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강
<시인과 시의 관계>
우리가 보통 '시(詩)'라고 할 때의 시는 한 편의 작품, 즉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같이 'Poem'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를 사랑한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풍경', '시를 낭송하듯 운율을 살려서 말한다' 등의 시정신(詩精神)을 지칭할 때는 'Poetry'라고 구분한다. 즉, 구체적인 시 작품을 'Poem', 추상적인 시정신을 'Poetry'라 한다. 그러므로 시(Poem)에서 시정신(Poetry)이 녹아있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닌 것이다. '시정신'은 시뿐만 아니라 음악과 그림과 무용과 조각 등의 모든 예술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업에 본질적이며 핵심적으로 뒷받침을 하고 있는 정신인 것이다. 그래서 시는 '시 정신을 언어로 구사한 예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별에서 온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숨 쉬고 느끼고 생활하면서 이상 세계의 도래를 꿈꾸는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정신이 투철한 시인은 우리 가운데서 자라난 한 그루의 나무다. 그리고 그 나무의 모양이나 맺는 열매, 낙엽 까지도 제각각의 모양이 뚜렷한 개체다"라는 말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시를 써서 발표하는 시인보다 시를 올바르게 감상할 줄 아는 독자들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귀하게 여겨서 숲을 만들어 내는 산주(山主)처럼 시인들의 주인은 시인이 아니라 독자다.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많은 나라는 독자가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키우는 것과 같다. 그런 사회는 시가 좋은 숲을 이루어서 그기에서 쉴 수도 있고, 사람들의 정신이 밝고 맑게 되며 사회를 순화시키는 등의 순기능을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정신을 배양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 것이다.
시를 올바르게 감상하거나 시를 읽어내는 독자도 되지 못한 사람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정신(Poetry)이 없는 시, 시(Poem)를 흉내낸 강열한 자기현시(自己顯示)의 욕망이고 지나친 자만으로, 설계도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큰 빌딩을 짓겠다고 덤벼드는 것과도 같다. 아무도 시의 독자가 되려고 하지 않고 시인이 되려고만 한다면, 아무도 관객이 되려고 하지 않고 배우만 되려고 하는 연극무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진실로 시를 사랑하거나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좋은 시집을 사서 읽을 줄 아는 독자가 되는 일부터 해야한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Poem Lovers'라 하지 않고 'Poetry Lovers'라고 하는 이유도 '시정신이 담겨있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는 말이다.
우리 밴드는 시를 잘 쓰는 시인을 발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진정한 독자들을 위한 운동장이다. 나는 제대로 된 독자만이 제대로 된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밴드의 목적이나 시정신은 토요강좌나 시간 있을 때마다 올리는 밴드장 글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으나 이런 글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시만 올리는 사람도 가끔 눈에 띄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남이 올린 시에 관심을 갖고 그 시를 "나라면 이렇게 썼을 텐데"등의 시작법에 관심을 가지면 자기의 실력도 늘어나게 된다. 이런 자세가 바로 시정신을 배우는 하나의 방법이다. - 이어산
<시인과 시의 관계>
우리가 보통 '시(詩)'라고 할 때의 시는 한 편의 작품, 즉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같이 'Poem'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를 사랑한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풍경', '시를 낭송하듯 운율을 살려서 말한다' 등의 시정신(詩精神)을 지칭할 때는 'Poetry'라고 구분한다. 즉, 구체적인 시 작품을 'Poem', 추상적인 시정신을 'Poetry'라 한다. 그러므로 시(Poem)에서 시정신(Poetry)이 녹아있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닌 것이다. '시정신'은 시뿐만 아니라 음악과 그림과 무용과 조각 등의 모든 예술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업에 본질적이며 핵심적으로 뒷받침을 하고 있는 정신인 것이다. 그래서 시는 '시 정신을 언어로 구사한 예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별에서 온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숨 쉬고 느끼고 생활하면서 이상 세계의 도래를 꿈꾸는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정신이 투철한 시인은 우리 가운데서 자라난 한 그루의 나무다. 그리고 그 나무의 모양이나 맺는 열매, 낙엽 까지도 제각각의 모양이 뚜렷한 개체다"라는 말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시를 써서 발표하는 시인보다 시를 올바르게 감상할 줄 아는 독자들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귀하게 여겨서 숲을 만들어 내는 산주(山主)처럼 시인들의 주인은 시인이 아니라 독자다.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많은 나라는 독자가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키우는 것과 같다. 그런 사회는 시가 좋은 숲을 이루어서 그기에서 쉴 수도 있고, 사람들의 정신이 밝고 맑게 되며 사회를 순화시키는 등의 순기능을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정신을 배양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 것이다.
시를 올바르게 감상하거나 시를 읽어내는 독자도 되지 못한 사람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정신(Poetry)이 없는 시, 시(Poem)를 흉내낸 강열한 자기현시(自己顯示)의 욕망이고 지나친 자만으로, 설계도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큰 빌딩을 짓겠다고 덤벼드는 것과도 같다. 아무도 시의 독자가 되려고 하지 않고 시인이 되려고만 한다면, 아무도 관객이 되려고 하지 않고 배우만 되려고 하는 연극무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진실로 시를 사랑하거나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좋은 시집을 사서 읽을 줄 아는 독자가 되는 일부터 해야한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Poem Lovers'라 하지 않고 'Poetry Lovers'라고 하는 이유도 '시정신이 담겨있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는 말이다.
우리 밴드는 시를 잘 쓰는 시인을 발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진정한 독자들을 위한 운동장이다. 나는 제대로 된 독자만이 제대로 된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밴드의 목적이나 시정신은 토요강좌나 시간 있을 때마다 올리는 밴드장 글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으나 이런 글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시만 올리는 사람도 가끔 눈에 띄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남이 올린 시에 관심을 갖고 그 시를 "나라면 이렇게 썼을 텐데"등의 시작법에 관심을 가지면 자기의 실력도 늘어나게 된다. 이런 자세가 바로 시정신을 배우는 하나의 방법이다. - 이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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