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창작 강좌>제59강
■ 공감을 얻는 시(시의 기본 4)
인생의 사건을 모방하면 산문이 되고 인생의 감정을 모방하면 시가 된다. 모방은 다른 말로 하면 재현과 반영이다. 즉 경험에서 오는 서정적 충동을 압축하여 옮겨 적는 것이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을 옮기는 것만으로는 시로서는 부족하다. 독자의 공감이 없는 시는 죽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공감을 얻게 하려면 어떻게 시를 써야 한단 말인가?
내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상대방에게서 장황하게 듣는 것 만큼 지루한 일은 없다. 시가 바로 그렇다. 시를 배울 땐 "누구에게나 익숙한 단어나 말들을 나열하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정리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1. 젊은 언어 사용하기
첨단 시대에 살면서도 남들이 지겨울 정도로 써먹은 낡은 시어, 즉 사랑타령, 그리움타령, 꽃, 구름, 기다림, 감탄사가 직접적으로 들어가거나 어린 시절의 풍경과 풍물, 또는 ...하였나니, ...노니 등의 고어체, ...하라 ...하게 등의 명령체가 들어간 시어는 '술취한 옛사람들의 넋두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옛것보다는 현재의 것을, 익숙한 말 보다는 새로운 말이 무엇인지를 찾고 또 찾아라.
2. 뒤집어 생각하기와 비틀어 말하기
현상을 그대로 진술하면 설명문에 가깝게 되므로 시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 현상 뒤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시작(詩作)의 기본이다. 이것은 뒤집어 생각하고 거꾸로 생각하여 연관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서 길을 가다가 5백 원짜리 동전을 주웠을 때 '학을 분양 받다'라든지 '가난한 커피 한 잔과 우수리를 줍다'라는 방법으로 연관된 새로운 의미(new depaysment)를 부여하는 시 작법이다. 유안진 시인은 10원 짜리 동전을 주웠을 때 '다보탑을 줍다'라고 했다. '하늘을 이고 길을 걷는다'라는 표현도 많이 써먹은 표현이라고 생각된다면 '하늘이 내 목을 매달고 산을 넘고 있다'라는 다소 엉뚱하다 싶은 해석이 시를 새롭게 하는 기본중의 기본인 것이다.
3. 좋은 시가 아니라 문제 시 쓰기
신인이 기성 시인의 흉내나 내고 있다면 시인의 자격이 없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에 관계 없이 신인은 신인답게 문제적 시를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숙하고 노련한 시가 좋은 시가 아니라 젊고 패기있는 표현기법, 새롭게 해석된 사물의 진술이 좋은 시다. 시를 배울 때에는 새롭지 않거나 실험정신이 결여된 시는 시에 대한 죄악이다라는 생각을 가져라. 예술의 최대 미덕 중의 첫 번째가 바로 참신함이기 때문이다.
4. 사물에게 말걸기
시를 쓴다는 것은 삼라만상에게 말을 걸고 그 대상과 싸움을 하든지 사랑을 하든지 결판을 내는 일이다. 말을 걸 때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라. 그리고 자꾸 물어보라. 내가 설득되지 않는 것은 비틀어서 물어보고 씨름도 해보고 연애하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껴안아도 보고 감춰진 비밀을 찾을 때 까지 말을 걸어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그 대상은 결국 내가 묻는 말에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대답할 것이다.
5. 시 쓰기의 대상 찾기
시를 멀리서 찾지 말라. 내가 제일 잘 아는 것을 대상으로 써라. 평생 해온 일이라면 더욱 좋다. 어부나 생선을 파는 사람마큼 생선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음식점을 하는 사람은 음식시를, 학원을 하는 사람은 우선 학원을 하면서 겪는 온갖 것을 시로 풀어내라. 예쁜 시는 경쟁력이 없다. 자기만의 시, 이름을 가려놓고 봐도 누구의 시인지 알 수 있는 특색있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시를 쓴다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 회원 중 지봉수 님의 시는 짧지만 강렬한 자기만의 에로티즘의 색채를 지녔다. 완성도는 차차 보완하면 되므로 이런 시가 매끈하거나 이쁜 시 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자기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연구하고 쓰자는 말이다.
위 방법 외에도 앞으로 계속해서 기본적인 시 작법을 소개할 것이지만 시 창작을 위한 책도 많고 시인들의 시론도 제각각이긴 하다. 몇 번 이야기 했지만 "이것이 답이다"라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분명히 시(詩)와 비시(非詩)가 있고 시로서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최적화된 시 창작의 기본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밴드를 시 잘 쓰는 사람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제대로 읽어내는 독자운동, 시를 차근차근 배워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부방, 그리고 한 단계 도약하려는 사람들에겐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주에 올라온 글에는 이런 나의 바램이 조금씩 반영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회원들의 글이 많이 다듬어 지고 점점 새로운 해석과 비유와 사유 등이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글이 많이 눈에 띄였다. 부족하거나 거칠어도 다양한 시각으로 열심히 시를 쓰고있는 회원들의 시를 읽는 재미가 이젠 제법 쏠쏠하다. 자꾸 쓰니까 자꾸 실력이 느는 것이다.
[숙제에서 뽑은 이주의 글]
얼룩말 / 엄영희
얼룩도 무늬가 되어 흐르는 사람아
얼룩은 말보다 빠르구나
나와 세상을 묶는 흑백의 문신
몸이 숯덩이로 끓을 때면
출렁이며 낮과 밤이 부딪는 채찍의 흔적
내게 온 종이 위의 얼룩진 말들아
백야의 얼굴인 너는 낮보다 하얗구나
얼룩이 얼룩을 낳고
얼룩에 말이 번지면 무늬가 되는 밤
얼룩인 몸으로 달리는 사바나의 말들아
덜렁이 / 황상하
내 손에서 바닥에
하나를 놓고
다시 가져가야 할
그것을
덜렁대서 그것을 놓고
원래 있던곳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다시 찾으려고 그 장소에 돌아가보니
원래대로 있지 않고
형태가 일그러져
알아보기 힘든상태라
그냥 쌩~하고 지나가버렸지...
엄영희 님의 <얼룩말>은 시의 대상인 사람의 행위에 내재된 본성을 얼룩말이란 모티프에 은유적 발상을 잘 입혔다. 말(馬)과 말(言)이, 밤과 낮이 부딪치고 얼룩져 가는 몸에 가해지는 채찍의 고통을 자양분으로 사바나의 초원을 달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시(詩)로 치환(置換)시킨 감각적 능력이 돋보인다. 앞으로 엄영희 만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관자(觀者)나 청자(聽者)적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가 더해진다면 시인의 깃발을 꼿아도 될 것 같다.
황상하 님의 <덜렁이>는 사실 시로서의 완성도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실험적 시쓰기의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오히려 매끈하면서도 낯익은 듯한 글 보다는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구름'을 모티프로 하여 썼지만 이미지의 연결고리가 많이 약하다. 중복된 말을 다듬고 스토리를 좀 더 보충하면 특색있는 시가 될 수 있으므로 한 주간 퇴고를 해서 다시 올려 주기를 바란다.
뽑힌 두 분께 작은 선물을 보낸다.
다음주 숙제는 자기의 직업이나 제일 익숙한 일을 모티프로 하여 글을 쓰되 말하지 말고 보여주는 방법으로 써보라. 즉, 사물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이 아니라 연관된 이미지를 비유와 은유를 동원하여 내 삶의 이야기가 있는 그림처럼 보여 주기 바란다. 말하는 것은 설명하는 것이고 보여주는 것은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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