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47강 생명시 운동을 주창하며 (1)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22
<토요 시 창작 강좌> 제47강

   ■ 생명시 운동을 주창하며 (1)

   시가 예사 말이라면 시를 쓰기위해 이토록 시와 씨름할 이유가 없을텐데 시는 특별한 말이다. 비틀어서 말할 때 시(詩)다와지고 줄여서 말하고 시치미를 떼고 돌려서 말했을 때 더 뚜렸해지는 특성을 지닌다. 그런데 언어문학으로서의 시는 상층의 지식언어, 엘리트문학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어려워졌다. 특히 일제 35년과 80년대까지의 엄혹한 시절을 거쳐오면서 우리는 말하고 싶어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정서가 의식속에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시도 애매하게 표현하여 혹시 당할지도 모를 불이익을 피해 갔으며 이런 풍토로 인하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시가 넘쳐나게 되었고 시가 대중들에게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연륜이 백 년이 넘는 동안 문자시(文字詩/printed Poem)로서 한문투로 멋을 내던 문학적 허풍의 외투를 벗고 한글을 갈고 다듬어 온 공은 매우 크다. 그리고 한글로도 얼마든지 시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일반 사람들에게서 생기게 되었고 귀족 문학이라는 시를 향유하고 싶어하는 욕구와 맞아 떨어져서 많은 이들이 시인을 꿈꾸며 시를 쓰게 되었다. 수요가 많아지니 여러 대학에는 문창과가 생겼고, 시를 배울 수 있는 평생교육원이나 문학강좌 등 온갖 종류의 시 창작 강의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젠 온라인으로도 시를 얼마든지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감동적이거나 수준 높은 시와 좋은 시인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전국 각지를 대표하는 시인들과 이들을 기리는 문학행사가 봇물 터진 듯 생겨났다. 시는 좋은 것이고 시가 우리의 정서에 순기능으로 작용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계속 그런 쪽으로만 시가 발전했으면 좋으련만 이른바 속성 학습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 중 일부는 수준 낮은 시와 아직 시로 성장하지 못한  글로 '등단'이라는 미끼로 유혹하는 詩장사 매체들에 의해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함부로 달게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된데는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 성급한 사람들과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합작품인 측면도 있지만, 나는 시단을 장악하고 있는 엘리트 지도자 들도 이런 현상을 부추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단의 어른들은 '높은 수준의 작품성'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그 벽을 뚫고 진입하기 어려운 자기들만의 몇몇 리그를 만들어서 ㅇㅇ사단(私壇)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시단권력(詩壇權力)을 향유하면서 우리나라 시단을 쥐락펴락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이른바 주류 시단(主流 詩壇)엔 진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제3의 매체가 여기저기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돌파구가 된 셈이었다.

   시를 쓰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도 그 수요를 제대로 수용하거나 제대로 된 시의 길로 인도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 문학권력의 핵심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책임은 없는 양 제3의 매체로 나온 시인들에게 3류, 4류 라는 딱지를 붙혀서 손가락질을 하며 시의 변방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면 이들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리고 정말 자기들만이 훌륭한 시인이고 그들이 제시하는 시의 수준이 좋은 시의 절대조건일까? 혹시 시 기술자나 시 노동자를 진짜 시인인 양 추켜 세우는 것은 아닐까? 높은 수준의 시를 쓰면 시인이 다 된 것일까? 성격이 괴팍하거나 인간의 기본이 안되어도 시만 잘 쓰면 되는 것일까?

   나는 그동안 어줍잖은 평론을 하고 시를 쓰면서 여러 시인을 만났다.내가 존경하는 스승님도 계시고 좋은 선후배 시인들과의 인연도 맺게 되었다. 수준 높고 좋은 시라는 것도 더러 보곤 절창구에 무릎을 치면서 감동하거나 부러운 마음으로 동경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그런데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시인이라는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면을 보게 되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를 잘 쓰면 더욱 겸손해 질줄 알았는데 점점 교만해지거나 전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시인이 벼슬인 양 초보시인과 작품성이 약간 떨어진다 싶은 시를 쓰는 사람은 아예 무시하거나 그들의 상전처럼 군림하려거나 함부로 경멸하는 경우, 또는 시는 잘 쓰는데 삶이 그 시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등 이상한 일을 많이 보게 되면서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나도 그런 유의 사람은 아닐까? 시 기술자, 시 노동자들이 쏟아 내는 시는 과연 진실한가? 시만 좋으면 인간성이야 좋든 말든 다 용서가 된다는 것인가? 시와 삶이 같이 가는 시란 어떤 것인가? 시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인가? 시가 왜 필요한가?" 등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다가 내 나름의 정리를 했는데 바로 <생명시 운동>이 그것이다.

  - 다음 주 새해 첫 토요 강좌에서는
<생명시 운동>에 대한 선언이 있습니다. -이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