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인은 바람을 피워야 한다.
나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연애를 많이 하라고 조언한바 있다. 오늘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당신에게 바람을 피우라고 다시 권한다.
당신은 시의 바람을 피워 본적이 있는가?
가장 진솔한 시는 내가 잘 모르던 대상과 뜨겁게 바람을 피워봐야 쓸 수 있다. 남녀간의 그런 통속적인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세상 사물들과의 비밀스런 만남, 자꾸 그리워 하고, 밀어를 주고받고, 밤이나 낮이나 시간만 되면 생각나고, 느끼고싶고, 그립고, 만나고싶은 그런 깊은 향유의 바람을 피워볼 대상을 만들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감정이 깊어져서 마침내 교접의 시간이 오면 은유라는 정자와 상징이라는 난자가 만나게 된다. 이렇게 시가 잉태되면 임부는 그 시의 생명이 모태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아야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가 육화(肉化/몸 바꾸기)되는 과정인 것이다.
제대로 된 시를 탄생시키는 일에는 출산에 따른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고통의 과정을 거친 시가 세상에 나오면 그 시는 자기의 영토를 갖게 된다. 시의 일가를 이루었다는 것은 자식이 많다는 것이고 자식이 많다라는 것은 시의 영토가 넓다는 것이다. 당신의 나이가 많거나 적음에 관계 없이 시에 대한 사랑이 있고 그리움이 있는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충분한 생식 능력이 있고 시의 영토를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다.
시를 사랑하는 당신 앞엔 아직도 개척되지 않은 광활한 시의 땅이 펼쳐져 있다. 그 땅을 차지 하도록 바람 피우러 가자.
우리 밴드회원 한길수님이 이번 주에 올린 시인데 바람을 제대로 피웠는지, 사지 멀쩡한 자식을 낳았는지 살펴보자.
고추는 총을 쏘았는가/한길수
마른 땡볕이 연병장이다
자라온 고향의 평안은 잊어야 한다
지나가는 소나기 한방울에 목숨을 건다
달이 돌아선밤 별 에게 편지를 쓰고
구름속에 별이 지면 우러러 보초를 선다
줄맞춰 도열하고 양팔벌려 태양을 멘다
키큰 총을 바닥에 박고 자신을 지킨다
우거진 위장복 사이로 맨 하늘이 드러나고
지나가는 새털구름에도 휘파람 분다
철든 사내들의 새벽인가
안개의 손짓에도 약이올라 바람을 찌른다
일제히 발기된 청춘들이 붉게 타오른다
비 .상 .이 .다
급박한 삶의 전장으로 출동을 명한다
승리를 위한 마지막 멍석을 깔아준다
매캐한 전투였는가
쭈글한 껍데기만 나뒹군다
어떤가? 고추밭에서 제대로 바람을 피운 것 같은가?
이 시는 진술과 묘사가 뛰어나고 시를 끌고가는 힘이 있다. 다만 좀더 육화되지 못하여 완성도에선 약간의 장애를 가진 자식처럼 된 점이 아쉽긴 하지만 우리 밴드의 평균보단 훨씬 스토리와 긴장감이 살아 있는 작품이기에 이 장애를 약간 치료하는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친다면 깃발을 휘날리며 걷거나 뛸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이덕규 시인이 피운 바람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어처구니/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 밭에 덮어 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 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 거려서 또
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 이를 또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이 시는 표현과 감정의 섬세한 부분까지 육화(肉化/몸바꾸기)가 되어 시로서 성공하고 있다. 시란 어떤 사물을 섬세하게 표현하는데서 나아가 낯설게 하기와 몸바꾸기의 작업이 제대로 되어야 비로소 사지육신이 멀쩡한 자식을 낳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화'나 '거듭남'과 비슷한 의미요 불교에서 강조하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2. 당신은 과잉친절이 몸에 베여있는가?
