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없는 순간 / 문혜진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는다
반차를 내고 병원에 가서 입을 벌린다 콧속 점막이 헐어 있고 목구멍이 부어 있네요 열도 없고 기침도 크게 없다면 무증상에 가까워요 물 많이 드시고 잠을 푹 자야 합니다
약을 사고 카페에 간다 아플 때 멀쩡해 보이는 사람, 멀쩡해 보여도 아픈 사람
밤사이 나는 엎드려 있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후략)
- 문혜진 '무증상 환자' 부분
삶의 어느 순간은 빗나감으로 채워져 있다. 아픔이 드러나지 않는데 아프고, 감각은 있는데 인정되지 않는 상태를 살다보면 마주치기 때문이다. 겉과 속이 어긋난 순간들. 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되진 않는다. 귀로 들을 수 없다고 해도, 만져지지 않는다고 해도, 또 증명되지 않는다고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름을 얻지 못한 시간들, 그것이 우리의 초상일 때가 있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더라도 이미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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