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창작 강의> 제45강
■시인다운 시인과 시인처럼 꾸민 시인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합니까?"
나는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나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그것을 알면 내가 시와 씨름할 필요가 없지요. 사실 나도 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밴드에서 시짓는 법을 소개하는 것은 시가 되게 하는 최소한의 방법과 시를 쓸 때의 자세, 독자에 대한 배려, 그동안 수많은 시인과 평론가들이 밝힌 시에 대한 생각을 나의 적은 지식에 버무려서 우리 회원들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소개하는 것이지만 이것 또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많은 문인, 문청의 시에 대한 갈망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핑계로 '어떻게 하면 쉽게 시에 다가 갈 수 있도록 회원들을 안내해 줄 것인가?'를 나의 숙제요 고민인냥 떠안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시인이 되고자 하여 신춘문예나 권위있는 시 전문지에 응모를 하였을 때 심사위원들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가면 심사에서 탈락 시킨다는 것을 소개함으로써 시짓기에 참고 하기를 바란다.
●시를 망치는 비시적(非詩的)인 것들
1. 알맹이가 없이 미사여구가 많은 것
2. 객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감정이나 관념을 그대로 노출한 것
3. 너무 뻔한 내용이거나 평면적인 상상력에 머물고 있는 것
4. 그리움 타령, 사랑 타령의 것
5. 낯익고 관습적인 묘사나 비유에 의존하고 있는 것
6. -하노라, -구나, -어라 등의 고어체나 감탄사, 지나친 문장부호가 들어간 것
7. 젊은 사람이 쓴 늙은 것
8. 진정성이 의심되는 허황된 것
9. 교조적, 잠언적, 훈계적인 것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시란 결국 대단한 철학이나 잠언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감동하는 미학이다'라는 말로 축약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여러 강의를 통하여 "폼 잡고 사는 사람은 그 폼대로 살아진다"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격은 좀 떨어지지만 "똥폼도 잡다보면 제폼된다"라는 우스개 말도 곧잘 했다. 시인이 되려면 시인다운 폼, 즉 시인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시를 쓰면 그 앎이 나를 시인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시인이 되는 것을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 일, 또는 시를 장신구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유혹하여 시인이라는 명찰을 달아주는 댓가로 시인을 사고 파는 사람과 정체불명의 3류, 4류 문예지, 심지어는 밴드에서 까지 그런 일이 범람하는 현실을 보면서 서글픔을 넘어서 분노가 일기도 한다. 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절제된 가운데서 내용과 형식의 일치, 삶과 시가 같이 가는 진정성이 있을 때 시가 시다와 진다고 강조해 보지만 성질 급한 사람들은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단에선 '시인다운 시인'과 '시인처럼 보이는 가짜 시인'이 1:9의 비율은 될 것이라는 자탄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결국 시인다운 시인인지, 시인 흉내를 내는 시인인지는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다. 제대로 된 절차와 방법, 습작을 한 후에 시인이 되어도 절대 늦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을 꿈꾸는 사람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유명 시인들이 시인이라는 명찰을 달기 까지는 짧게는 3년, 보통 5년 이상의 습작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나는 본격적인 시 공부를 시작한지 10년이 훨씬 넘었을 때 등단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등단의 빠르고 늦음이 문제가 아니라 시와 내가 같이 가고 있느냐, 그렇지 못한 허황된 시를 쓰느냐의 문제, 나는 시를 발표해도 될 만한 사람인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닫고 있다. 아무리 시가 좋아도 사람으로서의 인격이 미달하면 그 시는 가짜 시 이고 가짜 시인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 기준이다. 시를 좀 잘 쓰면 어떻고 못 쓰면 어떤가? 이름을 가리고 봐도 그 사람의 향기가 나는 시가 가장 좋은 시요, 그 시에 책임질 수 있는 시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 진짜 시인이라는 생각은 세월이 흐르고 시력(詩歷)이 붙어 갈수록 굳어져 가고 있다.
시를 쓸 때 읽히기 쉬운 시를 써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게 읽히는 시는 실패한 것이다. 즉, 시는 읽는이의 가슴에 스며들되 읽을 수록 맛이나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또 다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 중층묘사(重層描寫)의 묘미가 있어야 좋은 시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와 언어는 매우 빈약하거나 편협하여 시를 쓴다는 것은 우리의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바깥 세계의 언어와 어휘, 새로운 것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와 어휘와 경험은 거대한 바깥 세상에 비하면 정말 미미하다. 그런데 눈을 열어 찾아보면 세상에는 생소한 느낌의 어휘가 산처럼 묻혀 있는데 그것을 캐내고 가공하여 보석으로 만들어서 독자 앞에 내놓는 작업이 시를 쓰는 일이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낯익은 말은 잡석(雜石)이므로 마음 그릇에서 일단 내버려야 새로운 느낌의 어휘들이 그 곳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익숙한 말들을 버리지 못하면 그 말들에 끌려 다니게 되어서 때묻고 낡고 헤진 옷을 입고 독자 앞에 나타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왜 그렇게 독자를 의식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다시 말한다. "자기 만족을 위한 시는, 자신의 넋두리를 일기처럼 써놓고 보고싶을 때 자기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시를 발표한다는 것은 결국 독자에게 보여주고 같이 공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내가 쓴 나의 이야기이지만 독자에게 외면 당하는 것, 독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의 언어를 모시러 가는 가마를 준비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본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나를 보고 말을 거는 것이며 내가 하찮게 여겼던 것들의 거대한 힘을 발견하곤 기뻐서 독자에게 보고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을 쓰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개울 바닥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을 줍는 일
수석을 즐기다가
기이한 돌을 발견하고
혼자서 즐거워 하는 일
시를 쓴다는 것은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는 일
쇳덩이를 불에 달구어
담금질로 연장을 만들고는
이마의 구슬을 훔쳐내는 일
시를 쓴다는 것은
영혼의 맑은 이슬을 받으러
산사를 찾아 떠나는 일
텅빈 절간을 헤매다가
잠자리에 들어서는
도인을 만나는 일
- 신용협, <시를 쓴다는 것은> 전문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딘가에서 병사가 상처 입는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는 날개짓 한다는 것
바다는 일렁인다는 것
달팽이가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 다니카와 순타로, <산다>부분
시인에게 있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살아 간다는 말이다. 시 기술자를 시인이라고 추켜세우는 엉터리 지도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시생명운동(詩生命運動)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순진하고 지난(至難)한 일이라는 사실을 수도 없이 경험하고 있지만 시인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경험이 도움이 될까하여 오늘도 밤세워 이 글을 쓰는 것이다 . - 이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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