초보시인들이 걱정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가 쓴 글을 독자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까봐 친절하게 설명하거나 쉽게 시를 쓴다. 그리고 시가 가지고 있는 상징까지도 정성을 다하여 설명해 준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시는 은유이고 상징이고 비유인데 과잉친절은 시를 형편없이 재미없게 만드는 주범이다. 독자가 스스로 깨닫게하라.
하이데거의 '시간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스스로 말하고 있다. 내가 사물대신 말하지 말라. 사물이나 상황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고 설파했다. 설명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못 알아들을까봐 우리의 편협한 시각과 감정으로 다 설명해 버리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설명을 하면 그 순수함과 객관성이 사라져서 자신의 넋두리, 하소연, 교훈적인 관념시, 또는 추상적인 시가 되기 쉽다.
ㅡ노년의 사랑ㅡ
할아버지 산야에서 나물캐고
할머니 지하철역 구퉁이에서 나물팔고
먼지를 간식삼아 하루를 번다
해져야
된장에 냉이한줌넣어
한끼 먹으며
탁주한잔 부디치니
술잔이 말을한다
인생뭐있어
이게 행복이지
골진 얼굴에 웃음이 좋다
먼저 도망갈까 두려운 깊은밤
두손은
포개어 곤히 잠든다
위 시를 쓴 회원은 지금 시의 씨앗이 꿈틀거려서 어찌할 바를 모를만큼 갈급한 마음으로 시의 영토에 그 씨앗을 뿌리고 있는데 이것이 싹이 나고 잎이 피고 꽃이 피어서 제대로 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적당한 물을 줘야 하는데 설명이라는 비료를 과하게 주는바람에 시가 웃자라서 쓰러지거나 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위 시는 노년의 사랑을 표현한 것인데 밖으로 드러난 언어가 아니라 안에 감추어진 뜻의 언어, 즉 메타(meta)언어가 약한데다가 "인생뭐있어/이게 행복이지"란 부분은 묘사를 한다는 것이 핵심적 의도가 심각하게 노출된 과잉 친절이자 설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독자가 시를 읽으면서 "아, 이런게 행복이야!"라고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 시의 작법인데 이렇게 시인이 결론을 내려 버리면 독자가 느껴야 될 재미나 감동의 공간이 좁아져서 시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힘든다. 시인은 독자에게 자기가 하고싶은 말, 그 의도의 50%만 드러낸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라. 그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라. 그리하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다양한 해석의 공간이 펼쳐질 수 있다. 그리고 맞츰법 검사기를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맞춤법은 최대한 바르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제목과 첫 연의 시작이 시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할 만큼 중요하므로 더욱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제목의 앞이나 뒤에 줄을 첨가하여 돋보이게 하는 것도 미사여구를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같기에 고쳐야 한다. 이렇게 조금씩 바로잡아 나가는 노력이 있으면 시의 씨앗을 풍부하게 지닌 회원이기에 감동적인 시를 얼마든지 쏟아낼 수 있을 것이다.
3. 당신의 시에는 주제와 목적이 있는가?
시를 왜 쓰려는지, 무엇을 쓰려는지, 어떻게 쓰려는지 그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그냥 쓰다가 보니 그렇게 됐다는 시인을 가끔 본다. 이것은 설계도 없이 집을 지으려는 목수와도 같다고 몇 번 강조한바 있다. 물론 목적과 주제를 정해놓고 쓴다고 하더라도 완성된 시가 그대로 되지않은 경우는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목적에서 썼는지도 모를 시가 되면 이것은 아무리 좋은 말을 늘어 놓았다 할지라도 실패한 시다. 목적에 맞는 통일성을 유지하라.
허무의공간
떠나는 바람
어떤이는 그 앞에서
누군가는 그 뒤에서
바람에서 바람으로
훔치는 시선
누군가는 눈동자 속에서
어떤이는 그 눈물방울 속에서
같은바람에서 다른바람으로
비틀림으로
쏟아져 과녘에 꽂혀 사라진다
위 시를 쓴 회원도 이 시를 써놓고는 멋진 표현이 들어간 시라는 생각으로 기분 좋아서 공연히 집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나혼자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시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이 젖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세월을 지나 왔기에 상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보자. 이 시를 무슨 의도와 목적으로 썼는가? 허무한 마음이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허무의 공간이 내 삶과 연결되어 가는 과정, 또는 그것으로 인한 수미상관적 마무리가 약하다. 이 단계만 뛰어넘어도 좋은 시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회원이다.
