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창작 강좌>제58강
■ 그림자처럼 안개처럼(시의 기본 3)
"시를 쓴다는 것은 퇴고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한 편의 시를 후딱 써놓고 시가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인의 자세로는 굉장히 위험한 짓이다. 퇴고를 거치지 않고 완성되었다는 그 시는 사실 '초고(草稿)'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초고란 퇴고를 전제로 한 것이다.
퇴고란, 밀퇴(推/밀'추'로 읽기도 함)와 두드릴고(敲)가 합쳐진 말인데 중국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시를 생각하면서 말을 타고 가다가 부딪친 당대의 문장가 한유(韓兪)에게 자기의 시(詩)에 나오는 "중이 달빛 아래서 문을 두드린다"라는 표현 중에서 문을 민다(밀퇴/推)가 나을지, 두드린다(두드릴고/敲)가 나을지를 물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퇴고라는 말 자체가 '밀고 두드린다'라는 뜻이 되므로 우리는 시 전체의 구성과 시어, 상징, 비유, 이미지 등의 요소가 제대로 되었는지, 시어가 새로움에서 밀리는지 살펴 보기도 하고 단단한지 두들겨 보기도 하는 자세로 몇 번이고 퇴고를 해야 한다. 물론 퇴고에 특별한 방법이나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의 것들은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1. 오자와 탈자를 살펴라
2. 맞춤법은 맞는가
3. 띄어쓰기는 맞는가
4. 불필요한 설명을 과감하게 생략했는가
5. 한 편의 시에 같은 말이나 같은 표현이 두 번 이상 사용되었는가 (꼭 중복의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면 차라리 비슷한 언어나 유사한 낱말을 사용하라)
6. 다른 시인의 시말을 절대 인용하지 말라
7. 무작정 고치지 말고 뜸을 들여라
8. 누군가가 결점을 말해주면 변명하지 말고 우선 고쳐보라
9. 끊임없이 고치되 고친 부분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하라.
10. "퇴고는 글쓰기의 처음이면서 중간이고 마지막이면서 그 모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져라.
글은 다듬어질수록 단단해진다. 일필휘지로 단숨에 쓴 시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치고 성공한 시인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어쩌다가 그렇게 쓴 시가 좋은 시로 기억되는 것도 있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반드시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초보시인의 의무이다.
퇴고해야 할 부분이 눈에 띄여서 글을 쓴 이에게 퇴고를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당연히 퇴고를 했다"는 대답이었다. 어떻게 퇴고를 했냐는 물음에 "시를 써놓고는 밤새도록 몇 번이나 고쳤다"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그게 바로 초고다"라고! 내가 말하는 초고란 '처음 완성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밤새 쓴 글은 거의가 초고일 가능성이 많다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밤을 새워서 썼던 작품을 다시 다음 밤을 새워가며 살펴 보라는 이야기다. 한참 뜸을 들였다가 다시 고쳐서 완성한 것이 두 번 째 퇴고이며 그렇게 몇 번의 수정을 거친 후 더 이상의 표현을 도무지 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때 다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어서 지적을 받아보고 한 번 더 살펴본 후 발표를 해도 전혀 늦지 않다는 것이다. 유명 시인들이 시집을 발표하고 나서 몇 년 지난 후 증보판 또는 개정판을 통하여 시를 고쳐서 다시 발표하는 경우도 결국 퇴고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퇴고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보면 자기 실럭의 수준을 과신한 나머지 고집불통이거나 겸손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자신의 소설을 퇴고하면서 마침표 하나를 찍기위해 보름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노인과 바다'라는 걸작이다. 유명 소설도 이렇게 퇴고를 한다는데 하물며 시에서랴......
글을 쓴다는 것은 복받은 일이다. 나폴레옹이 세상을 자신의 손바닥안에 넣고 싶었지만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연필 한 자루와 노트 한 권만 있으면 세상을 내 손안에 넣을 수도 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이란 말인가? 세상을 손 안에 넣는 작업인데 퇴고의 수고를 마다하면 되겠는가?
