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창작 교실> 제44강
■진정성과 상상, 가공의 시 짓기
우리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던 초가집을 소재로 시를 쓴다고 했을 때 내가 실제로 봤던 그 모습을 그대로 그린다면 시가 되지 않는다. 시는 기본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가공하고 허구를 동원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작업인 것이다. 즉 어릴 때의 초가집과 관련된 것들, 예를 들어서 흙담, 강아지, 싸립문, 골목, 오래된 마루, 그 위에 팬티만 입고 누워서 만화책을 보던 여름날을 생각나는 대로 써놓고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침 햇살이
대청마루를 닦고 있다
싸립문을 연 강아지가
만화속의 나를,
배고픈 나를 불러내는데
새벽 시골장에 채소를 내다팔고
개선장군처럼 골목길 드는
함박 웃음으로 오는 엄마
초가지붕의 박 구르듯
쪼르르 달려가
붕어빵 봉지를 받드는데
울 엄마는
이순신 장군보다
훌륭하다
나폴레옹 보다
위대하다
흙담에 올라선 나팔 꽃
팡파레 요란하다
위는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는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의 씨앗이다. 어릴 때의 회상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발전하지 않으면 과거의 넋두리가 된다. 이것이 시로 성장하려면 물을 주고 사랑을 쏟아서 키워야 한다. 살을 붙여보고 빼어도 보고 동시 같은 느낌을 바꿔도 보고 이야기가 더 길어지도록 '붕어빵을 먹고 앞 냇가에 가서 붕어보다 헤엄을 잘 쳤던 어린 시절'을 떠 올리며 지금 내가 살고있는 문명한 현실이 과거와 어떻게 다르며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우리 자녀에게 위대한 엄마, 아빠인지 생각도 해보는 것 등이 시를 제대로 만들어 가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시 짓는 방법인 것이다.
위와 같이 시는 현실의 산물이면서도 그러나 현실에 종속되지는 않아야 한다. 시는 현실을 초월하며 이상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시가 리얼리즘을 표현하는데 주력하면 사물을 생생하게 드러낼 수는 있으나 언어의 아름다움을 높이 드러내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시는 현실의 표현을 뛰어넘어 가상의 이상 세계를 표현한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있으나 과도한 상상력은 오히려 시를 정직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으므로 심상을 세울 땐 새로움이 있으되 반드시 나의 삶과 연결되는 진정성을 배경에 깔기를 바란다.
때 절은 일바지에 헝클어진 덩덕새머리
오로지 팔십 평생 까막눈으로 사시다가
지아비 떠나보내고 한글학교 입학했네
하루는 막내딸 집 아파트에 들렸다가
잠긴 문에 삐뚤삐뚤 쪽지 한 장 남기셨어
'박일심 하머니 아다 가다'그렇게
돌아섰네
십리길 강진 장에 푸성귀 팔러나가 해질
무렵 몇 다발을 가래떡과 바꾸신 후 두
팔을 휘저으시며 걷고 걷던 신작로 길
어머니가 떠나신지 십 수 년이 지나갔네
단 한 번만이라도 뵐 수만 있다면
맘놓고 울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눈물의 장강(長江)속으로 편지를 쓰네
받침 없는 편지 한 줄 어머니께 띄우네
참으로 먹먹한 오늘,
'어마 보고 시어요. 우고 시어요'
- 유헌, <받침없는 편지> 전문
팔십 평생 까막눈으로 사시다가 겨우 한글을 익힌 노모의 받침 없는 글에 담긴 진정성을 담담하게 풀어내듯 쓴 글, 처음엔 글을 잘못 썼다고 생각 하다가 읽어 볼 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 우리는 이런 글에 감동하게 된다.
이렇듯 시는 화려한 수식어나 테크닉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담백하게 용해하고 흡수하여서 과거와 화해하고 더 나은 이상세계와 조화하려는 작업이며 글로 그리는 말의 미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이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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