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 문태준 나는 이 가방을 오래 메고 다녔어가방 속엔바닷가와 흰 목덜미의 파도재수록한 시그날의 마지막 석양빛이별의 낙수(落水) 소리백합과 접힌 나비건강한 해바라기맞은편에 마른 잎어제의 귀띔나를 부축하던 약속희락의 첫 눈송이물풍선 같은 슬픔오늘은 당신이 메고 가는군해변을 걸어가는군가방 속에파도치는 나를 넣고서문태준(1970~)누구에게나 오래된 가방이 있다. 버리지 못하는, 끝내 버릴 수 없는 낡은 가방 속에는 많은 것이 살고 있다. 어느 해변을 걷다가 주워 온 작은 돌멩이 하나가 가방에서 조용히 구르다가 나를 부른다. 가방 속에서 “그날의 마지막 석양빛”이 언뜻 비친다. “백합과 접힌 나비”의 날개도 보인다. 차가운 등을 보이며 돌아선 “이별의 낙수 소리”도 들린다. 겨울에는 눈보라 속을 헤매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