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55강 쉬운 시와 어려운 시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32

<토요 시창작 강좌>제55강

■ 쉬운 시와 어려운 시

   시란 본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진 갈래다. 세상은 옛날에 비하면 광속으로 변하고 있고 발전이라는 말은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시와 시인도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다. 시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사람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를 쓰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좋은 사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보편적 상식을 벗어나지 않은 선한 사람을 말한다. 겉멋에 빠져서 말을 낭비하지 않는 선한 사람, 즉 낱말 하나하나가 적확(的確)하고 그 사람의 색깔이 묻어 있어서 공감을 주는 시를 쓰는 사람이다. 말은 쉽지만 그런 시를 아무나 쓸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얻고자 하는 좋은 것들의 대부분은 댓가없이 쉽게 얻어지지는 않는다.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좋은 시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시를 읽어내는 눈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이 안목을 기르는데는 시 공부에 얼마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댓가가 따른다.
   시는 시인이 오래 고민한 끝에 조심스레 세상에 고백하는 이야기다. 그 고백이 독자에게 옮겨져서 시인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다. 그런데 독자나 시인이 자기 수준에 맞는 시만 선호하면 그것이 나에게 위로를 줄런지는 몰라도 나를 성장으로 이끌어 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독자를 편안하게 만드는 시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더욱 분발하도록 하는 시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고 이 개념은 <생명시 운동>의 기저(基底)에 깔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를 성장으로 이끌 시란 무엇인가? 그것의 난이도를 나누자면 '쉬운 시'와 '어려운 시'가 있고 완성도로 구분하면 '잘 쓴 시'와 '못 쓴 시'가 있다. 이것을 종합하면 <쉽지만 잘 쓴 시>가 있고 <못 쓴 쉬운 시>, <어렵지만 잘 쓴 시>, <어렵고 못 쓴 시>가 있을 수 있다. 유명 비평가나 시인들 중에는 <어렵지만 잘 쓴 시>를 최고의 시로 꼽는 경우가 많다. 이런 흐름은 난해한 시가 시단에 범람하게 된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나는 본다.
   명시(名詩)로 기억되는 시는 독자의 학식이나 여러 층위의 사람들에 관계없이 오래도록 남아서 감동을 주는 시다. 김소월이나  윤동주의 시가 그렇고 신경림과 김용택, 나희덕 이대흠 신미균 등의 시가 그렇다. 이런 시들은 이십 대에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르고 삼사십 대, 오십 대의 느낌이 다르며 다시 보아도 눈길이 가게 되는 시다. 결론적으로 우리를 성장으로 이끄는 시는 어려운 시가 아니라 오래 남는 시, <쉽지만 잘 쓴 시>가 가장 높은 경지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다양성이란 측면에선 금과 옥조처럼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생명시 운동>의 개념과는 밀접하게 닿아 있으므로 시를 쓸 때 참고하기 바란다.

   가시 / 박성우

   요건 찔레고 요건 아카시아야
   잘 봐, 꽃은 예쁘지만 가시가 있지?

   아빠 근데, 찔레랑 아카시아는
   이름에도 가시가 있는 것 같아


   위 시는 아이의 말을 그냥 올려 놓은 듯 쉽다. 이 시의 말결에서 '가시'를 읽어 낸 아이의 느낌을 낚아 올린 박성우 시인이 언어를 대하는 자세와 꼼꼼한 눈길을 주목하자는 것이다.

  
   동창회 모임 / 황훈성

   조개탕 속에
   한 녀석이 입도 떼지 않고
   무게를 잡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있다

   무게도 나가지 않는
   왜소한 바지락 주제에

   미사여구를 읊는 비단조개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대합
   연신 어깨를 으쓱대는 키조개
   모두 무늬에 걸맞게 흥겨운 담소를 즐기는데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주름살투성이 얼굴 주제에
   팔짱을 끼고 엄숙한 포즈라니
   참다 못해
   손님이 냄비 밖으로 호출하여
   입을 강제로 열었더니
   입에 가득 머금은 개펄

   자신의 시커먼 슬픔으로
   국맛을 버리기 싫었던 것이다


   영문학자이자 시인인 황훈성의 궁극적 메시지가 머무는 지향점을 추적해보자. 시적 서술자 또는 시인 자신을 "손님"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일이다. 말하자면 동창회 모임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이가 참여자인 동시에 관찰자인 "내 안의 또다른 나"를 조개탕에 빗대어 드러내고 있다. 인간 군상에 대한 경계와 비판의 시각이 날카롭지만 "입에 가득 머금은 개펄"과 "자신의 시커먼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다. "국맛을 버리기 싫었던 것"이라는 시인의 발견이 시를 살리고 썩은 것을 머금고 있는 조개에도 생명을 부여하는 이 마음이 생명시가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은 한 편 더 보겠다.

  
   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 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망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위 시는 시인 백석이 오늘에 와서도 수많은 연구 논문과 평론이 계속되는 이유를 어렴풋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그의 이름이 알려진지 스무 해도 지나지 않은 짧은 기간에 이토록 우리 문학사를 뒤흔들 만큼 작품의 수월성을 인정받은 시인이 있었을까? 백석의 고향인 정주 토박이 말로 잘 다듬어진 말씨와 줄글과 가락글 사이를 오가는 그의 시 작법은 남북한 문학사에서 누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직도 실증과 해석 등 그의 작품을 논할 많은 자리가 비어있다는 점이 경의롭기까지 하다. <여승(女僧)> 또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함께 연정(戀情)의 감각이 살아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비구니에 대한 첫 토막의 진술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와 "여인(女人)은 가을 밤 같이 차게 울었다"등 직유를 동원하여 길어 올리는 연민(憐憫)의 시어들은 눈부시다 못해서 아리다. 여인의 기구한 삶은 마침내 그 자식을 돌무덤에 묻고야 말았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머리를 깎고 절집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고난스런 삶을 백석은 불경 위에 글자처럼 검게 떨어져 내렸을 머리카락을 '눈물방울'로 보았던 것이다.

   말글로 이루어진 가장 높은 자리에 시가 있다. 쉬운 시나 나의 수준에 맞는 가벼운 시만 선호하면 백석 같은 시인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의 예시시(例示詩) 세 편은 난이도가 다르지만 자꾸 비교하면서 읽어봐야 시적 내공이 쌓이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리보고 저리보면 보이기 때문이다. 
   - 생명시 운동 8, 이어산

   ※ 백석 시에 나오는 시어에 대한 문의가 많아서 추기 합니다.
   ● 가지취 : 취나물의 일종
   ● 금덤판 : 금점판의 토속말, 금을 캐는 산골마을에서 식료품이나 잡품을 파는 작은 좌판
   ● 섶벌 : 섭벌이라고도 하는데 토종벌을 말합니다.
   ● 머리오리 : 낱낱의 머리카락(여자의 쪽진 머리의 모양이 옆에서 보면 오리 같아서 생긴 말이라는 설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