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창작 강좌>제56강
■ 시적 언어 만들기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주로 독자와 시인의 자세, 시창작 이론에 관해서 다뤄왔다. 초창기에 비해서 회원들이 올리는 시나 댓글의 격이 높아지고 있음에 자긍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시적 표현과 시의 이해도, 시 쓰기의 기본을 무시하거나 시로 여물어지지 않은 글을 여기저기 올리는 회원에 대한 우려는 지울 수 없다.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글이라도 한 밴드에 집중하면서 같이 배우는 자세로 임한다면 적극 장려할 일이지만 같은 글을 여러 밴드에 올리는 것은 시를 배우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 자기의 글을 자랑하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기성 시인도 같은 작품을 여기저기에 발표하지는 않는다.
오늘부터는 다시 <시 쓰기의 실제>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시를 잘 쓰거나 못 쓰는데 촛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가 되는 것과 시가 되지 않는 것(詩와非詩)이 무엇인가에 대한 초보적인 단계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일단 시가 되도록 쓸 수 있는 방법부터 공부하고자 한다.
● 시 쓰기의 기본 과정 1.
시 쓰기의 과정이 옳았을 때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시를 쓴다는 것은 공을 다루는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도 않고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려는 것 같이 무모한 일이다. 간혹 시를 전혀 배우지 않았는데도 감동적인 시를 쓴 사람도 있다. 처음 공을 차도 골을 넣을 수도 있는 것처럼, 그러나 계속 그럴 수는 없다. 시는 시를 인식하는 일이다. 시의 언어는 사건이나 사물과 독자 사이의 전달 수단인데 시의 언어를 잘 알지 못하면 시가 안된다.
그렇다면 시의 언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응축된 말의 덩어리'다. 즉 낱말의 새로운 언어조합을 통해서만 시적 언어인 말의 덩어리가 완성 된다는 것이다. 읽는이의 가슴에 슬픈 이야기도 미적으로 승화시키고 즐거움은 감동을 줄 수 있는 단어로 배합 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인데 "언어를 감동적 스토리가 있게 배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느냐"가 '시가 되느냐 안되느냐'를 가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빈곤은 시의 완성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창고가 풍부해지는 방법부터 알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감정과 아름다운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할지라도 그 단어와 생각을 머리에만 저장한다면 곧 지나가 버리는 바람 같은 것이 된다. 시를 쓸 때 언어를 저장한 창고가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여기에서 나는 정말 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언어의 창고를 채우는 숙제를 하나 내어주려고 한다.
● 오늘부터 일주일간 시적 언어라고 생각 되는 것을 매일 100개 정도 노트나 메모지 아니면 포스트잇에든 적어서 다음 주 <토요 시창작 강의> 댓글란에 인증샷으로 올리시기 바란다. 시집이나 소설을 참고 하든 사전을 보든 가장 시적인 단어의 조합을 추려보라.
예 : 꽃은 울기위해 핀다.
좁다. 좁다. 좁아, 넓은 가슴에 털난 사내 품.
연모 한다는 것, 나를 불사르는 일
등등...
이 연습이 버릇만 된다면 당신은 훌륭한 언어의 창고를 갖게되는 체험을 할 것이다. 이를 다시 노트에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당신만의 시어 사전을 현재진행형으로 갖게되는 기쁨을 맛 볼 것이다. 그리고 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당신은 이미 훌륭한 시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어떤 시인은 생각나는 시적 단어를 포스트잇에 메모하여 집안 냉장고나 책상과 침실과 화장실, 자동차 안에도 눈에 띄게 붙여놓고 계속 보고 있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것을 재빨리 문자로 옮기는 연습을 몇 년 했더니 자칭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비슷한 버릇을 갖게 되고 나서 부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대학노트에 가득한 나만의 시어 사전을 볼 때 마다 국어 사전에도 없는 특이한 그 말의 덩어리들이 나를 반기며 시에 등장할 순서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다.
가슴이 따뜻한 나무가
언덕에 서 있다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그의
손을 잡으며
나도 나무가 되어 설 날이 있을까
해가 져
쓸쓸한 바람이 불어도
나무는 그냥 웃고 있다
나는 아직도 바람이 지날 때마다
온몸을 떨며 소리 지르는
풀이다.
이젠 누구의 눈길도 바라지 않고
이름이 필요하지도 않은
그냥 아무 곳에나 자라는 풀일 뿐
그래도 살아
꽃 피울 수 있고
겨울 어느 바람에
노래 부르며 홀씨들을 날리기도 하는
나무 아래서
- 서정윤, <나무 아래서> 전문
시는 강력한 낱말을 재료로한 언어의 덩어리다. 즉 단어마다 적확(的確)한 언어를 골라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위 시를 보라. 어떠한 의미나 관념의 해석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절제된 언어를 덩어리화 시키고 있다. 이처럼 사물의 생각을 읽고 마음에 심으면 그것이 시의 덩어리로 승화 되는 것이다. 시는 습관적이어야 한다. 좋은 시적 언어가 떠오르면 즉각 문자로 남겨야만 시적 분위기, 시 쓰는이의 시심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인식, 즉 생명 없는 것에 생명을 넣고 사물의 속성을 파악하여 자신의 인격을 반영한 존재가치를 나타내는 작업은 시가 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나무가 웃고 있다
자지러지게 웃고 있다
뒤로 넘어가면서 웃고 있다
징글징글하게 웃고 있다
웃다가 웃다가 허리가 끊어지려고 한다
저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
자세히 보니
새 한 마리
나무에 간지럼을 태우고 있다
나무가 웃는다
바스러지게 웃는다
바삭바삭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빛을 반사하면서 웃는다
고개를 숙이고 웃는다
듬성듬성 웃는다
자세히 보니
새가 떠나갔는데도
웃고 있다
- 신미균, <웃는 나무> 전문
신미균의 시는 사물을 자유롭게 어루만지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위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웃음의 미학 속에 숨어있는 허리가 끊어질 듯, 유리조각처럼 부서진 존재의 아픔과 슬픔을 가식없이 진술하는 시적 언어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웃음에 슬픔을 감춰 놓고는 짐짓 새가 떠나갔어도 계속 웃고 있다는 삶을 관조하는 시적 언어를 되씹어보면 웃다가도 흐트러진 자세를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리는 발칙한 발상이며 사물에게 존재의 가치를 보태고 붙이는 생산적인 일이며 문장의 잔가지를 간결하게 정리하여 공감과 감동의 덩어리로 묶어서 독자에게 선사하는 일인 것이다.
- 생명시 운동9, 이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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