨 막힌 생에게
   심폐소생술을 한다.
   살아나라. 살아가라.
   꼭 살아내라  이른다.
   헉!
   절명을 토해내고  눈을 뜬다.
   일어서서 살아가자.
   꼭 살아내자 이슬 한 입 물고 다짐한다.

   삶의 무게는 보도블럭 보다 무겁다.
   바람에게 진 부채
   생명력을 부채질한다.
   이제 굽은 등을 펴 봐야한다.
   틀어진 몸이지만 아직 부채가 남았다.
   내일은 기어코 태양을 마주하자.
   악!
   뜨거움에 물집 잡혀도
   살아내야 하는 약속.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다.



   부질없는 염문 / 김한백


   허벅지 슬쩍
   핑크빛 속살을 드러내며
   끼 부림이 당찬 복사꽃

   정신을 잃고
   하얀 속치마를 들춘 봄바람이
   당황하며 말라간다

   참다못해 여린 피부를 도발한
   이슬비마저도 말라간다

   망울 터트린 게 언제인데
   낯 뜨거운 정사는 어디 가고
   소문만 무성한 복숭아밭에
   앳된 얼굴이 사라진다

   도화살을 뿌리고 간 대답 없는 꽃들
   눈부신 색의 잔치가 꼬리를 자를 때

   얼굴 없는 나뭇가지에
   디밀고 올라선 햇복숭아들
   봄 바람기가 추락하면
   여름을 입술로 문다

   햇살이 성장판을 두드리며
   긴 팔로 희롱한 벌 건 대낮
   점점 꽃 색깔을 닮아가는 열매들

   갈바람과 귀뚜리가
   짚신 엮듯 울어대는 밤이면
   더 농익은 채
   개울에서 들리는 물살 소리처럼
   귓속을 달콤하게 파고드는 것

   군불연기 허리 삐끗하며
   허공에 아지랑이처럼 퍼져 나가는 것

   그러나, 긴 겨울밤
   나뭇가지마다 소문도 앙상하게   
   말라간다


   지난주에 내어드린 숙제 시 중에서 위 세 편을  <이주의 시>로 뽑았다.
   위인환 님은 자기의 직업을 시에 잘 녹여내고 있다. 시를 풀어가는 열쇠를 독자의 손에 쥐어주는 솜씨가 좋다. 그동안 올라온 시들을 다 봤는데 열정과 시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난다. 시력이 붙으면 부족한 것들은 충분히 채워질 듯 하다.
   김미숙 님이 쓴 '민들레의 부채'는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통한 민들레와 본인 삶의 치열한 이미지를 교차시켜 가면서 잘 표현했다. 그러나 '헉!'과 '악!' 같은 표현법은 시를 촌스럽게 만드는 주범이다. 왜냐하면 시란 독자가 읽고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좋은 시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감동, 감탄, 한탄, 전율해 버리면 독자는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을 앞으로의 시 창작에서 유념하여 오히려 담담하게 진술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바란다. 그동안 올라온 몇 편의 시에서 시도되고 있는 신선함과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김한백 님의 이번 시는 관자적(觀者的) 시로는 좋다. 시인의 삶과 연결고리가 조금 약하긴 하지만 표현들이 세련되고 시력도 읽힌다. 그동안 올라온 많은 시들에서 발견되는 중복된 단어나 의미, 시의 범위를 넓게 잡거나 다 알고 있다는 듯 힘이 들어간 자세는 크게 경계하여야 한다. 이것은 조급함에서 오는 것일 수 있으므로 천천히 낮은 자세로 보고 또 살펴 보아서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쓴다면 좋은 시가 쏟아질 것 같다.
   세 분께 축하 드리며 작은 선물을 보낸다.

   다음주 숙제는 그동안 읽었던 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 한 편과 그 시를 페러디 한 당신의 시를 올려주기 바란다.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