4. 밴드장이 뽑은 <이주의 시>
이번 주에는 지난주 보다는 평균적인 작품의 수준이 올라기지 못했다. 280여 편의 작품 중엔 잘 쓰는 사람은 계속 잘 쓰고 있고, 활동적인 사람들은 좀 부족한 글도 별 고민없이 그대로 발표를 하였다. 대체적으로 작품들의 호흡이 짧아서 속 옷만 입고 나온 것 같은 글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한 번 더 강조 하거니와 작품을 산문처럼 길게 써놓고 내가 꼭 하고싶은 말이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은유와 비유와 상징을 넣어서 다듬고 다듬어 나가라.
시를 잘 쓰는 회원을 매주 소개 하려다 보니 계속 같은 사람을 소개해야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서 이번 주 부터는 가능성이 있는 회원의 작품 위주로 돌아가면서 두 세 편씩 소개하고자 한다.
최은용님의 글은 우선 호흡이 길고 시를 대하는 자세가 진지하다. 글자로 그리는 말의 그림이 시라면 그 방법을 어느정도 익힌 솜씨다. 여러 시인이 '세탁'을 주제로한 시를 발표했기에 진부한 감이 없진 않았으나 충분한 가능성이 엿보이기에 고민 후 이 시를 손에 들었다.
김종웅 님의 시는 어느 것을 잡아도 그 키가 고르다. 키가 고르다는 것은 자기의 일가를 이루어 간다라는 말인데 아쉬운 점은 시가 대체로 쉽게 읽히는 점이다. 물론 노래에도 대중가요와 세미클래식, 클레식한 것이 있고 오늘날에는 다양한 장르가 펼쳐지듯 시에도 여러 갈래의 시 작법이 있긴 하지만 오래 씹어도 맛이 나는 시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바램을 적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냉면집 기술자가 매일매일 냉면 사리를 뽑아내듯 무난하고 말끔한 시를 매일 쑥쑥 뽑아내는 그 솜씨에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손뼉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이주의 시>
세탁/최은용
세탁기에 전원을 넣고
때 묻은 옷들을 던져 넣는다
셋팅을 하고 작동버튼을 누르면
처세관과 가치관의 무한 전투
폐허가 된 우심방을 관통하는 낙수소리
순결한 피라도 수혈 받는 듯 아려온다
반 나체의 목각인형 거울 속 풍경이 낯선 밤
피노키오의 소망이 기도로 깊어지면
눈물을 감춘 황량한 벌판에 유령처럼
발없이 다가서는 검은 얼굴 하나 무섭다
진자처럼,
돌아간 거리만큼
꼭 다시 돌아오는
세탁조의 규칙적인 화음소리
안도의 긴 날 숨 끝에 살짝 얹히는 연민,
어디만큼 돌아 갔는지 모를 길
매일 매일 때 묻은 옷을 벗어
세탁기에 던져 넣을 때마다
세제의 양은 늘어만 가고,
홀로 세탁하는 생의 의미
만취한 밤의 보름달 빛만 같아,
사람이란 거,
사람의 길이란 거,
사색이 깊어갈 수록
오감만 혼미해져
수면을 애써 호명하는 밤
그리운 이름만 깜지처럼
어둠을 채워간다
인절미/김종웅
메치고 메치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사이다
아무리 잘라봐라
끈적한 정이 잘라지나
어르고 달래는 것보다
때리는 회초리가 더 깊은 정을 낳는 걸
정. 그대가 세상을 세우는 뼈대인 것을
우리는 정을 먹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저 인절미처럼 쫀득쫀득
나누는 정
보태는 정
서로의 몸을 섞어 사랑으로 태어나는
이 환상의 탄생을
-이어산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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