지난주에 '봄'에 관한 시를 쓰되 제목과 내용에 봄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도록 써보라는 숙제를 내어드린바 있다. 감사하게도 54명이 글을 밴드에 올리거나 개인적으로 보내왔다. 수준이 많이 향상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봄이 너무 드러나서 오히려 재미없는 글이 많았다. '봄'하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시어로서의 경쟁력이 약하거나 없게 된다. 봄 이야기가 전혀 없는 시를 읽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봄'이야기였다면 봄의 시로서 성공한 것이다.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문제점은 독자가 못알아 들을까봐 너무 드러내거나 설명하려는 작법이다. 이것은 자기가 아마추어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아무리 드러내도 반 이상은 드러내지 말라. 그림자처럼, 안개의 저편처럼 독자가 상상할 공간을 두라는 것이다. 눈밝은 독자는 현명하고 눈치도 빠르고 어지간한 것은 알아 차리기 때문이다. 내용을 어렵게 쓰라는 것이 아니라 옷속에 감춰진 처녀의 뽀얀 속살처럼 상상할 수 있는 해석의 공간을 남겨 두라는 것이다. 은유나 활유, 대유법, 중층묘사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앞으로 이런 시 작법을 천천히 공부할 것이다.
'봄'에 대한 시를 보자.
적막한 오후
나른하게 지쳐 잠든 여인의
하이얀 모시 적삼에 살풋이 비치는
연분홍 속살이여
- 오세영, <영산홍> 부분
위 시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영산홍>이 제목인 것으로 봐서 봄에 관한 시 인데 여름에 입는 모시적삼이 등장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시인은 이점을 노렸다. 봄에 모시적삼을 입었다면 춥지 않겠는가? '살풋이 비치는 속살'을 인용하고 영산홍 꽃잎과 모시를 중첩시켜서 기막힌 조합으로 내놓은 것이다. 다시 읽어보라 분홍 꽃과 연두색 새싹, 그리고 모시 옷을 입고는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추위며 소름이 돋는 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회원 시 두 편(숙제로 제출된 시)
더듬이 / 박선우
버버버벌레보듯 보지마슈
이이리도 고요한 발걸음을,
드드드들어는 봤슈?
고양이 담 넘어가듯
구렁이 담 넘어가듯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양갈래의 더듬이가 만개하더니
작년의 기억을 살랑살랑 더듬어가며
나나나나 왔슈
시끄러웟! / 손계정
잔인하여라
숨통 찌르는
햇살소리
파랗게 질려 일어서는
풀잎 소리
여기저기
살점 터트리는 소리
낭자하게
핏물 오르는 소리
들판은
온통
아
ᆞ
우
ᆞ
성
박선우 님의 <더듬이>는 움트고 있는 봄의 눈을 '버버버벌레보듯 보지마'란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원하여 "더듬거리며 오고 있는 봄"을 노래한 감각적이고도 새로운 해석이 신선하다. 추위를 이겨가며 '양갈래의 더듬이가 만개하더니/작년의 기억을 살랑살랑 더듬어 가며//나나나 왔슈'
참으로 당돌하고 재미있는 표현이다. 박선우 님의 시들이 좋아지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손계정 님의 시 또한 매우 감각적이다. 이 시의 시끄러운 제목과 '잔인 하여라'는 첫 줄, 첫 연을 통하여 시의 열쇠를 독자에게 쥐어주고 있다. '살점 터트리는 소리/낭자하게/핏물 오르는 소리//들판은/온통/아ᆞ우ᆞ성'이라고 맺으면서 만개(滿開)한 오월의 봄을 차라리 역설로 노래한 것이다.
두 분께 감사드리며 선물을 보내드린다.
다음 주 숙제다.
'나무, 돌, 구름, 꽃, 말, 소, 개'중에서 하나를 모티프로 하여 의인화 시킨 글을 써보라. 대상을 심도있게 관찰하고 투명한 변화를 반영한 인간의 속성을 가장 잘 부여한 글을 뽑을 것이다.
부담 갖지말고 시간 되는 분은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써보기 바란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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